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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검사실 조사시 계구사용은 위헌"

구속된 피의자가 검사실에서 조사받을 때 포승·수갑 등 계구를 무조건 채우도록 한 법무부 훈령이 위헌임이 확인됐다.

26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권성 재판관)는 "검사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는 수용자에 대한 계구사용을 원칙으로 정한 계호근무준칙은 위헌"이며 "검사 조사실에 소환되어 피의자신문을 받을 때 도주 등의 구체적 위험이 없음에도 포승과 수갑을 채운 상태에서 조사를 받도록 한 것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로서 위헌임을 확인한다"고 결정했다.

법무부 훈령인 계호근무준칙(제422호) 제298조는 검사조사실 근무자의 유의사항으로 "계구를 사용한 채 조사실 안에서 근접계호를 하여야 한다"(1호), "검사로부터 조사상 필요에 따라 계호근무자의 퇴실 또는 계구의 해제를 요청받았을 때에는 이를 거절하여야 한다"(2호)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검사가 검사조사실에서 피의자신문을 하는 절차에서는 피의자가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의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어야 하므로 계구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다만 도주, 폭행, 소요, 자해 등의 위험이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계구를 사용하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송인준·주선희 재판관은 다수의견에 반대해 "검사 조사실은 일반적으로 도주나 폭행·자해·자살방지를 위한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고, 계호인력도 부족하며, 검사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는 미결수용자에 대해 개별적으로 계구사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기각의견을 냈다.

지난 2003년 10월∼11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조사실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사받던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포승과 수갑으로 결박된 채 조사를 받아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2004년 1월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한 바 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송호창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이제까지 검찰에서 과도하게 그리고 관행적으로 계구를 사용해 구속된 피의자를 심리적으로 위축시켜왔음이 헌재결정을 통해 다시한번 확인된 것"이라며 환영했다. 송 교수가 헌법소원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낸 손배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12단독 최지수 판사는 지난 1월 같은 취지로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으나 법무부가 항소해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송 변호사는 "헌재 결정을 계기로 2심도 무난히 승소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한결)도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행정 편의적으로 행정 내부규칙에 의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돼온 계구에 대해 헌재가 사용원칙을 명시한 것"이라며 환영했다. 이 변호사는 "결정 이전에 법무부가 준칙을 바꾼다는 소식이 있어 헌재 결정을 못받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구치감(검찰청 내의 대기감방)에서의 포승·수갑 사용에 대해서는 지난 97년 <레드 헌트> 상영 사건으로 구속된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전 대표가 98년 헌법소원을 청구했으나 헌재는 "청구인이 이미 석방됐으므로 권리보호 이익이 없"고 "이후 법무부가 훈령을 개정해 구치감 내 계구사용을 금지했으므로 수갑사용 행위가 반복될 위험이 없다"며 2000년 4월에 와서야 각하결정을 내렸다.

2002년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0년 3월 법무부가 '계호근무준칙'을 개정해 구치감에서의 계구사용을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구 사용 관행이 사라지지 않았음이 확인된 바 있다.

한편 이날 헌재 전원재판부(주심 송인준 재판관)는 2001년 10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서울지검 동부지첨 검사실에 소환됐다 성동구치소 계호교도관에 의해 팔과 상반신이 묶이고 양손에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 피의자조사를 받은 당시 한양대 총학생회장 이종필 씨의 헌법소원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교도관은 "도주우려가 없는 것 같으니 풀어주라"는 수사검사의 요청을 위 계호근무준칙을 이유로 거절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