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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성명] 영화진흥위원들은 '영화노동자'와 '비주류 영화'에게 스크린쿼터의 혜택이 적용되는 정책을 생산하라!

지난 2월 8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일동은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대해 입장을 발표했다. 위원들은 영화 진흥 정책으로 스크린쿼터의 힘을 대체할 유력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할 수 없다며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강력히 항의하고 재점검을 요구했다. 잘못된 정부 정책에 침묵하지 않고 항의하며 올바른 정책으로 이끄는 것은 위원들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이며 이는 분명 높이 평가되어야 할 점이다. 그러나 이들이 발표한 입장 중에는 '스태프 처우개선'이라는 영화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주류 영화 산업 발전을 통해서만 '영화노동자'도 '영화의 다양성'도 존재할 수 있다는 언급을 포함하고 있어 우리의 실망과 우려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노동자의 생존권과 영화 다양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 운동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의미 있는 목소리들이며 영화 정책에 책임이 있는 위원들은 이러한 비판을 경청해야 할 것이지 억압하고 묵살해서는 안 된다.


정글의 법칙에 내맡겨진 영화노동자들의 생존권 문제,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

스크린쿼터는 영화 산업의 안전판이라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한국 영화 산업은 지난 몇 년간 두 배 이상 급성장했다. 스크린쿼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성장이라고 영화계는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영화인 모두가 골고루 누리고 있는가? 영화노동자들의 연봉은 평균 640만원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평균 임금의 절반 밖에 안 되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루 13시간 이상 노동, 절반 이상은 4대 보험에 대해 알지도 못하며, 영화가 완성되지 않으면 계약은 허공에 날아가기 일쑤이다. 천 만 관객 동원, 백 억대 제작비를 투여하는 영화도 만들어지는 한국 영화의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에 영화노동자의 현실은 노예 노동과 다름없다. 우리가 스크린쿼터 유지에 찬성하는 이유는 '영화'라는 문화적 표현이 초국적 자본에 종속되지 않아야 하며, 이를 유지하고 향유하기 위해서는 스크린쿼터제와 같은 사회적 안전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 생산의 주체가 되는 영화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인간답게 살 권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스크린쿼터로 인해 벌어들이는 이윤은 영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주체인 영화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영화노동자들의 노동이 없다면 영화는 존재할 수 없다.

위원들은 정글의 법칙에 내맡겨진 영화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터져 나오고 있는 영화노동자들의 요구와 그에 대한 지지를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묵살할 것이 아니다. 노예 노동이나 다름없는 열악한 상황이 수 십년 째 계속되고 있는데도 아무런 정책 대안을 내놓지 못한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역량을 반성해야 할 때이다. 국민적 관심이 영화계에 모아지고 있을 때 사회적 약자인 영화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가시화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정당한 것이지 입 다물고 있으라고 핀잔을 줄 일이 아닌 것이다. 특히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는 영화인들로 구성된 위원들이 이와 같은 이율배반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


비주류 영화는 주류 영화의 머슴이 아니다

주류 영화가 존재하고 그 규모가 유지되어야 비주류 영화도 존재할 수 있다는 발상은 마치 주인의 밥상이 화려해야 종들에게 떨어지는 부스러기도 많다는 것처럼 불쾌하다. 영화 자본가의 무뢰한 발언도 아니고 영화 정책을 생산해내야 하는 영화진흥위원회 위원들의 인식이기 때문에 더욱 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가 경제적 속성뿐 아니라 문화적 속성을 지니고 있고 단순히 상업적 가치로 취급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스크린쿼터와 같은 보호 장치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는 산업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상업 영화에 대한 보호만이 그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다양한 영화적 표현을 보호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스크린쿼터가 필요함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국제기준인 문화다양성협약 역시 영화를 산업으로만이 아니라 문화적 표현으로서 인식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빈국과 부국간의 국가간 간 불균형을 비롯해, 상업영화와 비주류 영화 간의 문화적 표현의 불균형도 극복하려는 것이다. 협약은 정부가 이러한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스크린쿼터가 일부 영화 자본을 살찌운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영화진흥위원들은 경청해야 한다. 스크린쿼터라는 안전판이라도 없으면 비주류 영화들이 영화 자본의 이해 관계에 따라 철저히 압살 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스크린쿼터만 있다고 해서 비주류 영화의 문화적 다양성이 자동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영화진흥위원회가 흥행분석을 통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비주류 독립영화 스크린쿼터와 같은 스크린쿼터의 수혜를 비주류 영화에게도 골고루 분배할 수 있는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스크린쿼터라는 울타리 속에서 비주류 영화와 주류 영화의 생존 게임만이 되풀이 될 것이다.

지난 몇 년간을 반성적으로 되돌아 보아야 한다. 국민들은 지난 몇 년간 스크린쿼터에 대해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스크린쿼터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는 데 변함이 없지만, 그 혜택을 결코 영화 산업의 이윤을 거머쥐고 있는 기득권층이 독식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변화에 대해 영화진흥위원들을 포함한 영화인들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지지는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영화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정책을 시급히 마련하라!
- 스크린쿼터의 혜택이 비주류 영화에도 골고루 적용되는 정책을 생산하라!
- 영화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억압하지 말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2006년 2월 15일
인권운동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