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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노인을 위한 유엔 원칙(UN Principles for Older Persons, 1991)

고령화 시대 노인의 인권, 우리 모두를 위한

내가 사는 곳 골목 모퉁이 평상에는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우두커니 앉아 하루를 보내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버스를 타고 지나다 보면 대문 앞에 박스를 깔고 쪼그려 앉아 계시는 할머니도 자주 보게 된다. 종이상자를 힘겹게 주워 모으는 허리 굽은 노인들은 거리의 흔한 풍경이다.

고령화 시대는 분명 우리 시대의 화두다. 그런데 이 문제가 경제적 문제로만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측면이 적지 않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지금 성년의 사람들은 한 두 분의 어른에게 용돈을 드리면 되지만, 더 어린 세대는 여섯 분(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에게 용돈을 드려야 한다는 말도 있다.

사회보장의 약화는 노인들을 절벽으로 내몬다.<출처; www.museumofleftwinglunacy.com>

▲ 사회보장의 약화는 노인들을 절벽으로 내몬다.<출처; www.museumofleftwinglunacy.com>



경제적 문제 말고도 고령화 시대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혼란스럽다. 인터넷 검색어에서 ‘동안’이 유행어로 떠오르듯이 나이 먹는 일은 달갑지 않은 일이고, 가족회의를 당당하게 소집하고 경제력과 집안의 대소사에 막강한 발언력을 가진 연속극 속의 노인들은 노인학대나 소외 등의 문제를 외면한다. 사회면 뉴스 속에서는 무슨무슨 궐기대회에 단골 출연진인 노인들의 모습이 부각되지만 정작 노인 자신들의 문제를 드러내는 의견을 찾아보긴 어렵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 돌봄에 대한 논의보다는 치매까지 다 보장한다는 내용의 사보험 광고들이 극성을 부린다. 노년을 위해 최소한 몇 억을 준비해야 한다는 재무 설계 조언이 나이 듦에 대한 모든 대비를 일괄 지시해준다.

그럼, 노인에 대한 인권의 관심은 어떠할까? 장애인, 여성, 아동 등과 같은 프리즘을 통해 이들 집단의 특수한 인권문제에 집중해온 것에 비해 노인의 인권에 관련된 논의는 이제 갓 발동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노인의 권리와 관련해서는 타 집단과 달리 포괄적인 국제조약도 없고 전문기구도 없는 상태이다. 최근 일련의 국제회의를 통해 논의된 노인의 인권 관련 원칙들이 있을 뿐이다.

국제 사회는 지구적 차원에서 고령화 문제를 고려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모였다. 1982년 비엔나 회의와 2002년 마드리드 회의가 그것이다. 비엔나 회의가 선진국의 고령화 문제를 주로 다뤘다면 마드리드 회의에서는 고령화가 선진국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 가운데 고령화 문제를 다뤘다. 선진국들은 사회보장정책을 중심으로 사회경제정책을 노인 인구에 맞춰 조정할 과제에 직면해 있고, 사회보장이 없거나 결핍된 많은 국가들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대거 이주와 그로 인한 노인의 주요 부양원인 가족의 전통적 역할의 약화로 노인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 현실 진단이다.

비엔나 회의는 노인에 관한 최초의 국제문서라 할 ‘고령화에 관한 비엔나 행동계획’을 채택했고, 마드리드 회의는 ‘고령화에 대한 정치선언과 행동계획’을 채택했다. 이 두 회의 사이에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것이 ‘노인을 위한 유엔원칙’인데 이 원칙은 고령화와 노인의 인권에 관련된 논의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독립, 참여, 돌봄, 자아실현, 존엄’이라는 5개 군 18개 항으로 이뤄진 이 원칙 속에서 각각의 요소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노인의 권리에 대한 보장은 우리 사회 모두의 과제다.<출처; www.uwm.edu>

▲ 노인의 권리에 대한 보장은 우리 사회 모두의 과제다.<출처; www.uwm.edu>



고령은 사회로부터 분리된 삶이나 치료의 대상인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의 삶의 지속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인이 독립성을 누릴 수 있는 소득과 교육 등에 대한 접근이 보장돼야 한다. 노인의 사회참여는 단순히 임금 노동이나 생산성 그 이상의 의미로 간주돼야 한다. 노인의 지속적 고용과 그로 인한 사회통합은 물론 중요한 문제지만 노인의 참여는 임금 노동 그 이상의 것으로 일상생활의 영위, 자원 활동, 지역사회 참여 등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노인 자신을 위한 사회운동과 단체의 형성과 참여에 주목해야 한다.

‘돌봄’을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며 노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고령화 대책은 모든 노인을 포함해야 한다. 즉 상당히 약하고 돌봄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노인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고령화 정책이 초고령층을 배제하고, 상대적으로 젊고 활동적인 노인에게 초점을 둘 위험성이 있다. 또한 육아, 가사, 돌봄과 관련된 여성의 노동이 생애전반에 걸쳐 제대로 된 가치평가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여성의 현실이 노후의 연금, 사회보장, 주거권 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측면에서 여성 노인에 대한 특별한 유의가 요구된다.

이들 원칙에 기반하여 국제사회가 내세운 목표는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The Society For All Ages)이다. 사실상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생에 걸쳐 나이 드는 과정을 겪는다. 따라서 고령화는 우리 모두의 미래에 관한 것이지 노인 인구만을 위한 것은 아니므로 모두가 당사자로서의 노력이 요구되며, 전 세대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응은 모든 연령과 세대를 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 옹호된다. △노약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동하고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는 환경 △노인의 의사와 선택의 존중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 가족의 부담에만 떠맡기지 않는 것 △고용‧교육‧여가‧조직 등에 대한 노인의 지속적인 참여 등이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의 요소들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원칙은 구호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령화 속도를 재며 계산기 두드리기에 바쁜 현실 속에서 노인의 인권을 경제·사회적 논의 속에 포함시키는 것 자체가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 삶의 문제 속에서 이들 원칙에 살을 붙여나가려는 노력이 우리 사회가 제대로 ‘성년’이 되는 과정일 것이다.

노인을 위한 유엔원칙(1991년 12월 16일 유엔총회 결의 46/91)

독립 (Independence)
1) 소득, 가족과 지역사회의 지원 및 자조를 통하여 적절한 식량, 물, 주거, 의복 및 건강보호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2)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거나, 다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3) 직장에서 언제 어떻게 그만둘 것인지에 대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4) 적절한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5) 개인의 선호와 변화하는 능력에 맞추어 안전하고 적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6) 가능한 오랫동안 가정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참여 (Participation)

1) 사회에 통합되어야 하며, 그들의 복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 형성과 이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들의 지식과 기술을 젊은 세대와 함께 공유하여야 한다.
2) 지역사회 봉사를 위한 기회를 찾고 개발하여야 하며, 그들의 흥미와 능력에 알맞은 자원봉사자로서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3) 노인들을 위한 사회운동과 단체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돌봄 (Care)

1) 각 사회의 문화적 가치체계에 따라 가족과 지역사회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야 한다.
2)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안녕의 최적 수준을 유지하거나 되찾도록 도와주고 질병을 예방하거나 그 시작을 지연시키는 건강보호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3) 그들의 자율과 보호를 고양시키는 사회적 법률적인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4) 인간적이고 안전한 환경에서 보호, 재활, 사회적 정신적 격려를 제공하는 적정 수준의 시설보호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5) 그들이 보호시설이나 치료시설에서 거주할 때도 그들의 존엄, 신념, 욕구와 사생활을 존중받으며, 자신들의 건강보호와 삶의 질을 결정하는 권리도 존중받는 것을 포함하는 인간의 권리와 기본적인 자유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자아실현 (Self-fulfillment)

1) 자신들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전시키기 위한 기회를 추구하여야 한다.
2) 사회의 교육적, 문화적, 정신적 그리고 여가에 관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존엄성 (Dignity)

1) 존엄과 안전 속에서 살 수 있어야 하며, 착취와 육체적 정신적 학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2) 나이, 성별, 인종이나 민족적인 배경, 장애나 여타 지위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대우받아야 하며 그들의 경제적 기여와 관계없이 평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