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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선거 놀음에 파묻힌 인권 법안

원폭피해자, 60년 만에 세상으로 나오다

[기획] 선거 놀음에 파묻힌 인권 법안 (17) 원폭피해자 특별법안

국회가 그들의 고통과 눈물을 다시 밟아버렸다

지난 2005년 8월 4일, 조승수 의원(민주노동당)을 포함하여 국회의원 23명이 연명한 가운데 ‘한국인 원자폭탄피해자 진상규명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아래 원폭피해자 특별법안)이 발의되었다. 세상에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원폭피해자들이 원폭 투하 60년 만에 최초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60년간 스스로 원폭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겨 왔다. 이들은 그간 정부가 또 다른 이유로 침묵한 것과는 달리 원폭의 피해가 대물림의 형틀로 후대에게 전달되어 결혼, 취업 등 모든 사회생활에서 차별 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대물림의 피해를 스스로 입 다물고 자신의 이 비참한 삶을 당대의 문제로 끝내고 싶었다. 그간 이미 90%의 1세 피해자가 죽어갔고, 그 자녀들 역시 일반인들보다 무려 100배에 이르는 유병률을 보이면서 이름도 모르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가 죽어갔다.

1세대 피폭자수와 한국인의 피해상황 추정 [출처] 이치바 준코,「한국의 히로시마」, 1998

▲ 1세대 피폭자수와 한국인의 피해상황 추정 [출처] 이치바 준코,「한국의 히로시마」, 1998



일제강제동원피해자나 5.18민주항쟁자 등 각종의 사건들이 진상규명이 되고, 피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 원폭피해자들의 문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원폭피해자 특별법안은 이렇게 역사의 무덤에 묻혔던 그들을 다시 살아 있는 존재로 이 역사 속으로 나오게 하여 그들을 인간으로서 다시 존재하게 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역사적 책무를 방기한 국회에 의해 다시 묻혔다.

선지원, 후규명 - 인권을 중심에 놓고 보다

전쟁을 일으키고 강제로 조선인들을 끌고 갔던 일본은 원폭문제에 있어서는 전쟁책임보다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오히려 항변하고 있다. 폭탄을 만들어 직접 떨어뜨린 미국은 승전국이란 미명 아래 그 책임의 꼬리를 감추고 있으며 원폭문제를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로 회피하고 있다. 게다가 피해를 당한 국민을 대신해서 당사국들에게 책임을 묻고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한국정부는 60년간 우리가 조국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원폭피해자들을 외면해왔다.

그래서 원폭 투하 이후 이들의 비참한 삶은 매우 정치사회적인 형벌이었다. 아픈 몸을 끌고 왔기에 노동해서 생계를 꾸려갈 형편이 안 되었고 그래서 아이들을 교육시키지도 못했다. 게다가 그 자녀들조차 이름도 모를 병에 걸려 집안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 사회적 차별이 무서워서 스스로를 원폭피해자라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이 와중에 자신을 원폭피해자 2세라고 외치며 나타난 이가 바로 ‘김형율’이다. 이 땅에 자신과 같은 병명의 환자를 보지 못했다던 그는 폐기능의 70%가 망가졌었고 그래서 계속 기침을 했다. 계단을 오르기조차 힘들었고 여름에도 감기에 걸릴까봐 두꺼운 옷을 입었다. 물론 혼자 다니기도 어려운 체력 때문에 늙으신 아버지가 24시간 그의 수족이 되어야만 했다. 이런 그가 ‘원폭피해 2세 환자’로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의 주장은 명료했다. 바로 ‘선지원 후규명’이었다. 원폭피해자 특별법안은 그래서 원폭피해자 지원(의료지원 : 제3장 14조 의료지원비 지급, 생계지원 : 제4장 16조 수당지급, 17조 장제비 지원 등)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람을 살려놓고 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던 그가 2005년 5월 29일 결국 기침을 하면서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이 원폭피해자 특별법안은 그의 이런 정신을 모두 담은 것이다. 그 정신은 결국 지금도 그렇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살면서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원폭피해자와 그 자녀들의 고통을 법제화를 통해 구제하고자 했던 것, 바로 그것이다.

고 김형율 씨의 영정. 장례식이 열린 2005년 5월 31일 부산대병원 영안실.

▲ 고 김형율 씨의 영정. 장례식이 열린 2005년 5월 31일 부산대병원 영안실.



1세와 함께 후대의 피해를 인정하라

한국정부가 이 법안을 외면하는 핑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원폭의 피해가 대물림된다는 의학적 근거가 없음’이다. 일본이 자국 내의 2세 피해자들에게 하는 내용과 똑같은 질문을 피해자인 자국 국민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피폭자의 건강실태에 대한 연구조사사업과 피폭 2세에 대한 건강영향조사사업을 하고 있는 방사선영향연구소(ABCC)가 ‘방사선 피폭이 유전효과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라고 한 것과 이를 근거로 지원 제도에서 2세, 3세들에 대한 지원이 배제되고 있는 상황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연구소가 ‘증거 없다는 말이 곧 유전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과 함께 이 연구소가 수십 년간 미국의 재정지원 아래 운영되었다는 사실은 이 연구소가 내린 결론에 대한 정치적 의심을 가능하게 한다.

2005년 10월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15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원폭피해자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국가인권위를 점거했다.

▲ 2005년 10월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15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원폭피해자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국가인권위를 점거했다.



원폭피해자 특별법안은 “1945년 8월 6일 일본의 히로시마와 동년 동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해 피해를 당한 자와 그 자녀 등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의료 및 생활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함”(제1조)이라고 명시하고, '자녀'에 대한 규정을 “원자폭탄에 직접 피폭되지 않았으나 부·모 또는 조부·모 등 직계존속 중 어느 한쪽이 원자폭탄 피해자인 경우”(제2조)로 규정함으로써 최대 3세까지를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원폭피해자 2세 실태조사에서 드러났듯이 2세들의 유병률이 일반인들보다 적게는 수십 배에서 많게는 100배에 이른다는 조사결과와 함께 바로 지금도 눈앞에서 죽어가는 당사자들에 근거한다.

피해자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의 문제는 법안의 매우 핵심적인 문제이다. 이는 피해자를 역사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원폭의 문제를 당대의 문제가 아니라 후대의 문제로 이어가게 하는 것이고, 원폭의 문제를 반핵 반전을 넘어서서 평화와 인권의 문제로 넓혀가는 당사자 고리를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폭피해자 특별법안이 일본의 국회도 아니고 한국의 국회 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 1년에 100여 명 이상의 1세와 2세가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국민을 위한다고 떠벌리는 그들은 돈 문제를 이유로, 또 정치적인 문제를 이유로 이 법안에 눈길도 안주고 있다. 가증스러운 국회다.
덧붙임

◎ 강주성 님은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