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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별 기고〕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 참관기

인권위원회법안은 '미운 오리새끼'였다


미운 오리새끼

공청회장에서 기존 국가기관들은 단연 우아한 백조였다. 잘못한 것도 없고, 잘못할 리도 없는 백설공주님들이었다. 반면 국가인권위원회는 미운 오리새끼였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존재, 사고 칠 것이 예정된 존재, 거꾸로 박힌 활자처럼 거북살스럽고 밉살스런 존재였다. 구태여 없어도 될 존재인데 시대가 어수선하고 정권이 허욕을 부리는 탓에 태어나는 사생아였다. 개탄스러운 법 홍수시대, 제도천국 시대의 빗나간 산물이었다. 공연히 국가제도 간의 균형과 기강을 뒤흔들기 위해 특권적 지위를 구하는 눈엣가시였다. 아무도 탄생을 기뻐하거나 고대하지 않는 이단아였다.

지난 3월 5일 국회 법사위의 인권위법 공청회장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에워싸고 끌어내리려는 기존 국가기관들의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소리들이 내게는 올바른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절절한 아우성으로 들렸다. 인권위에 대한 인식의 왜곡과 편견은 상상을 초월했다. 우선 법무부, 대법원, 여성부, 고충처리위원회 측 공술인들이 입을 모아 인권위의 권한과 기능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 국가기관의 대변인중 누구 하나 인권위를 위해 발언하지 않았다. 행여 인권위가 권한이 모자라 제 기능을 못할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물론 없었다.


모두가 법무부 싸고돌아

여덟 분 공술인들의 의견진술이 끝나자 여야 법사위 의원들이 질문을 퍼부었다. 질문 내용으로는 소속당을 구별할 수 없었다. 여야 모두 당론으로 내놓은 법안이 버젓이 있건만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참으로 '소신파'들이었다. 대부분 인권의 이름으로 인권위가 전횡할까봐 걱정스럽다는 취지였다. 법무부는 집권당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인권위를 국가기관으로
만들기로 합의해 놓고도 계속 딴소리를 했다. 여전히 민간기구가 낫다는 기존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민주당 천정배 의원이 제동을 걸었다. 개인의 견해인지, 법무부의 공식 입장인지를 물었다. "법무부 소속직원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관련 정부 부처들도 모두 같은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당론을 정한 건 그쪽 사정이고 '정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취지였다.

"개인의 소신은 존중하겠지만 여기는 법무부의 공식입장을 발표하는 국회 공청회 자리다. 공식적인 당정합의를 거쳐 제출한 법안의 기본 골간에 대해 민주당 정권의 법무부가 딴소리를 할 수 있느냐. 그러려면 사직서를 내야 합당한 것 아니냐"고 천 의원이 다그쳤다. 한나라당의 최모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했다. "공술인을 윽박지르는 건 법사위의 전통이 아니라"며 법무부 인권과장을 두둔했다. 법사위 위원장도 "여기 공술인들은 개인자격으로 발언하는 것"이라며 거들었다. 분명히 법무부 인권과장 신분으로 공청회에 나온 건데 이렇게 능구렁이 담 넘듯 넘어갔다. 또 다른 한나라당 최모 의원이 다시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했다. "조금 전에 존경하는 천의원께서 민주당 정권의 법무부라고 했는데 분명히 말하지만 대한민국 법무부"라며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점입가경이었다.

"법무부 법안이 제일 바람직했어. 갑자기 민주당이 국가기관으로 바꾸자고 하니 얼마나 화가 났겠어. 누구라도 참을 수가 없었을 거야" 한나라당 최모 의원은 이렇게 법무부를 부추겼다. 인권위법안을 둘러싸고 전개된 집권당과 법무부의 갈등을 기회 있을 때마다 부각시키며 즐기는 눈치였다. "잘 지켜!" 공청회가 끝나고 공술인들과 악수를 나누는 자리에서 또 다른 최모 의원은 법무부 인권과장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검찰의 특권을 잘 지키라는 선배 검사의 당부였다. 공청회는 이렇게 끝났다.


역사를 길게 호흡할 것

이번 공청회는 기존 권력기관들이 민주당 법안 수준의 부실약체 인권위마저도 얼마나 두려워하고 당혹스러워 하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것은 또한 근거 없는 소문이 편견의 벽이 되고, 보수적 해석이 제도의 벽이 되어 개혁입법을 퇴색시키는 고전적 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충실히 재연해준 공청회였다.

좋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이 두터운 현실의 벽을 뚫고 또 뚫을 것이다. 벽은 계속 쌓이는 것이기에 고통과 실망은 언제나 있지만, 아무리 철옹성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허물어지고 마는 법이기에 위안과 희망도 우리의 것이다. 역사를 길게 호흡하면서 결코 절망하지 말 것. 우리의 선의와 힘을 최대한 모아 쟁취할 인권위원회를 사랑할 것. 우리가 역동적이고 민주적인 실험정신을 늘 간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올바른' 인권위원회일 수도 있는 것이기에….

곽 노 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