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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인권이야기] 빅브라더는 어디쯤 와 있는가

얼마 전 극장에서 '본 얼티메이텀‘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전직 CIA 요원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조직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정보기관을 상대로 싸움을 벌여나가는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좁혀오는 CIA의 감시망과 킬러의 추적을 피해 다닌다. 그런데 영화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CIA가 주인공을 비롯, 보도 기자 등을 실시간으로 도청하고 감시하는 전세계 실시간 감시 시스템이었다. 인터넷, 유무선 통화 등 전세계의 통신망을 실시간으로 도청하고, 공공장소에 설치된 CCTV 등을 이용하여 권력 체제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것이다.

권력에 의한 전방위적인 감시란 소재는 ‘1984’, ‘브라질’ 등의 고전 SF 영화를 연상시키지만, 이 영화를 SF라 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영화에 나오는 기술들은 지금도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전 세계 통신망에 대한 실시간 도청은 미국 등의 강대국들이 ‘에셜론 프로젝트’ 등을 통해 현재 운용 중이다. 영화에서 감시 대상자에 대한 개인 정보가 실시간으로 감시 센터에 나타나는 것도 현실에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재 미국이 비자면제프로그램(VWP)의 전제조건으로 각국에 요구하고 있는 전자여행허가제도(ETA)나 여행자 정보 공유 협정은 여행자의 사법 기록은 물론, 정보기관이 사찰하고 분류해 놓은 정보까지 전자적으로 공유할 길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지문 등의 생체정보를 담은 생체여권(전자여권)은, 원거리 인식 기계를 활용한 자동적인 감시 추적에도 노출될 수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 가입을 추진하고 있고, 가입이 유력시되고 있다.

에셜론 시스템에 사용되는 것으로 믿어지는 위성 수신 기지의 레이더 돔 [출처] 위키피디아(wikipedia.org)

▲ 에셜론 시스템에 사용되는 것으로 믿어지는 위성 수신 기지의 레이더 돔 [출처] 위키피디아(wikipedia.org)



한편 이렇게 개인의 형사 사법 정보가 국경을 넘어 전자적 접근이 가능해지려면, 국가가 개인의 형사 사법 정보를 전자적으로 축적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형사사법통합정보체계가 2003년부터 검찰 주도하에 추진되고 있는데, 이는 검찰과 경찰, 법원 및 법무부의 정보 시스템들을 하나로 통합, 데이터베이스화 하여 개인의 형사 사법 기록을 전자적 수단에 의해 통합적으로 접근가능 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그래서 전자문서에 의한 전자재판 등을 통해 형사사법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형사 사법 정보는 가장 민감한 개인 정보로서 수집, 보관, 이용이 법률과 제도에 의해 엄격히 제한되어야 하지만, 제도적 보호 장치 마련도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통신에 대한 감청이나 정보 수집 및 통제 역시 제도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급속히 강화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국정원은 무선 통화의 도청 가능성에 대해 부인해왔지만, 삼성의 대선 관련 검찰 매수 도청 사건이 폭로되면서 국정원에 의한 무선 통화 감청이 불법적으로 이루어져왔다는 것이 드러난 바 있다. 그러자 정부는 아예 '통신비밀보호법'을 바꿔서 합법적으로 더 쉽게 감청하고, 무선 전화 사용자의 위치까지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 이용자의 모든 인터넷 접속 기록을 남기도록 의무화하여, 익명이 보장되던 인터넷 공간을 국가권력이 추적가능한 곳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정보통신망법'을 바꾸어 인터넷 상의 표현에 대한 검열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통상적인 일국적 감시 권력을 강화시킬 뿐더러, 위에서 언급한 국가 간 개인 정보 공유 등의 제도를 통해 더 큰 전세계적 감시 권력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할 수 있다. 사실, 빅브라더는 이미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문제는 빅브라더가 존재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점점 더 확장되는 빅브라더에 민주주의와 인권은 어떻게 맞설 것이냐 하는 점이다. 전통적인 민주주의 운동 진영뿐만 아니라, 정보기술자들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