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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행정대집행법은 누구를 위한 법?

행정대집행 과정의 인권침해와 예방에 관한 토론회 열려

철거민과 노점상에 대한 폭력단속의 법적 근거가 되는 행정대집행법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23일 인권단체 연석회의가 행정대집행 과정의 인권침해와 예방에 관한 토론회가 열린 것.

23일 열린 토론회

▲ 23일 열린 토론회



단 9개의 조문으로 구성된 현행 행정대집행법은 △법률, 법률의 위임에 의한 명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의거한 행정청의 명령에 의한 행위로 △타인이 대신하여 행할 수 있는 행위를 의무자가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 △다른 수단으로써 그 이행을 확보하기 곤란하고 △그 불이행을 방치함이 심히 공익을 해할 것으로 인정될 때 행정청이 의무자가 해야 할 행위를 하거나 제3자가 이를 하게 해 그 비용을 의무자로부터 징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행정대집행법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수용, 위법건축물의 철거 등 국가가 우월한 지위에서 국민에게 강제적 권한을 사용하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적용된다. 토론회가 열린 23일에도 가수용 단지와 임대아파트 보장을 외치며 판교에 남아있던 원주민들 중 19가구가 행정대집행법에 의해 철거됐다. 1954년 제정된 행정대집행법은 84년 일부 개정되었을 뿐 그대로 유지되어 왔으나 최근 개정안이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회부되어 개정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 기존 문제점은 해결하지 않고 방치, 독소조항 신설"

행정대집행법 개정안에 대해 민주노동당 법제실장 김정진 변호사는 토론회 발제를 통해 "기존의 문제점은 해결하지 않고 방치했으며, 새롭게 독소조항을 신설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건물이나 물건의 철거와는 별도로 주거에서의 퇴거의 문제의 경우, "자기가 살고 있는 주거에서 나오는 것은 자기만이 할 수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행정대집행의 대상이 아님에도 마치 대집행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며 "집행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필요하다면 공익사업을위한토지등의취득및보상에관한법률이나 도시개발법 등도 함께 개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철거나 단속에서 고용되는 경비업자의 경우 경비업법에 의해 부여된 법률의 한도를 넘는 것으로, 법 집행 과정에서는 의무자에게 상당한 재산상 인격상의 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러한 권한을 "사인에게 위임한다는 것은 법률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비업법 제2조는 '경비업'의 업무를 △시설경비업무 △호송경비업무 △신변보호업무 △기계경비업무 △특수경비업무로 한정하고 있고 제7조 5항은 "경비업자는 허가 받은 경비업무 외의 업무에 경비원을 종사하게 하여서는 안된다"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용역계약을 맺은 경비업체들은 노점상 단속과 주거 철거에 주로 투입되고 있다.

한편 이미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위험발생의 방지나 범죄예방에 경찰력 투입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경찰기관의 행정응원(개정법률안 8조)조항을 신설 명시한 것도 무제한의 경찰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조항으로서 삭제되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그간 생계형 노점상들에게 단속과 함께 과도한 비용부담을 지우게 한 것과 같이 대집행의 의무자가 생계 등을 이유로 비용을 부담할 수 없을 경우 이를 경감 또는 면제해주는 조치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대집행법이 사용자와 노동자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법의 비형평적 적용의 경우와 유사하게 집행당국이나 재산권 소유자들만을 대변하는 것 같다"라며 "대집행법이 제대로 개정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청동은 인권침해의 종합전시장"

주공, 경비용역회사와 계약 → 용역을 현장에 배치 공포 분위기 조성 퇴거유도 → 이에 대해 원주민들 망루설치 시도 → 행정 기관, 대집행절차 무시 강제철거 강행 → 경비업법 상 시설 경비나 신변보호만 수행토록 되어있는 이들을 강제철거 업무에 투입 → 용역직원과 강제철거에 저항하는 철거민 사이에 폭력사태 → 경찰, 묵인과 방조

다산인권센터 김칠준 변호사는 오산 수청동에서의 강제철거의 과정을 위와 같이 요약하고 "오산 수청동은 철거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의 종합전시장이었다"며 철거와 단속과정에서 나타나는 단계별 인권침해의 양상을 설명했다.

먼저 협의 과정 등 강제철거 이전 단계에서는 경비용역에 의한 공포 분위기 조성과 전기와 난방 수도등 기본적 주거 서비스의 단절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강제철거 과정에서는 대집행 신청이나 대집행영장발부, 계고장 통고 등의 사전절차를 무시하는 것과 경비용역업체의 불법적인 철거업무 수행, '철거'와는 별도로 대집행의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퇴거'시키는 것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오산 수청동의 경우 증인 신문과정에서 경비업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임무는 '신변보호와 시설보호'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외에 현장에서 철거업무를 담당했던 이들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주공도 용역업체 측도 답변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철거 과정에서의 위험상황에서 경찰의 묵인과 방조도 문제로 지적됐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와 제6조에 따르면, 경찰관은 인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와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경고를 하거나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 김변호사에 따르면, 수청동 사건의 경우 4차례에 거치는 강제철거 시도과정에서 위험한 상황이 계속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수수 방관했다. 또한 사건 당일 한 정보과 형사가 '2시까지 철거 진입하지 않으면 (경찰은) 철수하겠다'며 철거용역에게 사실상 강제철거를 종용한 것이 재판과정에서 밝혀졌다고 했다. 이후 경찰은 생필품 반입을 금지했고 경찰 스스로 철거민들을 향해 새총을 쏘거나 골프채로 골프공을 날려 물의를 빚었다.


"주거권은 재산권에 우선한다"

김 변호사는 "강제철거에 수반된 강제퇴거는 대집행으로 허용되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법원의 판결이나 결정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과 기본적 주거권은 재산권보다 우선하므로, 대체주택이 마련되지 않고는 강제철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개발사업에 적용해야 할 것"이라며 "주거권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서 당연히 재산권 보다 우선한다라는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