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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1] 개성공단, 평화와 번영의 약속? 혹은 인권의 무덤?

인권의 눈으로 본 남북경협 :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개성공단 조감도 [출처] 한국토지공사개성사업처 인터넷 홈페이지

▲ 개성공단 조감도 [출처] 한국토지공사개성사업처 인터넷 홈페이지



‘평화경제론’의 숨겨진 본질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화해·협력정책’은 기존의 상호적대적인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군사적 대치를 중심으로 하는 적대적인 관계 대신 평화적 기조의 남북 교류가 많이 늘어났다. 그 중에서도 남북경협은 ‘남북 화해·협력시대’의 새로운 상징으로 등장했다.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여겨지는 노무현 정부의 ‘평화경제론’은 ‘군사적대라는 폭력 대신 평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급증하고 있는 경제적 교류는 자본주의 폐해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우려를 낳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평화경제론’은 대표적인 주류 평화론의 하나로 ‘자유시장평화론’ 혹은 ‘자본주의평화론’으로도 부를 수 있다. 자본주의적인 무역과 통상의 증대가 국제관계의 전환을 가져오며 자본주의적 시장과 경제성장의 전망 위에서 자본주의 국가 간의 평화가 창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의 주장처럼, ‘값싼 북 노동력’을 남측의 산업구조 속으로 끌어들이는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을 통해 한국 경제의 도약과 활로 개척이 가능하다고 보며 남측 혹은 다국적 자본의 안정적인 대북 진출을 위해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의 안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평화경제론’은 ‘평화’를 위한 남북의 경제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본의 대북 진출, 나아가 자본주의적 흡수통일을 위해 군사적 불안정 요소를 줄이고자 하는 자본주의적 평화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남북경협을 통한 북의 변화가 부분적인 시장경제의 도입에 그칠지, 아니면 전면적으로 자본주의를 도입하게 될 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군사적 충돌이 없는 상태’만을 뜻하는 제한적인 의미의) 평화는 여전히 요원한 바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경제론에 대한 일반적인 높은 지지는 50년 이상 이어진 군사 대치 상황 속에서 평화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강력한 열망을 보여준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군사적 위협이 사라진 상태’로서의 소극적 평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인권보장을 통해서 비로소 평화가 실현될 수 있으며 역으로 평화는 인권 실현의 전제이기도 하다.

개성공단은 진보적인가

평화경제론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는 개성공단은 누적 총생산액이 2007년 1월 1억달러를 돌파한 이후 2007년 9월말을 기준으로 2억 1,300만달러로 잠정 집계됐다고 통일부는 밝혔다. 개성공단 노동자의 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07년 10월초 남측 노동자 800여명과 북측 노동자 19,433명을 포함해 2만여명의 노동자들이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있다. 개성공단 3단계 개발계획이 마무리되면 남측 기업이 ‘한국’이 아니라 ‘조선’에 공장구역 26㎢(800만평)과 생활ㆍ관광ㆍ상업구역 등 40㎢(1,200만평)을 포함한 총 65.7㎢(2,000만평)에 달하는 공단을 형성할 예정이고, 모두 35만명의 북측 노동자가 남측 기업에 고용되어 일할 예정이다.

개성공단 총개발 계획도 [출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 개성공단 총개발 계획도 [출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남북경협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통일을 앞당기는 ‘민족공조’라며 반기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개성공단을 통해 자본이 본격적으로 북으로 진출하게 될 것이며 결국 북의 경제구조가 신자유주의 개혁을 통해 세계경제체제로 편입될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 외에도 현재 북의 경제구조에서 시장경제의 도입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와있고 시장경제의 도입이 북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진보’라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결론을 내리기엔 확인해야 할 몇 가지 쟁점들이 더 존재한다. 가령, 현시기 북 경제체제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외부로부터 자본이 들어가면 북의 경제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지 등이 좀 더 명확히 규명되어야 하고, 외부의 자본을 받아들이는 북 당국의 정책이 임시적 조치인지, 아니면 북 체제의 전면적 전환을 위한 장기적 조치인지 등과 같이 북 당국의 정책적 의지가 확인되어야 하는 것도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자본은 일정한 한계점을 지나면 누구도 쉽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기 때문에 북 당국이 북으로 유입된 자본 또는 시장을 통제·관리할 수 있을지, 혹은 일부 주장처럼 북 체제에서 시장경제의 확산은 불가역적인지 등과 같은 쟁점도 남는다.

우려스러운 개성공단 노동권 침해

개성공단과 남북경협을 어떻게 볼지에 대한 논쟁과 무관하게 개성공단은 남측의 기업이 북측의 노동력을 고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측의 자본주의적 기업경영·문화와 북측의 사회주의적 노동환경·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노동자 인권침해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 중에서도 △산업재해 등 노동자 안전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의 부재(결사의 자유) △환경영향평가 미실시 등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현실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산업재해와 같은 노동자 안전 문제는 긴급히 확인될 필요가 있다. 산재 현황과 같은 객관적 자료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산재 발생 시 처리 과정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현대아산(주)과의 협의를 거쳐 북 정부가 만들어 2003년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채택한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아래 노동규정)과 <개성공업지구 노동안전준칙>(아래 노동안전준칙)에서 산재 관련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이 역시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노동규정> 제5장 제38조는 “노동재해 위험이 생긴 기업은 즉시 영업을 중지하고 그것을 제거하여야 한다. 기업은 노동안전 시설을 충분히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39조는 “기업은 작업과정에 종업원이 사망하였거나 부상, 중독 같은 사고를 일으켰을 경우 즉시 공업지구관리기관에 알려야 한다. 이 경우 공업지구관리기관은 중앙공업지구지도기관에 보고하여야 한다. 중앙공업지구지도기관은 공업지구관리기관과 협의하여 사고 심의를 조직 진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산재로 인해 부상자가 발생할 경우 북은 남측 기업(노동자 임금의 15%)이 내는 사회보험료와 북측 노동자들(노동자 임금의 30%)이 내는 사회문화시책비로 산재 노동자를 치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동규정>이나 <노동안전준칙>은 산재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보상과 권리, 기업에 대한 산재 발생 이후의 구체적인 책임과 규제 등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북의 의료현실이 열악하다고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북측 노동자들이 산재로 위급한 부상을 당한 경우 과연 충분한 치료가 보장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산재는 ‘기업에 의한 노동자 살인’이라고까지 알려져 있는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이다. 산재 발생에 대해 북측 당국과 남측 기업이 서로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사이 노동자들은 심각한 인권침해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산재에 대한 남측 기업의 책임과 역할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고, 이는 향후에라도 중요한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자가 산재로 부상을 당한 경우 북측 당국과 남측 기업·정부는 책임을 나누고 따질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노동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 고용안정에 대한 권리 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하는 책임을 공동으로 갖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개성공단 내 2만여명 노동자의 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남북 협력병원 [출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 개성공단 내 2만여명 노동자의 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남북 협력병원 [출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이 없는 점도 문제다. 노동자들의 단결권은 노동3권 중 하나로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노동자들은 자주적인 조직을 결성해 자신들의 대표를 스스로 선출할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노동규정>에는 노동자 조직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고 다만 제13조에서 “기업은 종업원 대표와 협의하고 모든 종업원에게 적용하는 노동규칙을 작성하고 실시할 수 있다”고만 언급하고 있다. ‘종업원 대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지난해 10월 휴먼라이츠워치가 발표한 <북한 개성공단의 노동권> 보고서(아래 개성공단 보고서)는 통일부의 말을 인용해, “노동자들이 아니라 북한 정부가 노동자 대표를 지명하며, 이는 추후에 개성공단에 있는 남한 기업들의 승인을 받는다. 따라서 모든 노동자 대표들은 국가가 지명하고 사용자들이 승인한 사람들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결사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침해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개성공단에서는 환경영향평가가 전혀 실시되지 않고 있어 남측 기업에 의한 북 자연 생태의 파괴도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접근도 여전히 제한되고 있어 생태의 파괴를 막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혹은 생태 파괴가 어느 정도나 진행되었는지 등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나 조사조차 가로막혀 있는 상황이다.

이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개성공단이 개발되고 확장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북 사회 내부의 계층화와 빈익빈 부익부 문제, 개성공단으로 진입하기 위한 구조적 부정부패로 인한 평등한 기회의 박탈 등과 같은 인권침해 사안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핵심을 잘못 짚은 임금직불제, 저임금 논쟁

한편 휴먼라이츠워치는 <개성공단 보고서>를 통해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시간 △노사분쟁 △노동자들의 권리 인식 △성차별 및 성희롱 등에 대한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특히 임금직불제 미실시와 저임금 문제를 강조했다. <노동규정> 제4장 제32조는 “기업은 노동보수를 화폐로 종업원에게 직접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남측 기업들이 북측 정부의 요청에 따라 북측 정부에게 임금을 위탁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같은 규정 제24조는 “기업의 종업원 월 최저 노임은 50미국달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휴먼라이츠워치는 2005년 개성공단의 북 노동자들은 월평균 42(미국)달러 정도를 임금으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월 67.4달러를 받았으나 사회문화시책비 명목으로 국가에서 30%를 원천징수하므로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은 나머지 42달러만 실질적으로 받았다는 주장이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김연철 연구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북측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 중 북측 당국이 공제하는 사회문화시책비 30% 이외에 약 33%는 현금으로 지급하고 약 37%는 배급권으로 지급하고 있다. 북측 노동자들은 현금임금보다 배급권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계획경제 사회에서 (계획경제 자체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고) 자본주의 사회처럼 노동자들에게 임금직불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게 적절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계획경제 체제는 기본적으로 배급제를 중심으로 재화를 공급하는 체계이고, 전반적인 경제 영역을 국가의 통제 하에 관리하기 때문에 임금직불제를 실시할 경우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현재 북이 임금직불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김연철 연구교수는 △북의 특수한 임금제도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의 격차 △북의 중앙집중적 외환관리제도 등과 같은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북의 임금제도는 현금임금과 현물임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회주의의 특성상 여전히 현물임금의 비중이 높고 주택을 비롯한 사회복지를 국가가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1달러에 145~150원인 공식환율과 2,500~3,000원인 시장환율의 격차, 중앙집중적인 외환관리제도 또한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또 임금 수준에 대해서도 67달러 혹은 42달러를 절대적인 가치 기준으로 계산할 것이 아니라 해당 사회의 사회보장체계 수준과 물가를 고려하면서 판단해야 한다. 북의 사회보장체계는 이미 상당히 무너진 것으로 보이지만, 위로부터 의도적으로 무너뜨린 것이라기보다는 내·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현재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크다. 이러한 경우 무너진 사회보장체계를 다시 세움으로써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을 증진시키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다. 또한 사회의 평균 임금 수준을 고려했을 경우에도 현재 북 사회에서 월 42달러는 낮은 임금이 아니라고 한다. 개성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개성공단에서 일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하고 심지어 개성공단에서 일하기 위해 ‘뒷돈’을 주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개성 지역에서는 개성공단 노동자와 그 외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미 계층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67달러는 남측의 기업 이윤을 생각했을 때 여전히 ‘낮은 임금’이다. 말하자면, 남측 기업은 북측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초과 이윤을 착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유사한 문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는 속에서 제3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결국 북의 저임금 문제 역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제3세계 노동자들에 대한 초과 착취의 관점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국적 자본은 이러한 초과 착취를 통해 점점 독점 구조를 강화해가고 있고, 초과 착취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과 낮은 임금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북 당국 역시 이러한 구조에 조응하고 있는 한 주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북 당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신자유주의에도 있다. 이를 북 당국의 문제만으로 몰아갈 경우 자본과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간과해버리는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

개성공단 입지 여건 [출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 개성공단 입지 여건 [출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인권과 평화의 한반도 미래를 위해

2007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남북경협은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번 10.4 선언에서 확인한 ‘종전선언’ 문제를 비롯해 한반도 평화 관련 의제가 진척을 보이고 있고 남북경협이 더욱 확대될 것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경협은 한반도 평화와 인권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제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개성공단에서 발생하고 있는 노동권 침해 문제는 남북경협과 개성공단을 둘러싼 본질적 성격 논쟁을 떠나서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사안이다. 인권은 목적임과 동시에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권 없는 평화는 또 다른 폭력을 낳을 수 있고, 평화 없는 인권은 공허하다. 인권과 평화는 한반도에서 펼쳐질 새로운 국면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기본 원칙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