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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아니라고 빠지고, 의료인이 아니라고 치이고

감염산재사고에서 드러난 간병노동자의 건강권

천하장사, 집 없는 자, 따뜻한 사람...

내가 어렴풋하게 본 간병노동자의 첫 이미지였다. 평소 건강한 편이라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다. 그러다 몇 년 전 입원한 가족 때문에 병원에 자주 드나들게 되면서 병실에서 마주친 간병인. 그녀는 환자의 옷도 갈아입히고 휠체어에 환자를 태워 욕실에도 가고 검사실에도 가곤 했다. 덩치가 있는 환자의 옷을 갈아입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참 힘이 세구나’ 생각했고, 저녁에 병실 보조침대에서 자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집은 어디지? 집에는 가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고, 낮에 활발하게 웃으며 주변사람들과 먹을 것을 나눠먹는 모습을 보며, ‘참 친절한 분이시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2010년 청소노동자권리 찾기 캠페인을 하면서 간병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때 그녀들이 냉동시켜놓은 밥을 매끼마다 서서 먹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작년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감염산재사고 대응을 하면서 간병노동자들도 감염산재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띄엄띄엄 알았던 간병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그제서야 조금 보였다.

작년 서울대병원에서 발생한 주사바늘 찔림 사고로 간병노동자들이 감염 예방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감염산재사고가 생겨도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간병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많이 알려졌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대책위를 만들어 서울대병원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이후에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동부도 찾아가고 복지부도 찾아갔다. 그때마다 담당자는 ‘노동자라 어쩔 수 없어요’, ‘병원 직원이 아니라 조치할 수 있는 게 없어요’라는 답변만 반복할 뿐이었다. 답답했다. 실태 파악을 위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청소노동자 뿐 아니라 공공운수노조 소속 의료연대지부의 병원간병노동자 감염산재사고 설문조사를 했고, 조사결과 분석은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이 했다.

고령여성, 종일 근무. 저임금, 산재보험 미적용

조사에 참여한 4개 대학병원(강원대, 경북대, 서울대, 충북대) 257명 간병인의 98.4%가 여성이었다. 대상자의 평균 연령은 56.6세였으며, 간병인 경력은 6.4년, 현재 병원 근무는 4.66년이었다. 꽤 오랜 경력이지만 노동시간도, 임금도 전혀 여유롭지 않았다.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110시간으로 5일제 8시간 근무노동자들에 비하면 3배 가까이 일하고 있었다. 아래 표에서 나타나듯이 조사자의 69.5%가 하루 24시간씩 주 6일 연속근무(주 144시간)를 하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장시간 노동이지만 월평균 임금은 100만원 내외였다. 왜냐하면 간병노동자는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최저임금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당 임금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 적은 2500원에서 3000원 정도이다.


조사결과 31%의 간병인이 주사침 등의 사고 경험이 있었지만 위험에 대해 사업주로부터 고지 받은 경우는 35.4%에 지나지 않았다. 나아가 사고이후 치료비용은 96.1%가 본인이 한다고 했다. 이미 언급했듯 간병노동자는 노동자로 간주되지 않기에 비빌 제도도 없다. 간병노동자의 고용형태는 다양하다. 아직까지 간병서비스 사용유무는 환자 개인이 선택하도록 되어 있고, 병원에서 간병서비스를 제도적으로 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병노동자의 고용형태는 소개소 같은 파견업체를 통한 경우, 환자와 1대1 계약을 통한 경우, 병원에서 직접고용한 경우로 나누어진다. 하지만 직접고용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법적으로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가사사용인으로 규정되어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대상이 아니다. 반면 원청인 병원의 책임은 전혀 없다. 영국의 경우, 유해물질관리법에 원청 사업주인 병원은 직접고용 노동자 뿐 아니라 하도급노동자, 자영업자까지도 보호하는 것이 의무로 되어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한국은 병원에게 매우 관대하다. 그 관대함의 결과는 노동자들의 피해로 이어지는데도 말이다.

노동자가 아닌 가사사용인이어서 안 된다고?

실제 우리가 노동부를 만났을 때, 담당자들은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간병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서 보호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 간병노동자 수는 대략 3만 명인데 이들은 보호받지 못한다. 노동부가 고시(근기 68207-2409)한 바에 따르면 ‘간병노동자의 경우 간병인과 환자 측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러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사료되며, 동조동항 단서에 의해 근로기준법 적용이 배제되는 가사사용인에 가깝다고 판단하며, 간병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아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적용을 받고 있지 않’는단다. 그러니 법정노동시간, 휴일 휴가, 퇴직금, 법정수당 등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이 일체 적용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노동부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고용(계약)관계가 간병인 개인과 환자나 환자보호자가 계약을 하는 형태를 띠고 있더라도 이들은 엄연히 노동해서 소득을 벌고 있는 노동자다. 노동자성을 고용형태로 한정해서 인정하는 것이 맞는지, 왜 ‘특수한’ 고용형태를 띠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살펴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렇다면 오히려 노동자성을 고용관계로 한정하여 해석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현행 노동법에서 간병인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공식적 차별이다. 2011년 6월 ILO 100차 총회에서는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며 △노동3권 보장·강제노동 철폐·고용상의 차별 철폐 △근로서면계약·임금 및 휴가 보장 △알선업체의 사용자성 인정 △가사노동이 이뤄지는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 내용을 포함하는 ILO 협약 189호를 채택했다. 이러한 국제적 추세에 비추어도 간병인의 노동자성을 더 이상 부인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환자에 대한 돌봄노동은 중요한 의료서비스 중 하나이다. 장기적으로 모든 사회구성원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해 간병서비스를 제도화하는 것이 선행과제다. 간병서비스가 공공제도로서 정착하기 이전이라도 우선적으로 간병노동자와 같은 ‘특수고용관계’에 있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에 명시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작년 7월 노동부에서 발표한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확대적용 대책에서 간병노동자들은 제외됐다. 당장 노동자성을 전면적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산안법과 산재보험법의 적용대상이라도 된다면 간병노동자들이 지금처럼 산재시 자비로 치료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간병노동자에게 좋은 것은 환자에게도 좋은 것이다. 간병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나아진다면 간병서비스의 질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의료인이 아니라서 감염되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병원에서 행해지는 간병서비스는 넓은 의미에서 환자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므로 간호영역에도 속한다. 현재 간병이 의료행위로 규정되고 있지는 않지만 간병 없이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병원에서 간호사가 부족해 흡인, 위장관 이동식 주입 등 간호행위가 간병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경우도 왕왕 있는 현실이다. 또한 간병노동자가 환자와 밀착해서 ‘병원에서 생활하고 일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환자가 병원에서 기회감염에 노출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도 간병인의 감염예방은 중요하다. 하지만 병원은 간병인을 병원이 직접고용한 것이 아니니 간병인의 감염예방과 산재처리에 대해서는 ‘나몰라’라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서 청소노동자와 간병노동자가 에이즈 감염 환자의 주사바늘에 찔리는 사고 이후에도 병원의 태도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병원 감염관리 의무가 있는 복지부 담당자를 만났을 때, 우리는 병원 감염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복지부의 책임을 물었고, 대책을 요구했다. 그때 담당자는 간병인은 의료인도, 병원 직원도 아니기에 ‘보호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말을 했다. 의료법에 명시된 병원 감염예방관리의 대상은 병원에 있는 환자와 직원이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의료법은 모든 사람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의료법 1조는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간병인도 건강을 보호받을 대상자이므로 복지부는 의료법의 제한과 배제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의료법 47조의 병원 감염예방의 의무를 협소하게 명시한 조항은 바뀌어야 한다. 나아가 감염관리 프로그램에서 하나의 축을 구성하는 것이 병원직원의 감염예방이기에 직원을 고용관계로 한정지어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실효성도 없다. 그래야 환자의 기회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고 환자와 병원을 드나나는 방문객의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다. 간병노동자의 건강권과 환자의 건강권은 함께 연결되어 있다.

국제인권기준에 따르면 복지부의 이런 태도는 국민인 간병인의 건강권을 보호할 적극적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권 실현을 위한 3중 의무(존중, 보호, 실현)가 정부에게 있다. 보호의 의무란 국가가 민간기업과 같은 제3자가 도달 가능한 최고수준의 건강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조치를 취하는 것이며, 실현의 의무란 국가가 건강권의 완전한 실현을 위하여 적절한 입법적․행정적․예산적․사법적 등등의 방안을 채택하는 것이다. 간병인의 건강권을 병원 측이 침해하고 있으나 정부가 이를 방치하여 건강권 보호의무를 위반했고, 간병인의 건강권과 노동권을 보호할 입법체계를 만들지 않아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게 내동댕이쳤으니 실현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간병인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병원을 감독해야 하는 것이지, 법에 기대어 의무를 방기하는 것은 부작위에 의한 정부의 인권침해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법에 의해 권리는 박탈되고 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라도 하라

법 개정이 당장 어렵다면 우선 시행령과 관련 지침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도 현장에서 간병인의 감염산재를 예방할 수 있다. 의료법 47조에 따르면 병원급 의료기관은 감염예방을 위해 감염관리위원회와 감염관리실을 운영해야 한다. 감염관리 업무를 수행할 전담인력을 두는 것을 명시하면서 개정(2011.8)된 것은 긍정적이나 병원감염예방을 위한 기초원칙이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대부분 시행령으로 위임한 것은 문제이다. 특히 직원에 대한 해석 지침이 없어 직원을 고용관계로 한정해서 해석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시행령(43조 7호, 8호)에 있는 '직원'을 고용관계로만 한정하지 않도록 ‘보건의료 종사자’로 바꾸거나 ‘의료기관 근로자’로 개정하고, 관련 지침을 만들 때 용어 정의를 추가하는 것이다. 그때 ‘의료기관 근로자’정의에 간병인을 포함시키면 된다.

아직까지 다른 지침에 나와 있는 용어 정의에는 간병인은 빠져 있다. <의료기관 근로자의 화학물질 노출에 대한 보건관리지침>에 따르면 ‘의료기관 근로자는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등 의료행위를 직접 하거나 보조업무를 하는 근로자와, 의료기관에서 시설 관리, 청소, 세탁, 인쇄, 음식료의 준비 및 배식, 폐기물의 수집이나 처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로 되어있다. 지침을 만들 때 용어의 정의에 간병인을 포함하여 수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제기준에 의하면 보건노동자에 대한 정의는 노동형태나 계약관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WHO(세계보건기구), ILO(국제노동기구), UNAIDS(유엔에이즈)의 정의에 따르면 보건노동자(health worker)란 행위의 주요한 목적과 취지가 건강증진을 휘한 일련의 활동에 임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로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 외에도 재무담당자, 요리사, 운전사, 청소노동자, 안전보안요원과 같은 경영, 관리, 보조노동자까지도 포함하며, 급성질환자를 위한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장기요양원, 재가복지서비스, 그룹홈케어에 종사하는 사람 그리고 간병인까지 포함한다.

[의료법 시행령]

제43조(감염대책위원회의 설치 및 기능) ① 법 제47조제1항에 따라 병상이 300개 이상인 종합병원의 장은 병원감염 예방을 위하여 감염대책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를 설치·운영하여야 한다.
② 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심의한다.
1. 병원감염에 대한 대책, 연간 감염예방계획의 수립 및 시행에 관한 사항
2. 감염관리요원의 선정 및 배치에 관한 사항
3.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감염병환자, 감염병의사환자 또는 병원체보유자의 처리에 관한 사항
4. 병원의 전반적인 위생관리에 관한 사항
5. 병원감염관리에 관한 자체 규정의 제정 및 개정에 관한 사항
6. 병원감염관리 실적의 분석 및 평가에 관한 사항
7. 직원의 감염관리교육에 관한 사항
8. 감염과 관련된 직원의 건강관리에 관한 사항
9. 그 밖에 병원감염관리에 관한 중요한 사항

‘어떤 감염질환’ 이 아닌 ‘누구를 위한 구조’인가의 문제

서울대병원에서 일어난 간병, 청소노동자의 감염산재사고에서도 드러나듯이 산재사고의 원인은 ‘환자가 어떤 질환’이 있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병원과 국가가 노동자의 감염예방을 위해 필요한 제도를 전혀 구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병원 안에는 각종 세균, 바이러스가 존재하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는 항상 이에 감염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산다. 그럼에도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거나 의료인이 아니면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도록 강요하는 구조가 문제이다. 따라서 간병노동자가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예방하고 교육하고 치료와 보상 등의 사후 조치가 필요하다. 서울대병원에서 에이즈감염 환자의 주사바늘에 찔린 간병노동자 산재사고는 환자 때문에 생기거나, 특정 질환이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병원이 간병인에게 어떠한 감염예방 교육도 하고 있지 않은 현실, 병실에 뚜껑도 닫히지 않은 주사바늘이 돌아다니는데도 관리감독이 안 되는 현실, 사고가 발생해도 병원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안전보건관리실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차별의 현실, 다쳐도 산재인정도 받을 수 없는 산안법과 산재보상법의 현실이 ‘위험’ 그 자체인 것이다. 또한 왜 주사바늘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고는 병원이 인력비를 줄이기 위해 의료 인력을 줄이고, 관리감독을 하지 않고, 병원 필수인력인 청소노동자와 간병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나아가 그렇게 해도 되도록 국가가 허용한 현행 의료시스템, 노동법, 의료법이 문제이며, 이러한 법제도가 허용된 사회가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삶을 사는 것, 건강에 대한 권리를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정 질병의 모습과 양태에만 주목하고 그 질병에 대처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질병의 발생 원인과 환경, 권력관계 등 전체적인 사회적 맥락을 봐야 한다. 간병노동자의 감염산재사고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비롯한 사회적 환경과 물리적 환경, 환자들을 둘러싼 의료환경과 차별, 그리고 그 속에 사는 개개인의 경험이 질병과 개인(집단)에, 제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아야 해결할 수 있다. 간병노동자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제도는 무엇인지,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고민하면서 실천해야 할 때이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