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에 들어와 기후정의운동을 하며 꾸준히 기후정의행진을 준비해왔는데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고민과 바람을 가지고 모이는 몇 만 명의 이들을 보며 기후운동을 먼저 이어왔던 이의 이야기가 궁금하더랍니다. 이번 후원인 인터뷰에는 추석 연휴에도 시간을 기꺼이 내어 이야기를 나누어주신, 16년차 녹색연합 활동가이자 사랑방 후원인이기도 한 황인철 님을 모셔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6년차 녹색연합 활동가 황인철이라고 합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고, 얼마 전 마친 927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에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나 자신이 소속단체와 맡은 직책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닐 텐데, 아무래도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투여하는 활동과 역할을 우선 소개하게 되네요.
개인적으로는 지난 5월 결혼을 하게 되어서,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이루어서 함께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재밌게 지내고 있습니다. 정적인 시간을 가져야 충전되는 타입이라서 쉴 때는 책을 보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정주행하거나, 조용한 산속에서 등산이나 캠핑 하는 걸 좋아합니다.
이제 활동 4년차인 제겐 16년은 참 까마득한데요(웃음). 처음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졌을 때가 기억나시나요?
대학 시절에 <녹색평론>을 접하면서 환경 문제에 눈을 뜬 거 같아요. 이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했던 거 같네요. 그리고 2003년에 새만금 삼보일배 순례를 보면서도 깊은 감명을 받았었구요. 그 뒤 대학을 졸업하고 이런 저런 다른 직장일도 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 녹색연합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사랑방을 후원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기후운동하면서 사랑방 활동가들과 같이 일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기후위기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기 위한 활동을 하던 시기 같은데요. 당시 사랑방이 후원인 확대 캠페인을 할 때였는데, 사랑방 활동가의 제안과 요청을 받아서 후원을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대학생 시절부터 인권운동사랑방은 알고 있었는데, 가까이서 사랑방을 접하게 되면서 느낀 점은 ‘헌신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었어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녹색연합이 제 집과 가까워서 은근 친근하게 느끼고 있답니다. 녹색연합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인철 님은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계신지 소개 좀 해주셔요.
녹색연합은 1991년 창립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환경단체 중 하나입니다. 전국 지역조직까지 합하면 2만여 명의 회원이 있어요. 백두대간을 비롯한 육상생태계와 해양생태계 보호, 야생동물과 서식지 보호, 탈석탄, 탈핵, 공공재생에너지를 비롯한 기후정의/기후위기 대응 활동, 탈플라스틱을 비롯한 자원순환, 군기지 환경오염 문제 등 다루는 의제가 많습니다. 제가 2009년 말부터 녹색연합 활동가가 되었는데, 초기에는 4대강 사업, 설악산 케이블카 등 생태계 관련 현안 대응 활동을 많이 했고, 201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기후에너지 관련 부서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열거하는 걸 들으니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네요. 녹색연합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녹색연합은 발로 뛰는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저도 4대강 곳곳을 살피고, 설악산을 네 발로 기면서 오르던 경험으로부터 많은 걸 배웠던 거 같네요. 저희가 ‘기후위기의 증인들’이라는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는데요. 지금은 ‘기후위기 당사자’라는 말이 많이 일반화되었지만, 예전에는 기후위기를 그래프와 각종 수치로 설명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 기후위기를 몸으로 겪고 있는 농민, 노동자, 해녀 등을 직접 만나서 그들의 증언을 기록한 적이 있는데, 기후운동 안에서나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던 거 같아요.
매년 녹색연합의 모든 활동가들은 환경 현장 속을 일주일에서 열흘 가량 함께 걷는 ‘녹색순례’를 진행하고 있기도 한데요. 그게 한 해 활동을 하는 힘을 얻는 원동력이라고 많이들 얘기해요. 백두대간, 4대강, 새만금, 석탄발전소 지역 등이 곧 현장이죠. 물리적 현장만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생태위기가 벌어지는 곳,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곳, 그 모든 곳이 현장이겠죠.

윤석열 전 대통령 얼굴에 ‘핵맨 OUT’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동료들과 즐겁게 행진하고 있는 인철님
‘기후위기 당사자’라고 하니 떠올랐네요. 이번 기후헌법소원의 청구인이기도 하셨지요.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이라는, 그 헌법소원이요.
기후헌법소원에 대해 작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졌는데요, 요약하자면 ‘한국의 기후정책(온실가스감축목표)가 안전하게 살아갈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어렵기 때문에 위헌이다’라는 취지의 소송이었어요. 청소년이 가장 먼저 제기했고, 기후위기비상행동 등이 주관하여 시민을 모아 소송을 제기했고요. 또 그 뒤에 아기/어린이 소송이 이어졌죠. 이것이 병합되어 작년에 결정이 내려졌어요.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일부나마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건 의미가 크다고 봐요. 무엇보다 기후위기 대응이 헌법상 기본권에 관계되는 사안이고, 그래서 국가의 의무임을 확인한 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기후소송에 앞서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있었어요. 이것은 녹색연합, 인권운동사랑방 등이 함께 제기했던 진정의 결과입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누군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어요.
저에겐 그런 경험 중 하나가 기후정의행진인 것 같아요. 기후정의행진 초기부터 함께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올해는 927기후정의행진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으며 어떤 마음으로 행진을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2019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후위기를 내세운 대중행동이 진행되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5번의 행진을 하면서, 9월 기후정의행진에서 기획하고 준비하는 역할을 맡아오게 되었어요.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건 2022년과 올해였고, 2019, 2023, 2024년에는 팀장 내지 집행위원으로 참여했어요. 기후정의행진이 처음 열렸던 2019년에는 한창 전세계적으로 청소년 결석시위 등이 열릴 때였는데, 9월 유엔총회에 맞춰서 글로벌 기후파업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한국은 기후위기의 무풍지대라고 할까, 정부도 언론도 관심이 도무지 없던 때였죠. 그래서 시급한 기후위기를 알리기 위해 뭐라도 하자, 한국에서도 한 번 모여보자는 분위기였어요. 그러다 5천여 명이 모이는 걸 보고 우리도 뭔가 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오며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으로 2년이 흘렀습니다. 2022년에 다시 현재의 ‘기후정의행진’ 명칭으로 9월 대중행동을 준비하고 거기 수만 명이 모였을 때는 무척 감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5번의 행진을 경험하며 쌓인 고민들도 있으실 것 같아요.
벌써 5번째인데 조직위원회에서 수많은 토론을 거쳐 기조와 요구안을 만들고 사회적 메시지를 만들어내지만, 그것이 사회적 여론의 변화를 만드는 것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실제로 정부와 기업의 변화를 가져올 정도의 사회적 힘을 만드는 것도 과제로 남는 거 같고요.
아울러 600여 개의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서 함께 준비하는 만큼 의견과 생각의 스펙트럼도 다양하고, 그로 인한 논쟁과 토론도 벌어집니다. 운동에 있어서 토론의 과정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방향과 취지가 생산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권력을 상대로 할 때는 선명하고 원칙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게 기본이겠지만, 함께 연대하는 관계 속에서는 ‘다름에 대한 인정’, ‘관용과 자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운동 진영 안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지, 앞으로 행진을 준비할 때 계속 고민하며 풀어야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쉴 때는 책을 많이 읽으신다고 하셨잖아요. 감명 깊게 읽은 책 있으신가요?
오래 전 제가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는데요. 그때 『원복(Original Blessing)』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런 대목이 있었어요. “고통의 기억은 아름다움의, 기쁨의, 원복의 기억을 포함할 때라야 완전하다, 왜? 고통은 잃은 것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고 하죠. 그런데 원죄 이전에 ‘원복’이 있다는 취지의 글이었어요. 어떤 존재가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면 그 존재가 망가지거나, 차별받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어도 아무 문제라고 여기지 않겠죠. 사랑하지 않는 존재,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잃어도 슬프지 않는 법이죠. 자연이든, 기후든, 사회적 약자든. 그래서 세상 모든 존재들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운동의 뿌리에 놓여야 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의 시작이 죄가 아닌 사랑이었고, 그 기억으로부터 행동하는 게 운동 아닐까… 계속 곱씹게 되는 말이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사랑방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묵묵히 끈기 있게 한국 사회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해오는 사랑방이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