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평등정책 토론회를 다녀와서

지난 10월 23일, <가족, 의무에서 권리로 차별에서 평등으로> 라는 이름으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평등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가족, 그것은 내게도 화두다. 지난해 나는 꿈에 그리던 집을 구매하려고 대출을 알아보다 신혼부부 대출 조건보다 싱글의 주택담보대출 조건이 훨씬 열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위장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해봤었다. 현재 만나는 애인과 혼인 신고를 하고 이혼을 하면 그 꿈의 집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스친 것이다. 결혼에 의사가 없는 내가 국가의 실효적인 주거정책의 수혜를 입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인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제도를 이용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혼자 사는 사람의 주거권을 차별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주거 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주거권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는 혼인과 혈연이라는 ‘정상가족’ 모델을 중심으로 차등 보장되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평등정책 TF는 이와 관련해 혼인과 출산이라는 정상가족 모델에서 벗어나 개인의 다양한 삶의 조건들과 가족형태 및 상황에 맞춘 주택공급 및 지원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평등정책으로 제안했다.

한편 나의 도발적인 계획, 그러니까 결혼하고 이혼해서라도 집을 마련해보겠다는 야심은 그나마 내가 이성애 연애를 하기에 가능한 상상이었다. 한국에서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는 혼인이다. 그러나 혼인제도에 진입할 수 없는 성소수자들에게 나의 “실천가능한” 상상을 제안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나의 고민에 평등정책팀은 답했다. “개개인들이 맺은 관계를 차별 없이 평등하게 인정받을 권리는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가족을 구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핵심적”이다. “이미 성소수자, 비혼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 수 많은 사람들이 혼인관계와 부모자녀관계라는 전통적 가족 형태를 벗어나 실질적인 가족, 생활 공동체를 구성하며 살아가고 있고, 제도적 혼인관계를 맺지 않은 이성애 동거가족 또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생활동반자관계의 증가는 가족제도가 혼인과 혈연을 통해 맺어진 협소한 관계만이 아니라, 상호적인 애정에 기반해 실질적으로 서로를 돌보고 보호하는 다양한 파트너십과 돌봄관계들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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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는 가족과 돌봄이라는 화두도 다뤘다. 돌봄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혈연중심의 가족 관계 안에서 사고되는 것 같다. 나 역시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를 여전히 혈연가족 안에서 사고하는 데서 자유롭지 않다. 나는 가끔 요양원에 사는 나의 친애하는 할머니를 생각한다. 그를 볼 때마다 돌봄의 의미를 돌아본다. 할머니는 과연 누가 돌보고 있는걸까. 가족이 돌봄 비용을 대고 있지만, 과연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으로 채워지는 시간들을 누구와 관계 맺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할머니는 행복할까. 할머니의 선택은 할머니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고 있을까. 돌연 할머니가 아니라 나의 생의 마지막은 어떠할까 상상해본다. 행여 무병장수라도 하게 된다면 나를 누가 돌봐줄까. 그때쯤이면 부모님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테고,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나의 ‘친’동생에게 돌봄을 의탁해야 할까. 결혼한 친구들이 농담처럼 나이 들어서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서 자식 낳는다는 말에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돌봄 발제를 맡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의 말대로 '나의 선택이나 결정을 가장 잘 알아차리고 가장 나중까지 나를 지켜줄 사람'은 누구일까.

평등정책팀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그 가족에게 운명을 기댈 수 있게 하는 것과 동시에, 당사자와 함께 그 운명을 책임지고 싶은 사람이 배제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특정한 사람에게 기대지 않더라도 자기 결정을 지키고 이룰 수 있도록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나는 진정 생의 마지막까지 내 존재가 “민폐”로 취급받지 않고, 나의 의존이 일방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내면화한 사회에 살고 싶다. 내가 내린 결정과 선택들을 존중받으면서 살아가고, 생을 마감하고 싶다. 이런 개인의 바람에 ‘그러니까 결혼해서 애 낳아 정상가족을 꾸려야 해!’ 라고 응답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싶다. 오히려 혈연 가족 중심적 특권을 해체하고 굳이 가족이라는 개념을 경유하지 않고도 좀 더 많은 의존적인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궁리하는 사회에 살고 싶다. 이번 토론회에서 얻은 한 가지 위안이라면 적어도 나의 바람이 헛되지만은 않다는 사실. 지금 보다 덜 차별적인 세상을 꼭 오리라는 확신. 아니 그보다는 그런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나의 작은 실천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