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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평등의 화살표를 두텁게 선명하게

변화의 역동이 압축적인 시간은 그 의미를 두고두고 보여준다. 지난 겨울부터 지나온 시간도 그럴 것이다. 현직 대통령을 파면시켰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박근혜를 퇴진시켰던 시간과 차이가 없겠지만 촉발된 계기도 전개된 양상도 대선의 지형도 모두 달랐다. 이 차이들이 이후의 시간에 어떻게 드러날지는 조건화되어있을지언정 결정되어있지는 않다. 우리는 어떻게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는 앞으로 1년의 계획을 논의하는 전체회의에 앞서 <2025 체제전환 평가-전망 토론회>를 열었다. 이재명 정부에서 한국사회는 어떤 변화를 마주하게 될지 전망하며 운동의 과제를 충분히 토론하기 위해서다.

 

대선 이후 한국사회 전망

 

극우 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우리 사회의 주요한 변수가 되었다. 극우 세력 부상의 배경에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낳은 삶의 곤궁과 불평등이 있다. 하지만 국가나 지역마다 극우 정치가 전개되는 양상은 조금씩 다르다. 지배엘리트의 정치에 대한 반대가 집중되는 쟁점이나 증오와 적대의 표적이 되는 집단에 따라 극우에 고유한 포퓰리즘적 성격이 폭발하는 계기가 달라진다. 그것을 미리 예상하기란 어렵다. 다만 극우의 힘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대선 결과 중 개혁신당이 얻은 지지가 무엇이었는지 더 살필 필요가 있다. 이준석이 설파하는 세계관은 전광훈이나 전한길이 쏟아내는 말처럼 터무니없이 들리지 않는데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평등의 요구를 억압의 담론으로 뒤바꿈으로써 증오 선동이 정당화되는 바탕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극우 정치에 대항하기 위해 페미니즘의 강화는 특히 더 중요하다. 그러나 극우에 대항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운동과 세력을 키워야 한다.

 

 
▲2025 체제전환 평가-전망 토론회 모습

 

이재명 정부는 사회대개혁 과제의 일부를 수행하면서 어쨌거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 더 나은 사회인지 질문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는 ‘진짜 성장’을 이루겠다며 AI 산업 육성 등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다. 주식시장을 활성화해 더 많은 투자자들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재생에너지 생산과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니 사회적 가치도 고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짜 성장’이 당장 고물가와 저임금, 주거비 부담과 부채 위기 등을 겪는 사람들에게 약속하는 미래는 없다. 투자자나 관리자의 위치에서 ‘성장’의 이익을 분점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더 나은 미래일지 몰라도, 무산자나 노동자의 위치에서 ‘성장’은 착취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도 페미니즘에 거리를 두는 것은 또 다른 우려를 낳는다. 검찰개혁이나 언론개혁 등 위로부터의 제도 설계가 민주주의의 쟁점이 되고,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어떻게 강화할지, 일터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더 잘 주장하고 쟁취할 수 있을지는 별반 다루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주목할 때에도 대상화할 뿐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회피하는 동안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평등을 망각해가는 중인 듯하다.

 

체제전환운동의 과제

 

광장을 이어 평등으로 가는 운동을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등’은 광장에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이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언어가 되었다. 비상계엄과 평등은 별반 관련 없는 듯 보이지만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이 극우의 토양이 되는 점을 환기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로 평등이 부상해야 할 필요는 명확하다. 이때의 평등이 이재명 정부가 치안의 관점에서 배려와 관용으로 사회구성원 들 간 위계를 분배하는 것과 다르다는 점도 중요하다. 광장에서 그랬듯 자기해방의 정치를 위한 투쟁의 언어로 평등의 화살표를 두텁게 선명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이루기 위한 투쟁이 그만큼 중요하다. 정치권력이 무엇을 쥐어줄지 기다리거나 줄을 서는 대신 우리 스스로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준선들을 만드는 일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인데, 저마다의 자리에서 평등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고쳐나가며 우리가 법을 작동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입법에 이르기 위한 투쟁이라기보다 차별철폐를 위한 운동들이 입법을 경과하는 투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이 차별이라고 인식하는 많은 것들은 훨씬 더 복잡한 구조적 원인을 가진다. 특히나 이윤 증식을 사회 전체의 목적으로 삼는 구조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서로 다른 정체성으로 분할하고 위계를 만들어낸다. 이런 구조를 바꾸려면 이윤에 삶과 생명을 직접적으로 종속시키는 노동 현장들에서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들이 확장되어야 한다. 또한 이윤이 아니라 삶의 필요를 사회의 목적으로 여기는 공적 체계를 재구성하는 공공성운동도 강화되어야 한다. 이런 과제를 함께 해나가려면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토론회와 전체회의에서는 각자의 운동과 현장에서 풀뿌리를 강화하기 위한 고민들이 이어졌다.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는 지역에서 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팀을 구성하기로 했는데 이에 대한 고민과 의견들도 나왔다. 풀뿌리를 강화하자는 말들은 오래 전부터 반복되어온 데다 지금까지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므로 구체적인 전략을 토론하고 함께 점검하는 일이 필요하다. 또한 기층에서부터 차곡차곡 힘을 쌓아가려면 더욱 긴 호흡도 필요하다.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는 기민하게 정세를 살피며 움직이려고 노력하되, 조직위원회의 자기 사업을 벌이는 방식보다 조직위원회에 참여하는 여러 운동이 더욱 잘 연결되며 힘을 집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들도 모였다.

 

우리는 간다 평등으로

 

작년 7월 전체회의를 통해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가 구성하고 다시 1년이 지나 열린 두번째 전체회의였다. 그 사이 반 년 가량을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던 비상계엄 사태에 휘말려 보냈다. 하지만 그저 휩쓸리지만은 않았다.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뜻을 함께 하는 여러 운동들과 다른 흐름을 만들 수 있었다. 조직위원회가 이미 있었던 덕분에 가능했다는 말들을 여럿에게 들었다.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는, 도대체 무엇이며 무엇을 하려는지 끊임없는 질문을 받으면서도, 무엇인가를 해내는 중이다. 토론회와 전체회의를 거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질문을 받는다는 것 또는 스스로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좋은 것이구나. 그건 우리가 함께, 누구도 혼자서는 짐작하거나 엄두 내지 못할 무엇이 되어가는 덕분이므로. 세상이 움직이는 방향을 더욱 잘 살피며 ‘되어가는 무엇’이 더욱 많은 이들에게 보이게 하는 일이 숙제다. 우리가 움직이는 방향은 평등이라고 말해두었으니, 우리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