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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책의 유혹

[책의 유혹] 우리의 욕망이 얼마만큼의 악을 묵인하거나 용서할 수 있을까

『사람냄새』, 김수박 만화, 보리출판사, 2012

한여름을 편안하게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시원한 선풍기 바람 맞으며 누워서 만화책을 보는 일이다. 한창 만화에 푹 빠져 살 때는 학교 끝나면 바로 만화책방으로 가기도 했다. 만화가 좋은 것은 상상력의 기본 틀이 될 만한 그림을 보여주면서도, 상상을 펼칠 여백과 서사가 있다는 점이다. 어려운 이야기도 한 사람의 이야기로 펼쳐지면 왠지 쉽게 이해되는 점 때문인지 역사서들도 만화로 많이 나온다. 올 봄 출간된 만화가 김수박의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사람냄새’』(보리출판사, 2012)를 여름휴가 때 읽었다. 제목에서 보여지듯 사람에 대해, 그리고 삼성신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산재로 이 세상을 떠난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삼성과 어떻게 싸웠는지를 다룬 기록이다.

그녀의 일기장에 남아있던 ‘살아있음’

황상기 씨는 딸이 삼성에 들어가게 된 배경, 어려운 집안 형편에 힘을 보태고 싶어 했던 그녀의 착한 심성을 말한다. 유미 씨의 2004년, 퇴사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했던 공정 ENG’R , 암기사항이었는지 여러 번 쓴 작업수칙과 품질수칙 항목들, 노래방에서 친구 금란이와 3시간이나 노래를 부른 날,소설 테스를 사서 읽던 날의 감정,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담겨있던 그녀의 일기장. 그녀가 고민하고 떠들고 울고 웃었던 그것들을 한 장씩 넘기면서 ‘그녀는 살아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을 넘기자 나온 제목 ‘2005년 병의 발견’, 보자마자 그녀의 죽음이 떠올라 가슴 한 구석이 찌릿하다. 메스껍고 토하기를 자주해서 병원에 갔는데 백혈병이었고, 거기에 온 다른 사람들도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아버지. 그 후 그는 면회금지가 걸려있던 그 방 노동자들의 사망소식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의 노후라인에서만 백혈병 환자와 희귀병 환자가 5명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힘든 투병생활, 그녀는 차라리 빨리 죽고 싶다고 했다

유미 씨는 2005년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다. 골수이식 수술을 받으면 의사도 보호자도 아무도 못 들어가고 오직 인터폰으로만 접할 수 있다고 한다. 가족들도 집나가는 것을 자제할 정도로 퇴원해서도 멸균관리를 철저히 해야 했다. 그렇게 홀로 갇혀 병과 마주해야 했던 그녀는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우울증에 걸릴까봐 어머니가 사준 비즈공예책. 그걸 보면서 그녀는 목걸이, 귀걸이도 만들었고, 택시기사인 아버지의 걱정과 배려로 봄에는 나들이도 가끔 갔다. 그녀의 미니홈피에 올려놓은 나들이 사진들이 그대로 실렸다. 웃을 수 없는 그녀의 얼굴과 환한 봄꽃들이 한데 어울려 있는데, 왠지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혀 보인다. 그녀는 사실 울음을 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황상기 씨의 삼성과의 싸움

산업재해 처리를 요구해도 개인적인 질병이라며 잡아떼던 회사. 2006년 10월 삼성직원이 찾아와 사표를 써달라고 요구했다. 삼성과 싸워서 이길 수 있겠냐, 산재 처리는 안 되지만 치료비는 대줄 수 있다는 그 말을 믿었던 황상기 씨. 그러나 유미 씨가 다시 치료를 받아야 해 찾아간 회사에서 준 돈은 겨우 500만원. 억울함에 정당과 방송국도 찾아갔지만 허탕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말>지에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기사가 나온 후 삼성 백혈병 산재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광고로 먹고 사는 신문사에서 최대광고주인 삼성을 비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2007년 3월 6일, 산재신청용 피검사를 위해 수원 아주대병원에 다녀오던 자동차 안에서 유미 씨가 숨을 거뒀다. 그때 그녀의 나이 23세. 유미 씨의 눈을 감기던 것도 생각이 안 난다는 아버지. 그날 집이 있는 속초까지 어떻게 다시 왔을까. 그리고 얘기도 안했는데 삼성직원들이 영안실에 찾아와서는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다. 역학조사 후 산재신청 관련 회사에 갔던 날, 배웅하던 직원이 그에게 했던 말 “10억을 주겠다”. 삼성의 끈질긴 회유에도 백혈병 산재의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아버지와 함께 2007년 11월 삼성 기흥공장 앞에서‘삼성반도체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가 발족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지킴이, 반올림'에 제보된 반도체 산업 피해 노동자들은 2011년 현재 100명이 넘는다. 대부분 암이고, 20대 초반에서 30대 중후반이다. 거대 재벌 삼성에 맞서 싸우던 2008년, 삼성 직원은 집요하게 찾아와 보상금을 줄 테니 산재 인정을 포기하라고 했다. 2009년 5월 근로복지공단은 반도체공장 백혈병 산재를 불승인했다. 2010년 10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불승인 취소소송을 하는데, 삼성의 거대 로펌 변호사들이 공단 변호를 맡았다. 그들이 왜 공단 측을 변호하는지 분명하다. 그리고 2011년 6월 23일 삼성 반도체 직업병 행정소송 1심 선고에서 황유미 씨와 이숙영 씨의 백혈병 사망을 산재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황상기 씨는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을 위해 아직도 싸우고 있다.

사람냄새 나지 않는 삼성과 삼성 공화국

황상기 씨가 생각하기에 이건희 그리고 삼성은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꽃이 질 때쯤 되면 최고의 향이 나거든. 사람도 똑같아. 그 나이 먹으면 사람으로서는 향이 아주 한창 날 때가 아니겠어. 인간으로서 향이 아주 한창 날 때라구. 근데 사람냄새라고는 요만큼도 없어.”, “나이가 좀 먹으면 다른 사람이 좀 안되어 보이면 마음이 편치 않아. 자기회사에서 사람들이 죽는데도 나 몰라라 하고 있잖아.”

책은 첫 장에서 말한 ‘필요한 돈의 양’과 ‘인간의 욕망이 악을 어느 정도 묵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는 어디까지 이 삼성의 악에 대해 묵인할 것인지를……. 당신은 어떠한가?

삼성이 아무리 비리를 저지르고 노동자들의 생명을 앗아가도 결과적으로 삼성이 지켜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티븐 룩스 교수(뉴욕대 사회학과) 말처럼, 삼성권력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권력자의 이익에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게 하는 3차원적 권력인지도 모른다. 해외언론사 기자도 말했듯이 삼성이 중요한 기업은 맞지만 삼성이 흔들린다고 한국이 쓰러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책의 곳곳에서 말한다.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고 노동자가 망한다는 신화, ‘한국과 삼성은 얽혀 있다는 신화’를 깨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려면 혹여라도 삼성이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만도 취급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묵인하면서까지 거대재벌의 자금력과 수익력을 보존해야 한다고 잠깐이라도 생각했던 적은 없었는지 우리는 돌아봐야 한다. 잘나가는 삼성이 있어야 우리의 욕망이 채워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이 ‘사람 냄새’인지도 모른다. 돈 냄새에 젖어 혹시 사람냄새를 잊은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에 묻는 것이다.

책의 끝에 그녀가 병에 걸리기 전 환하게 웃던 실제 사진이 펼쳐지고 일하던 모습이 그려있다. 마지막 장의 의미는 어쩌면 수많은 유미 씨가 웃으며 일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는 것, 적어도 노동자가 어떤 위험에 놓여있는지 충분히 정보를 제공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 작업장 청정교육만이 아니라 작업장 안전교육도 있어야 하며 일하다 아프면 당연히 치료받는 세상을 만들자는 소망과 제안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산자의 몫은 아닐까?

자매 책, 『먼지 없는 방』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삼성 백혈병 산재투쟁을 다룬 또 하나의 만화가 있다. 『먼지 없는 방』(김성희 만화,2012) 이다. 그 책을 보면 반도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알기 쉽게 그려져 있다. 그/녀들이 왜 백혈병이라는 산재를 겪게 되고, 노동과정에서 작업공간의 청정을 위해 얼마나 많이 욕망을 누르고 인내를 감수해야 하는지 말이다. 노트북, 스마트폰 등 온갖 반도체를 지니고 생활하는 우리 모두에게, 그/녀들의 노동과 그/녀들의 싸움을 되새길 수 있도록 두 권의 책을 권한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