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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 인간답게 살 권리 : 하월곡동 이야기 ② 건강권

가난과 병마를 한 몸에


취재활동을 한 지 며칠 되지 않아 하월곡동 산2번지는 건강을 잃은 사람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가난하면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가 상대적으로 힘들고, 건강을 잃게 되면 가난해지기 쉽다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김민생(44) 씨는 5년 전 발생한 중풍으로 인해 신체의 왼쪽부분에 마비증세가 있다. 지금은 제법 호전돼서 따뜻한 계절에는 조금씩 일을 하지만, 꼬박 4년 동안 아무 일도 못했다. 그 사이 돈도 못 벌고, 치료비를 지출하느라 점점 생활은 조여들었다. 그러던 중 2년 전 기초생활보호 수급자가 되었다. 요즘도 기온이 내려가 혈액순환이 잘 안되는 늦가을부터 초봄까지는 아무 일도 못하고 방안에만 머문다.

김 씨의 집에는 화장실이 없다. 그래서 김 씨는 추운 겨울날 밤 50미터쯤 떨어진 공동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두렵기만 하다. 추운 날씨에 조금만 노출되어도 고혈압 때문에 쓰러지게 되고, 방치되면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료급여 2종이기 때문에 단지 건강보험료만 안낼 뿐, 본인부담금은 건강보험 가입자와 동일하다. 때문에 기초생활보호법에 따른 생계보호비 45만원에서 약 20%를 차지하는 5-10만원의 약값을 지불하고 나면 생활은 쪼들리기만 한다.

한 달에 한번씩 보건소에서 혈압을 재고 처방을 받아야 하지만 성북구에 하나씩 있는 보건소와 보건 분소의 위치가 멀리 있어서 추운 날씨에 외출하기 힘든 김 씨는 몇 달째 보건소에 가지 못하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이 지역적으로 골고루 자리잡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태환(70) 씨 역시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지만 의료급여 1종이라서 병원에 갈 때 구청에서 제공하는 가정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 명의 가정도우미가 7개 동을 담당하고 있어 제 때 병원에 가기란 어렵다. 몸이 불편해서 병원을 다니기 힘든 환자들에게는 직접 찾아가서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방문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혼자 몸을 추스를 수 없는 김 씨는 요양원에 들어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명까지 위협받 기 때문이다. 허리디스크와 발목통증, 고혈압, 당뇨, 결핵 등으로 인해 누워있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는 김 씨는 식사를 준비하지 못해 3일을 굶은 적도 있다. 결국 작년에는 영양실조 판정까지 받았다. 하지만 기초생활 수급자인 김 씨는 민간요양원의 높은 비용에 엄두를 못내고 있다. 공공요양원은 공급이 부족해서 신청을 하고 최소한 6개월을 기다려봐야 할 실정이다.

김예덕(79)할머니는 혼자 사는 독거노인으로 가끔 종이상자를 주우러 다니는데, 무릎 관절염이 있어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다. 물리치료가 필요하지만 "이런데 아프다고 죽는 거 아니니까 병원에 안가"라고 고개를 젓는다. 오랜 세월동안 '아프면 참는 수밖에 없다'는 치료 아닌 치료방법에 익숙해진 것이다.

하월곡동 산2번지에는 알콜 중독 환자들이 특히 많았다. 알콜 중독은 가난과 실업, 질병으로 인한 절망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찾아드는 건강악화와 가정불화는 가족해체로 이어진다고 한다. 알콜 중독에 걸린 후 간경화로 입원한 경험이 있는 50대 남자는 아내와 자녀들과 모두 헤어져 80대 노모와 단 둘이 살아가고 있었다. 생계 능력이 없는 50대 아들이 80대 노모의 날품팔이에 기대 살아가는 모습은 처연함 그 자체였다.

홍광현(12)군은 정신지체장애로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장애등록이 되어있지 않아 장애1·2급에 지급되는 장애수당을 못 받고 있었다. 장애등록을 하려면 장애진단서를 병원에서 발부 받아야 하는데, 기초생활수급자인 광현 군 가족은 '큰 돈 들 걱정'과 이후 불어날 진료비 걱정에 장애진단조차 엄두를 못 낸 것이다. 주변의 설득 끝에 광현 군은 장애를 안고 태어나자마자 받았어야 했을 진단을 12년이 지난 후에야 받을 수 있었다. 장애진단 검사비는 20여만 원이 나왔고, 독지가의 도움으로야 지불할 수 있었다. 장애수당이라는 복지에 접근하기에도 가시밭길이 놓여 있는 것이다.

건강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람은 노동을 포함해 어떠한 활동도 하기 힘들다. 건강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월곡의 많은 사람들은 가난과 병마에 맞서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