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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프랭클린 루스벨트, “네 가지 자유”(Four Freedoms)(미국의회 연설, 1941.1.6)

경제·사회적 권리, 즉 사회권이 국내적·국제적 인권목록으로 진입하게 된 배경을 단순하게 얘기하기는 어렵다.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에 걸맞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다양한 종교적·철학적 배경 속에 자리하며, 그를 위한 길고 수많은 투쟁 속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2세대 권리’라고 얘기되는 사회권이 국제적 인권의 의제로 등장하게 된 것은 대공황과 사회주의 혁명,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였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바다.

연설하고 있는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출처; www.achievement.org>

▲ 연설하고 있는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출처; www.achievement.org>

사회권 옹호자들이 그것의 정치적 동기와 무관하게 즐겨 인용하는 표현이 있다면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다. 이 표현이 들어있는 문서가 바로 뉴딜정책으로 유명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1년 1월 미국의회에서 행한 “네 가지 자유” 연설이다. 이어 “결핍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표현이 1941년 8월 루스벨트와 처칠의 공동선언인 대서양 선언(the Atlantic Charter)에도 담기게 되며, 1944년 루스벨트의 연두교서에서 반복 천명된다. 1944년 연두교서에서는 “결핍된 인간은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다”란 표현이 나오며, 노동의 권리, 적절한 식량과 주거에 대한 권리, 의료보호에 대한 권리, 교육에 대한 권리 등을 “제2의 권리장전”으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다. 이런 견해가 국제인권장전을 예비한 중요한 초고 중의 하나인 미국법률연구소(ALI)의 제안에도 반영되게 된다.

대공황과 그 후 이어진 전쟁으로 초래된 고통이 워낙 컸으므로 국가의 시장 불간섭 내지 국가역할의 축소 같은 전통적 인권개념에서의 국가 역할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경제위기와 대규모 실업문제가 파시즘의 기세를 북돋았으니 정당한 권력이라면 정치적 자유와 복지를 결합시킨 속에서 공공부문의 지출을 늘리고 빈곤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사회주의 혁명과 그를 강력한 대안으로 여기는 세계 곳곳의 여론도 의식해야 했다. 이를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 의사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네 가지 자유’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목표를 안정적으로 추구하려면 평화가 보장돼야 한다. 총력전으로 표현되는 거대 규모의 국가 간 폭력행위를 방지하려면, 유명무실한 국제연맹보다 더 강력한 국제기구의 건설이 요구됐다. 그 국제기구가 터 잡아야 할 핵심목적이 평화유지와 인권의 존중과 보장이어야 하는 것이다. ‘네 가지 자유’ 연설은 그 같은 원칙에 기반한 국제기구의 건설을 주창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 이 연설은 어디까지나 ‘현실’ 정치인,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정치인의 표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 연설에 비판적인 시각에는 미국의 2차 대전 참전에 대한 국내의 동의를 얻기 위해 그리고 대외정책 수정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인권을 앞세웠다는 의견이 있다.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권을 동원한 초기 사례이며,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유방임형 경제에 복지정책을 버무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자유에 대한 호소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 더 심오한 것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준 것이라 보는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에 대해 반대하기는 어렵다. ‘어떤’ 자유를 위해 싸우느냐를 가리지 않고 ‘자유를 위한 성전’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의 폐해를 오늘날 우리는 이라크를 통해 분명히 보고 있다.

또다른 비판에는 사회불안에 대응하는 복지의 주창이 시민의 기본적 자유를 침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있다. 뉴딜정책의 루스벨트는 대공황시기에 사회주의적 시각의 의사표현을 철저히 탄압했고, “네 가지 자유” 연설을 한 바로 그해인 1941년 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11만명에 달하는 무고한 미국시민들을 단지 일본계라는 이유만으로 집단수용했다. 시장의 변덕을 다스리기 위한 복지 관련 정책과 사회권의 제도화가 대중의 인기를 끄는 속에서 기본적 자유의 토대를 훼손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네 가지 자유의 주창 이후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결핍으로부터도 공포로부터도 어느 것 하나로부터도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누구의 입으로 표현됐든 ‘결핍과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우리가 같이 꾸는 꿈이고, 함께 일구는 현실이어야 함을 잊을 수는 없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네 가지 자유”(미국의회 연설, 1941년 1월 6일)

…우리가 안전하게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가까운 장래에 있어 우리는 네 가지 기본적인 인간 자유 위에 세워진 세계를 대망하고 있습니다.
첫째, 세계 모든 곳에서 언론과 의사 표현의 자유입니다.
둘째, 세계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셋째, 세계 모든 곳에서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것은 알기 쉽게 말하면 세계 각국이 그 주민에게 건강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경제적 조치를 의미합니다.
넷째, 세계 모든 곳에서 공포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것을 알기 쉽게 말하면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에 대해 물리적인 공격행위를 취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는 정도로 철두철미한 전세계적 군비축소를 의미합니다. …(조효제 역, 『세계인권사상사』, 도서출판 길, 2005에서 일부 옮김)

프랭클린 루스벨트 11번째 연두교서(Eleventh Annual Message to Congress, 1944년 1월 11일)

우리는 진정한 개인의 자유란 경제적 안정과 독립 없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핍된 인간은 자유로운 인간이 아닙니다.’ 직업을 잃은 사람은 독재가 자랄 수 있는 재료가 됩니다.
오늘날 이러한 경제적 진실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소위 제2의 권리장전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이 권리장전에 의거하여 신분, 인종 또는 신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안보와 번영의 새로운 기초가 수립될 수 있습니다.
이들 권리는
산업, 또는 상점, 또는 농장, 또는 광산에서 유익하고 유리한 직업을 가질 권리,
적절한 식량과 의복과 여가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소득에 대한 권리,
자신과 가족에게 존엄한 삶을 보답하는 가격에 농작물을 가꾸고 팔 수 있는 농부의 권리,
국내외에서의 부당한 경쟁과 독점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에서 거래할 수 있는 크거나 작거나 모든 사업가의 권리,
존엄한 가정에 대한 모든 가족의 권리,
적절한 의료 보호에 대한 권리와 좋은 건강을 성취하고 향유할 기회,
노령, 질병, 사고, 실업이라는 경제적 공포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을 권리,
좋은 교육에 대한 권리입니다.
이 모든 권리들은 안보를 의미합니다. 이 전쟁에 승리하고 나면 우리는 이들 권리가 이행되는 속에서 인간의 행복과 복지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