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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코로나 19, 왜 재난이 되었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출현한 이래로 감염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전염병의 유행을 막는다는 의미의 ‘방역’을 넘어선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감염의 확산은 바이러스가 지닌 속성에 의한 하나의 현상이자 위험이지, 그 자체가 재난은 아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공공의료의 문제, 수용소와 다를 바 없는 장애인 시설의 문제, 취약한 사회복지 시스템의 문제,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전무한 안전망의 문제 등이 드러나고 있다.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이지만, 코로나19라는 위험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대처가 코로나19의 확산이라는 위험을 점점 재난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대통령이 나서서 코로나19가 곧 종식될 거라고 낙관할 만큼 사회적 긴장도 완화되던 시점, 31번 확진자의 등장으로 대구·경북 지역 신천지 교인들 사이에서 환자 수가 급증했다. 누구나 바이러스 전파의 매개체가 될 수 있고, 31번 확진자 역시 누구인지 모를 타인에게 감염 피해를 입었다. 대구·경북 지역의 전체 확진자 중 60%에 해당하는 사람이 신천지 교인 사이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이들이 국가 방역체계 안에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하지만 정부와 사회는 마치 신천지가 감염병 확산을 은폐하고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교단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과 공격을 일삼고 있다.

경기도는 자체적으로 확보한 신도 명단과 제출된 명단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단 본부에 대한 강제 조사를 단행했고, 서울시는 더 나아가 신천지 법인 취소와 더불어 이만희 총회장을 살인죄 및 감염병 예방법 위반 등으로 고발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확진자 중에서도 신천지를 분리해야 한다며 압수수색을 지시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는 신천지 교인 역시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고 싶은 사람이자 지역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태도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 말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연일 신천지를 비난하고 행정력을 동원해 탄압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실제 방역에 도움도 되지 않는 이런 행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 정부와 지자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단지 보여주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마땅히 해야 하는 더 많은 책무들을 방기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천지 전수조사에 행정력이 집중되면서 대구에서는 기저질환자 관리가 어려워져 사망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이 뿐만 아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사회 곳곳에서 바이러스 감염이 아닌 위기와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다.

취약한 사람을 더 취약하게 만드는 국가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시작될 무렵, 청도 대남병원의 입원자 105명 중 103명이 감염되었고, 초기 사망자 11명 중 7명이 이곳에서 나왔다.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쉬운 공간에 적절한 의료 시설과 인력을 갖추지 않은 채 코호트 격리가 이루어지면서, 경증 환자가 중증이 되고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폐쇄병동에서 발생한 첫 번째 희생자는 20년 동안 지역사회와 단절되어 있던 무연고자였다. 죽음을 맞이할 당시 몸무게가 42kg이었다고 하니, 그의 평소 영양 상태를 짐작케 한다. 그가 살았을 일상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이후에도 재난 상황이었을 터다.

코로나19는 국가와 사회가 취약 계층이나 사회적 약자와 관계 맺는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민간이 운영하는 무료급식소가 줄줄이 문을 닫자, 거리에서 생활하는 홈리스들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보다 끼니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공공에서 운영하는 급식소가 충분히 존재했다면, 적절한 방역 조치와 함께 급식소는 운영될 수 있었을 것이다. 홈리스를 비롯한 의료수급권자들이 이용하는 공공 의료기관들 대부분이 코로나19 선별진료소가 되면서 아파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사회복지 체계 안에서 운영되던 기관 또한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줄줄이 폐쇄되고 있다. 이러한 복지기관으로부터 식사와 의료를 비롯한 각종 돌봄 서비스를 받아오던 노인, 아동,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의 이런 조치가 사회 구성원의 안전과 생명을 위한 일이 되려면, 그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에도 안전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추가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 예컨대 지역사회복지기관이 문을 닫아도 돌봄 서비스를 받아왔던 노인, 아동, 장애인들이 각각 거주지에서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체계가 새롭게 짜여야 한다. 코로나 19의 출현이 이들에게 재난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국가와 사회의 일차적 책무가 되어야 한다.

바이러스가 아닌 생계위기라는 재난

코로나19는 생계의 위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에게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는 당장의 생계 위기로 나타난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침체된 내수를 살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11조의 추가경정예산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소득 공제, 소비세 감면, 고효율 가전기기 구입액 환급 등 소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혜택이 대부분이다. 500만 명에 달하는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고용 안정을 위해 2조원을 쓴다고 하지만, 이들에 대한 직접 지원책은 사실상 일인당 10만 원 정도의 지역사랑상품권이라는 쿠폰 발행이 전부다. 폐업이나 구조 조정을 겪는 이들, 일감이 사라져버린 특수고용직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처럼 당장 생계벌이가 끊긴 사람들에게 이 쿠폰이 가닿을 효과는 미미하다.

사업주가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근로자를 출근시키지 않는 경우 휴업수당(평균임금의 70%)을 지급해야 한다. 정부는 그러한 사업주에 휴업수당의 2/3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힘들었던 이들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정책인 셈이다. 저소득층의 생계 수단이 되고 있는 공공일자리 사업 역시 줄줄이 중단되고 있다. 이들의 삶이 위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중단된 이들에게 한시적이나마 국가가 직접 소득을 보전해주는 정책이 절실하다. 임대료 인하하는 건물주에게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정책보다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수많은 이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재난’을 겪기 시작했다는 점을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새로운 관계 맺기의 전환점이 되어야

코로나19라는 빠른 확산력을 가진 바이러스는 우리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살아간다는 사실을, 생면부지의 타인들이 서로가 마시는 들숨과 날숨으로도 서로를 감염시킬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서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새삼 일깨웠다. 무섭게 번지는 코로나19의 확산세를 꺾기 위해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를 따르면서, 우리의 삶의 관계와 밀도는 다소간 느슨해진 상태가 되었다. 동시에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이는 ‘재난’이 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방역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고통이 아니다. 바이러스에 맞서 사회가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럴 때 ‘위험’은 ‘재난’에 도달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 위기가 지나간 후 다시 일상의 관계가 회복될 때, 그것이 단순히 이전으로의 ‘원상복귀’여서는 안 된다. 이 사태를 통해 심각하게 드러난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나의 안전과 타인의 안전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적 관계 맺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