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인권, 영화를 만나다] 국경의 다리를 넘어 영상에 새겨진 인권 현실은?

제9회 인권영화제 해외프로그램

'나'의 일상과 괴리된 듯한 보이지 않는 사회의 인권 현주소에 관심을 기울이고, 소통의 기회가 부재한 이들의 경험을 나누는 실천은 좀처럼 이행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인권 운동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물론, 진일보한 인권 확보를 위한 사회 내부적 성찰을 유도하는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장이 어김없이 마련된다. 제9회 인권영화제에서는 반세계화, 반핵평화, 아프리카 인권, 미디어, 감옥, 문화 운동 등을 화두로 다루는 다채로운 인권 영화들을 선보인다.

<예스맨, The yes men> 스틸사진

▲ <예스맨, The yes men> 스틸사진



먼저 개막작인 <예스맨, The yes men>은 WTO를 패러디한 웹사이트를 만든 것을 계기로 WTO 관계자인 것으로 오인되어, 세계 각지에서 열린 주요 경제 회의에 초청받게 된 신자유주의 질서에 저항하는 두 만담가의 행보를 쫓은 영화이다. 주요 경제 인사라는 명함을 의도치 않게 부여받고 신자유주의를 움직이는 무역 질서를 조롱하는 그들의 '퍼포먼스'는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감독은 두 만담가의 퍼포먼스에 동조하는 주류 경제 질서를 이끄는 자들의 행태를 관찰하며, 저급한 탐욕에 매몰된 신자유주의의 허망함과 빈곤한 실체를 경쾌하게 풍자한다.

<잉여사회, Surplus: Terrorized into being consumers> 역시 과도하고 속절없는 소비 행위를 유발하며 잉여를 양산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를 표명한다. 삶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상실하게끔 조장하는 현란한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을 뮤직 비디오인 듯 감각적인 비주얼로 표현한 아이러니한 작품이다.

<원자폭탄, Original child bomb> 스틸사진

▲ <원자폭탄, Original child bomb> 스틸사진



일본 사회를 공간적인 무대로 설정하였지만, 결국 청산과 반성이 결여된 역사를 통시적으로 조망하면서 바로 지금 움직이기를 촉구하는 영화들도 상영한다. <원자폭탄, Original child bomb>은 원폭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을 단절되지 못한 역사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재현하며, 현재진행형인 핵무기 확장 움직임을 비판한다.

일본의 헌법 개정 움직임이 단순한 자국 내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동북아 패권주의적 재건축을 꿈꾸는 일본의 야욕이 투영된 결과임을 고발하는 <일본평화헌법, Japan's peace constitution>역시 주목할 만하다. 감독은 제국주의 역사의 피해자로 남아있는 한국, 중국 등지의 살아남은 자들과 인터뷰를 시도하며 과거 제국주의 질서에 편승한 가해자였던 일본 정부가 벌여온 행태가 재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라이베리아, Liberia: an uncivil war> 스틸사진

▲ <라이베리아, Liberia: an uncivil war> 스틸사진



앙상한 뼈와 말라붙은 눈물이 배어 있는 아이들로 이미지화 되어 있는 아프리카. 검은 대륙으로 표상되는 아프리카 지역의 절대적 궁핍과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폭력이 실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규명하며 동시대인들의 책임성을 묻는 영화들도 있다. <라이베리아, Liberia: an uncivil war>는 미국의 속국으로 출발한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벌여진 끔찍한 내전의 실상을, 살육이 난무하는 길거리에서 '극적이지 않은' 죽음을 대면해야 하는 라이베리아 인들의 현실을 역동적으로 그렸다. 감독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임하지만 냉전체제의 종식과 더불어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이 사라진 라이베리아 지역의 내전에는 수수방관하는 미국의 정치적 태도를 꼬집으며, 보는 이 역시 핏빛의 라이베리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고백케 한다.

<식민지를 둘러싼 오해, The colonial misunderstanding>는 선교와 무역을 앞세워 19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독일의 아프리카 식민지배의 몸통을 드러낸다. 관련자들의 인터뷰와 희미하게 남아있는 자료 등을 토대로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식민지배가 국제적 차원의 동의를 얻어 진행되었음을 논증한다.

민중들이 점유해야 할 송출권을 독점하는 거대 미디어 기업을 희화화 하며, 미디어에 대한 적극적 개입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안티폭스: 루퍼트 머독의 미디어 전쟁, Outfoxed: Rupert Murdoch's War on Journalism>은 폭스사의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분석과 폭스 사에서 일했던 인물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라크 전쟁, 9.11, 미국의 대선 등의 사안에서 공화당으로 대변되는 우파와 손을 잡고 있는 주류 미디어 질서의 메카니즘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골럽, Golub: The Late Works are the Catastrophies> 스틸사진

▲ <골럽, Golub: The Late Works are the Catastrophies> 스틸사진



이밖에도, 반전과 흑인민권운동 등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벌인 화가 골럽의 진보적 작품 세계를 다룬 <골럽, Golub: The Late Works are the Catastrophies>, 브라질 사법 체계의 부조리가 양산한 소외된 이들의 심정을 인상적인 카메라 워크로 표현한 <정의, Justice>, 민주적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개발을 추진하려는 기업과 이에 저항하는 루마니아 산악 지역 주민들의 투쟁을 다룬 <뉴엘도라도, New Eldorado>, 전쟁의 한복판에 놓인 2003년 이라크, 현지인들의 반전 목소리를 현장감을 실어 전하는 <전투지역, Battleground> 등도 상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