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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민중의 인권현장] 동티모르, 넘어야 할 ‘과거의 산’

진실과화해위원회 보고서 국민에겐 공개조차 안돼

폭력과 정치적 억압이 남긴 유산

동티모르는 2002년 5월 20일 독립을 이룬 신생국이다. 우리나라는 17세기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예속된 이래 정치적 억압과 폭력의 긴 역사 속에서 고통받아 왔다. 식민지를 확장하려던 제국주의자들, 특히 네덜란드와의 경쟁 속에서 4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티모르에 많은 군사기지가 세워졌고, 군사 점령과 군사 활동이 계속되었다. 동티모르인들은 포르투갈의 세금 착취와 강제노동에 저항하며 수많은 반란을 일으켰는데, 포르투갈 정부는 반란 진압을 위해 과도한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동티모르의 커피와 백단나무는 포르투갈의 배를 불리기 위해 수출됐다.

도로는 이 수출품들을 항구로 운반하기 위해 오로지 수도인 딜리에만 건설됐을 뿐이었다. 학교도, 병원도 없었다. 무지와 가난, 영양실조와 병든 사람들이 만연했다. 포르투갈 군인과 관료, 그리고 포르투갈에 의해 독점권을 승인받은 중국인 상인들이 동티모르 여성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회는 다 인종사회로 변화됐다. 하지만 어떠한 기술의 이전도, 책임에 대한 고려도, 기본적 권리에 대한 존중도 없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침략한 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동티모르도 포함되었다. 4년간에 걸친 일본의 점령 하에서 4만 명 이상의 동티모르 사람들이 고문에, 대량학살에, 그리고 기아에 허덕이며 죽어갔다. 여성들은 성노예로써 취급되었는데,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상당히 많은 희생자들의 후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군은 이곳에 동티모르 사람들을 산 채로 수장하는 만행을 저질렀다.<br />

▲ 인도네시아군은 이곳에 동티모르 사람들을 산 채로 수장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시아에 냉전체제가 팽배하던 1970년대, 동티모르는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을 거치면서 독립과 자치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호주, 미국과 공모하여 동티모르를 침략, 병합하기로 결정했다. 점령을 위한 그들의 24년 동안에 걸친 더러운 공모는 ‘진실과화해위원회’(Commission on Reception, Truth and Reconciliation)의 보고서에 상세히 서술돼있다. 보고서는 동티모르인들을 향한 인도네시아의 극단적인 폭력- 대량학살, 실종, 성폭력, 성 노예화, 극심한 기아, 민간인에 대한 폭격(네이팜탄의 사용 포함), 불법 억류와 구금, 그리고 소년병의 징집과 배치 등을 고발하고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의 이주정책과 동티모르인에 대한 인구통제 정책으로 동티모르인의 출산율이 저하되었다.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군대와 경찰, 보안요원과 지역 행정요원들을 통해 동티모르를 완전히 통제하고자 했고 동티모르 저항군의 전멸을 꾀했다. 그들은 조직화된 엄청난 인권침해와 반인륜 범죄, 그리고 대량학살로 동티모르를 지배하였다.

1999년 9월 4일 동티모르인 78%가 독립을 찬성한다는 결과가 발표된 직후, 인도네시아 군부는 건물과 다리, 통신기관과 학교 그리고 병원 등을 포함한 사회기반시설의 90%를 파괴했다. 그 뒤 18일 동안 인도네시아 군과 민병대는 2만4천여 명이 넘는 동티모르인들에게 국경을 넘어 인도네시아의 서티모르나 다른 지역으로 떠날 것을 강요했다. 인도네시아 군부는 동티모르 전역에서 조직적인 초토화정책의 일환으로 집을 불태우고, 곡식들을 약탈했으며, 가축들을 도륙하고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1400여명 이상의 시민들이 이 짧은 기간 동안 살해됐다.


계속되는 식민지 지배의 영향

2002년 5월에서야 비로소 자치적이고 합법적인 동티모르 정부가 세워지지 못했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기간 동안 형성된 공포와 무능력으로 신생국가가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딜리에 있는 구스마오 도서관. 아이들이 영상물을 통해  인도네시아 지배에 저항한 동티모르인의 투쟁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 딜리에 있는 구스마오 도서관. 아이들이 영상물을 통해 인도네시아 지배에 저항한 동티모르인의 투쟁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중대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는 가해자와 공동체들 사이에 화해가 시도되었고, 그 중 1400여 건은 성공하였다. 그러나 대량학살과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인도네시아인과 민병대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 사이에 ‘범죄인 인도협정’도 체결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책임 추궁이나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정의 실현을 위해 정당한 요구를 넘는 주장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인도네시아의 침입 이전부터 정치적 갈등관계에 있던 정치세력들이 최근 동요하는 군사 세력들과 손을 잡으면서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3개의 동쪽 지역과 10개의 서쪽 지역). 이런 현상은 총선과 내년 3월에 열릴 대통령 선거로 이어질 것이다.


역사적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접근

인도네시아 점령과 관련된 범죄는 다양한 모색 속에서 다뤄져왔고 진행되고 있다. 유엔과도행정 기간 동안은 유엔이, 그리고 독립 이후에는 동티모르 정부가 이를 다루기 위한 일련의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우선 '중대범죄특별법정'(Special Panel for Serious Crimes)의 활동 결과와 그 영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실 딜리 법정은 동티모르인 민병대를 구속기소하여 유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출신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엔이 승인한 인도네시아 법원은 오히려 가해자들에게 면책만 부여했다.

한편 진실과화해위원회 활동은 위원회에서 진술한 10,0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고통과 상실에 대한 정의가 존재한다는 희망을 주었다. 위원회는 배상과 복권, 그리고 보상을 명시적으로 권고했다. 하지만 동티모르 정부는 그러한 권고를 실행하지 않고 있다. 위원회는 보고서를 2005년 10월 대통령에게, 그리고 2005년 11월 28일과 2006년 2월 각각 동티모르 의회와 유엔 사무총장에게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동티모르 국민들에게는 공개도 하지 않고 있다. 중대특별법정과 위원회의 보고서는 인도네시아의 불법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이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 건물 모습

▲ '진실과 화해 위원회' 건물 모습



유엔이 구성한 전문가 위원회(Commission of experts)는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된 전범 재판 관련 사항을 조사하여 작성한 보고서를 유엔 안보리에 제출했다. 위원회는 6개월 이내에 가해자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자카르타에 국제법정을 설립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리고 동티모르에는, 종결되지 않은 사건들을 위하여 중대범죄법정을 재개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 정부는, 1999년 5월 4일부터 9월 22일까지 인도네시아에 의해 자행된 범죄를 조사하기 위하여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간의 진실과 친선위원회'(Commission of Truth and Friendship)를 구성하였다. 이는 진실을 고백한 자를 사면하고, 개인이 아닌 집단 차원으로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도네시아 점령기간 동안 권리를 침해당한 동티모르인들의 정의 실현 요구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덧붙임

◎로젠티노 아마도 헤이(Rosentino Amado Hei) 님은 동티모르 인권단체인 학 어쏘시에이션(HAK Assocation, http://www.yayasanhak.minihub.org) 소속 활동가입니다. 학 어쏘시에이션은 1996년 8월 양심수 변론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로, 현재 국가 인권정책 모니터, 인권교육, 인권침해 사건 조사, 인권보장을 위한 정책 권고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