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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노동 피착취 인민의 권리선언(1918)

1918년에 제정된 ‘노동 피착취 인민의 권리선언’은 러시아혁명의 목적과 사회주의적 권리구상을 담고 있는 문서이다. 레닌이 기초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에 그대로 수록된다. 사회주의혁명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적 권리들이 인권에 침투되고, 1919년 바이마르 헌법이나 국제노동기구(ILO) 헌장 등을 통해 경제·사회적 안전망을 도모하게 되었다는 것은 널리 얘기되는 바다.

‘권리선언’이란 제목이 붙어있지만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선포됐던 수많은 ‘권리선언’의 양식과는 아주 다르다는 걸 볼 수 있다. 흔히 권리선언이라 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무슨 무슨 권리가 있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 선언에는 그런 표현이 전혀 없다. 대신에 ‘토지의 사적 소유 폐지’, ‘생산·운송수단의 국유화’, ‘모든 은행의 국유화’, ‘보편적 노동의무’ 등이 언급돼 있다. 여기에 사회주의적 권리의 특징이 집약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적 권리 시각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인권을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내지 자유로운 소유권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소유권 말고 다른 인권들은 ‘선언’될 뿐 실제로 보장받을 수 없다고 비판한다. 권리와 의무의 토대가 되는 경제적 기초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인간이 진정으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아닌 사회적 소유야말로 모든 권리와 의무의 토대이다. 생산수단을 사회가 소유하는 것은 사회의 기본구조이기에 이것은 ‘인’권일 수가 없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는 시민의 시민·정치적 권리,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전체의 기초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 피착취 인민의 권리선언에서 제일 강조하고 있는 바는 바로 권리의 토대가 되는 ‘생산수단의 사회화’이다.

이런 기초 위에서 권리는 더 이상 국가와 대립되는 개인이 갖는 권리이거나 또는 국가가 부여하는 권리도 아니고 국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갖는 천부의 권리도 아니다. 권리는 사회성원이 공동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기초로 해서 노동의 주체가 동시에 소유 주체이며, 또 이 주체는 집단과 공동체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들 시민간의 경제적 관계와 정치적 관계는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 공동소유자로서의 생산과정 참여는 곧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는 평등한 시민이라 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정치와 경제의 이원성은 사라지고, 기존의 인권 개념은 근본적으로 바뀐다. 대표적인 예가 노동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권은 시민이 고용을 요구하고 국가가 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정도의 의미라면, 사회주의에서의 노동은 사회적 소유권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기초이기 때문에 “보편적 의무”이다.

사회주의 시각에서 자유란 자본의 구속으로부터 노동을 해방하는 것이고, 평등이란 계급을 철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인권문제를 특별히 다룰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선언에서 사용되는 ‘권리’라는 말의 의미는 기존의 인권에서 사용되는 의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선언을 시작으로 전개된 사회주의 권리사상이 기존의 인권사상과 계속해서 충돌한 것은 당연하다. 물론 사회주의적 권리시각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직접 생산자로부터 분리된 관리자 집단과 시민을 억압하는 특수한 무장집단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은 인권의 논리를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요구하지 않는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적대적인 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면, 국가와 시민사이에 그리고 사회와 개인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없다는 성급한 결론은 인권에 치명적이지 않은가 등과 같은 비판이 그 중 일부다.

인권은 특정한 역사적 범주에 속하는 권리들의 부정을 통해 성장해왔다. 사회주의적 권리 시각은 그러한 부정과 인권의 발전에 분명 기여했다. 이 선언에서 부정하고 있는 권리들이 지금 우리의 인권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의 의미는 적지 않다.

노동 피착취 인민의 권리선언, 1918

제 1조

1. 러시아는 노동자·병사·농민 소비에트들의 공화국임을 선포한다. 중앙과 지방의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들에 속한다.
2. 러시아소비에트공화국은 각 민족 소비에트공화국들의 연방으로서, 자유로운 인민들의 자유로운 연합에 의거하여 창립된다.

제 2조
제헌의회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착취를 억제하고, 사회 속의 계급 차이를 완전히 철폐하는 것을 공화국의 목적으로 한다. 공화국은 착취자를 무자비하게 분쇄하고, 사회주의적 토대 위에 사회를 재조직하며, 전세계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달성할 목표를 가진다. 또한 공화국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결의한다.
1. 토지의 사회화를 달성하기 위하여 토지의 사적 소유는 폐지된다. 전국토는 국민의 재산이며, 토지의 평등한 사용 권리에 근거하여 경작자에게 무상으로 증여된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모든 산림, 부존자원, 해수면, 그리고 가축, 기계설비, 시범농장, 농업 생산활동 등은 국가의 재산임을 선포한다.
2. 공장, 상점, 광산, 철도 및 기타 생산과 교통수단을 공화국으로 완전히 이양할 첫 단계로서, 그리고 착취자에 대한 노동대중의 우월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제헌의회는 제2차 노동자·병사 소비에트 및 농민 소비에트 통합대회가 제정한 노동자의 [생산] 통제에 관한 법률 및 인민경제 최고소비에트에 관한 법률을 인준한다.
3. 제헌의회는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노동대중을 해방시킬 조건으로서 모든 은행의 소유권을 노동자·농민 정부로 이양할 것을 인준한다.
4. 사회의 기생적 계급들을 제거하고 국가의 경제활동을 조직하기 위하여 노동의 보편적 의무가 도입된다.
(아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