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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1] 포괄적 한미동맹, 총체적 인권파괴를 부른다

평택이 위험하다. 이 글을 쓰는 12일 이 시각, 전국의 경찰이 평택으로 몰려오고 있다. 아마도 내일(13일) 새벽에는 국방부가 ‘빈집’ 철거라고 말하는 평택 대추리, 도두리 마을 1단계 강제철거가 자행될 것이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시간에는 이미 저들의 1단계 강제철거가 끝나 버렸을 수도 있다. 평택 미군기지를 확장 이전하려는 미국과 한국 정부가 한편이 되고, 이를 저지하려는 평택 대추리, 도두리 주민과 평택범대위 등의 평화세력이 한편을 이루어 충돌하는 것이다.

5월의 유혈진압과 같은 국가폭력이 코앞으로 다가온 대추리, 도두리 지역은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무슨 힘으로 국가의 폭력을 이겨낼 것인가. 경찰만도 2만여 명이 동원된다고 하고, 철거용역이 450명이라고 하며, 저항하면 무조건 연행한다고 하고, 경찰 채증조만 140명이 들어온다고 한다. 국가가 작심하고 폭력을 행사할 때 그에 저항하는 국민은 무기력할 것이다. 평택 지킴이들은 주민들과 함께 빈 몸으로 저항할 뿐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부상을 입을 런지, 몇 명이나 연행될 런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이번의 빈집 철거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다. 국방부는 어차피 2008년 12월말까지 평택 미군기지 이전사업을 완료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올해 안으로 주민들에 대한 강제퇴거와 마을 파괴를 예정하고 있다. 그때 한꺼번에 하면 되는 일을 굳이 국방부가 나서서 단행하는 것은 주민들에 대한 고도의 심리전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빈집 철거를 단행하여 주민들의 불안과 동요를 극대화하여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을 떠나게 하겠다는 심산이 아닐 수 없다. 국방부를 비롯한 노무현 정부는 평택 미군기지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없고, 군사작전 개념으로 접근한다. 이럴 때 대추리, 도두리 주민과 평택범대위는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하려는 국가의 정책 실현을 가로막는 ‘적’에 해당할 뿐이다. 그곳 주민들과 인권활동가들을 비롯한 지킴이들로 구성된 그 ‘적’은 오로지 맨몸으로 그들에게 저항하려고 결의하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와 ‘서해안 벨트’

사실 인권운동은 올해 평택투쟁에 집중해서 매달리고 있다. 평택문제는 단지 하나의 미군기지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고, 평택문제가 제기하는 평화적 생존권의 문제를 인권운동이 외면할 수 없어서였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은 이미 우리가 다루었던 전략적 유연성에 입각한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 계획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은 지금까지 방어적 성격의 ‘붙박이 군대’에서 기동타격대와 같은 ‘신속기동군’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주한미군은 휴전선과 수도권에 발이 묶이는 상황에서 탈피해야 하므로 한국군에 전시작전통제권까지 빨리 넘겨주고, 미국의 이익에 맞는 지역의 전쟁에 신속하게 이동하여 공격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를 서두르는 이유는 전략적 유연성과 연결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한미연합사를 해체한다지만 작전협조본부라는 것을 통해 실질적으로 한국군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한반도 남단에는 미국의 군사전략의 변화에 따라 수원-평택-군산-광주(왜관으로 옮겨질 예정)로 이어지는 미사일방어체제(이른바 서해안 벨트)가 구축된다. 거기에 매향리 폭격장을 대체할 미공군의 폭격장이 군산 직도에 들어서고, 파주 무건리 종합훈련장을 확보하고, 제주도의 화순항은 미군의 해군기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미군기지, 미사일방어기지들을 지휘, 통제할 수 있는 주한미군 사령부가 들어서는 평택미군기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평택 미군기지에는 용산기지와 함께 미 2사단이 옮겨오게 되는데, 용산기지 이전 면적은 대추리, 도두리 미군기지 확장 예정터인 285만평 중 38만평에 불과하고, 그중 28만평은 미군들이 즐길 수 있는 골프장이다. 나머지 부지에는 집중 감축대상인 보병부대 미 2사단이 옮겨오게 되므로 한편에서 시설과잉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감축되는 주한미군의 병력수를 반영하여 기지 규모를 축소할 수 있다는 얘기가 주한미군 측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평택은 단지 하나의 미군기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한반도 내의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바탕하여 미군의 재배치가 이루어진다. 그것은 중국을 동북아에서 군사적으로 포위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이 관철된다는 것이고, 결국 미국의 군사적 이익을 위해 한국정부는 강제수용을 거부하는 주민들을 국가폭력으로 내몰고서라도 이를 관철하려고 하고 있다.


한미동맹은 포괄적 동맹

한편, 이와 같은 미국의 군사전략의 변화는 단지 군사전략의 변경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200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무현과 부시는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양 정상은 긴밀한 경제적 유대가 양국관계의 중요한 지주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경제·통상협력을 심화하고 강화하는 것이 양국의 번영과 자유에 기여할 것이라는데 동의”한다고 발표했다. 또 올해 1월 19일 한미 외무장관회담에서 발표한 ‘동맹·동반자 관계를 위한 전략 대화 출범에 관한 공동성명’에서도 “양 장관은 한·미 통상관계에 있어서의 최근의 진전을 환영하였으며 양자 경제협력관계를 보다 심화시키기 위한 방안들을 논의”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한·미 통상관계에서 “최근의 진전”은 한미 FTA 추진을 말하는 것으로 “한미동맹이 위협에의 대처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에서 민주주의, 시장경제, 자유 및 인권이라는 공동의 가치 증진을 위해 있다는데 동의”한다는 한미정상회담의 내용과 연결된다.

즉 미국은 한미동맹을 단지 군사적 동맹이 아니라 군사·정치·경제·문화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동맹, 포괄적인 동맹을 추구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일관되게 추진하는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포위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며, 한국을 동북아 패권의 하위 파트너로 설정하고자 한다. 그러기에 “미국이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희망하는 20여 개국 중 한국을 파트너로 꼽았다는 건 동북아에서 지주국가(steak state)로서의 역할을 고려한 것 같다.”는 한 외교관의 의미심장한 분석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른바 ‘말뚝국가’로 한국의 역할을 정리한 위에서 한미 FTA 협상은 진행된다. 이를 통해 미국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무장한 세계화'를 아시아지역에서 관철시켜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파괴된다

한미동맹이 미국의 의도대로 포괄적 동맹으로 바뀌게 되면 한국사회는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 이미 한미 FTA 협상 문제를 접하게 되면서 우려하는 것처럼 한미 FTA가 체결, 적용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시스템은 붕괴된다. 특히 노동권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은 자본의 이익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이미 충분하게 유연해진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더욱 재촉하여 비정규직 노동, 노동빈곤의 극심한 상황을 낳게 될 것이다. 이런 정책결정과정에서 국민의 인권은 도외시되고, 이에 저항하는 경우에는 국가의 폭력을 동원하여 진압하게 된다. 사회공공재는 모두 민영화되고, 시장의 논리에 내맡겨지게 된다. 겨우 틀을 잡기 시작한 사회안전망도, 복지체계마저 후퇴하게 되는 것은 이미 멕시코의 사례로 충분히 알 수 있다.

더욱이 주한미군의 역할이 변경되고 미국의 요구와 이해에 따라서 전쟁기지를 제공하고 그에 따라 미국으로 인해 원하지 않는 전쟁 당사국이 된다면 위태롭게 유지되는 평화마저도 꿈꿀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방위분담금과 첨단무기구입비용으로 국방예산이 증액되면 예산은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보다는 국민의 평화적생존권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쓰이고 국가의 폭력성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이처럼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한미동맹은 포괄적 동맹이고 이에 따라 군사·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서 미국에 대한 종속성은 더욱 심화되고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체계는 모두 파괴되거나 후퇴되는 암담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과 한미 FTA 저지 투쟁은 결국 한 몸일 수밖에 없다. 이런 한 몸의 투쟁을 분리해서 사고하거나 사안별로 접근하는 것은 한미동맹이 포괄적 동맹이라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함과 동시에 한미 FTA를 저지해야만 평화적 생존권도, 인권도 민주주의도 비로소 지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