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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척이다] 담요와 친구들, 반전 운동을 이야기하다

아프가니스탄 대응 활동의 논쟁 옆에서

지난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이 납치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 많은 한국인들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그 곳에 한국군이 파병되었는지, 6년 째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쩐지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하루 종일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이 끊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활동을 시작으로 크게 성장했다는 한국의 반전운동조차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에 대해 이해와 관심이 그다지 깊지 못했다. 과연 한국 운동이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지난 한달 동안 그랬던 것처럼) 촛불을 들고 리본을 달았을지 묻는 다면 솔직히 나는 언론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호들갑스러운 보도를 하지 않았다면 운동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한달 여 동안 아프가니스탄 대응활동(정확히는 한국인 납치 대응활동) 중에 파병반대국민행동 내에서 벌어진 논쟁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한국 운동의 관심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다. 논쟁은 기자회견과 촛불집회 때 어떤 구호를 내걸 것인가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시작되었는데, 첫 번째로 제기된 것이 ‘피랍자 즉각 석방’이라는 요구를 구호로 내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운동의 방향은 미국의 점령과 한국군 파병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탈레반에게 피랍자를 석방하라는 요구를 구호로 삼을 경우 미국과 탈레반 양측 모두를 반대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에 탈레반의 인질석방 조건이 탈레반 수감자들을 석방하는 것으로 변경되자, 파병반대국민행동에서는 ‘포로교환요구 수용’이 핵심 요구 중 하나로 제안되었다. 점령을 비판하고 점령 종식을 압박하기 위해 탈레반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과 민간인을 볼모로 삼은 탈레반의 요구를 대변할 수 없다는 입장이 대립되었다.

지난달 6일 파병반대국민행동은 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대해 ‘군사작전 중단과 포로교환 수용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요구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지난달 6일 파병반대국민행동은 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대해 ‘군사작전 중단과 포로교환 수용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요구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이 두 차례의 논쟁은 어떠한 구호를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 이전에 한국인 납치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며 사건의 행위자인 탈레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물음에서 비롯된다. 이 물음은 만약 우리의 운동이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이 있었다면 활동이 벌어지기 이전에 이야기했어야 했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외국인을 납치한 일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고, 파병국의 국민인 한국인의 납치 가능성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동은 그러지 못했다.

나 역시도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자료를 읽고 글을 쓰기도 했지만 이 물음에 대해 명확히 정리된 생각을 갖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을 한 자리에 모아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했다. 친구들아, 너희는 이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너구리: 이전에 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논쟁이 있었거든. 대규모 반전운동 집회를 하는데 무대 전면에 건 구호가 "제국주의 전쟁 반대, 이슬람 테러 반대"였어.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하고 저항이라는 이름 하에서 발생하는 테러도 용인할 수 없다는 구호가 언뜻 보면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공평하게 잘못을 지적하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궁극적인 책임이 누구한테 있느냐는 논점을 교묘하게 흐리는 거야.
아프가니스탄에서 외국인에 대한 피랍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침략이야. 물론 침략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피랍뿐만 아니라 더한 일도 발생했지만, 근본적으로 피랍은 침략과 침략에 맞서는 저항으로 봐야 해.

에구구: 그런데 여기서는 ‘탈레반’이라는 명확한 행위 주체가 있잖아. 지금 저항세력이 탈레반이라고해서 과거의 잘못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지. 미국과 탈레반 둘 다 문제가 있는 집단이야.
그런데 내 고민은 비 전투요원을 붙잡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이냐는 거야. 작년에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침공했다 물러난 결정적인 이유는 헤즈볼라의 무력 저항 때문이었거든. 이런 면에서 아프가니스탄도 무장투쟁을 통해서 제국주의 전쟁을 막을 수 있지 않나 생각을 하면서도 비 전투요원을 납치하는 것이 맞냐는 생각도 들고.

너구리: 원론적인 측면에서 둘 다 문제가 있다는 말이 맞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느냐가 문제야. 양쪽 모두에 문제를 제기할 때 결과적으로 어느 쪽에 힘이 더 실리게 되잖아. 실제로 이슬람 테러를 반대한다는 이유 때문에 제국주의 전쟁이 가능한 것 아니야? 계속적인 침공과 점령을 유지하는 명분만 제공하는 거지.

에구구: 하지만 예를 들어서 쿠바 혁명을 하는데 체 게바라와 피델이 미국인 여행객을 잡아서 미국을 반대한다는 요구를 했다면, 우리는 그 혁명의 과정을 어떻게 봐야 하지?

너구리: 민간인을 이야기할 때 무고하다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자. 탈레반의 입장에서는 납치된 한국인들이 전투병은 아니었지만 전쟁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 민간 NGO에서 재건이니 뭐니 하면서 오히려 재건이라는 명분으로 점령이 장기화되고 강화되고 정당화되는 측면이 있잖아.

에구구: 맞아, 옛날에 제국주의가 들어갈 때 선교사들을 먼저 보냈지. 요즘에는 선교사 대신 민간단체와 기업을 들여보내잖아.

지난 7월 21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지난 7월 21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너구리: 실제로 들어간 사람들은 자신이 식민지의 첨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그 사람들의 잘못이라면 아프가니스탄의 침공과 점령이 어떤 의미이고 아프가니스탄 민중이 자신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거겠지. 자신들의 행동이 그런 식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고려하지 않은 거야. 그런 의미에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피랍자들은 ‘무고한 민간인’이 아닐 수도 있어.
그리고 ‘민간인을 볼모로 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도 생각해봐야 해. 미국과 나토군도 민간인의 생명을 볼모로 한 것이잖아.

에구구: 생명을 죽이는 것에는 반대해야겠지만, 만약 한국인들을 납치해서 한국군을 철수했다면, 그걸로 아프간 민중은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

라마단: 게릴라 전술은 그 자체로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탈레반은 헤즈볼라와 하마스와는 달라. 탈레반은 과거에 저질렀던 악행으로 인해 정당성을 갖지 못하고, 지금의 전술 방식에도 문제가 많아. 탈레반이 이슬람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전술은 이슬람의 방식이 아니야. 내 주변의 무슬림들이 탈레반을 인정하는 것은 보지 못했어.

에구구: 그러면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저항으로서 로켓포를 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 헤즈볼라나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향해 미사일을 날리는 것에 대해 우리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사람들 죽이는 일은 나쁜 일이잖아.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정당성이 있지만 탈레반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르게 작용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민간인에 대한 공격 자체는 문제가 아니고 그 주체의 정당성 확보와 행동의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이야?

라마단: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선거를 통했다거나 민중의 지지를 받는다는 점에 있어서 우리가 볼 때에도 정당성을 납득할 수 있지만, 탈레반은 그렇지 않잖아. 납치라는 방식은 점령이 만들어낸 악행에 불과해. 저항을 틈타서 돈을 노리고 한 일일 수 있잖아. 이러한 행위 자체를 정당화하는 이유로 점령은 너무 비약이라고 생각해.

너구리: 이번에 납치를 자행한 사람들이 정말 침공과 점령에 저항하기 위해 했는지, 범죄 조직인지를 우리가 판단할 근거는 없잖아.

담요: 무슬림들이 탈레반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프간의 무슬림과 아프간 외부의 무슬림들은 입장이 분명히 달라. 직접적으로 점령을 당하는 무슬림과 점령을 당하지 않는 무슬림은 다를 수밖에 없어. 탈레반에 대한 인정과 지지도 그에 따라 달라지겠지.
그리고 탈레반에 대해 이야기할 때 탈레반이라는 범주에 누가 포함되느냐의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탈레반에 정당성이 없다고 이야기 할 때의 탈레반은 과거부터 이어져온 탈레반을 의미하지만, 실제로 현재의 탈레반이라는 범주 내에는 점령에 저항하기 위해서 가담한 사람들처럼 과거의 악행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있어. 탈레반이라고해서 과거의 악행과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야.

너구리: 우리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일을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이미 미국과 주류 상업 언론이 주는 이미지에 갇힌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그리고 솔직히 한국인 납치 사건은 아프가니스탄 전체에서 일어나는 극히 한 부분일 뿐이라는 관점도 가져야 하는 거 아닐까?

라마단: 그 전에도 아프가니스탄에 한국 사람들이 있었거든. 그런데 왜 이 시점에 한국인들이 잡혔나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해.

에구구: 나는 과연 우리 운동에서 피랍자 석방요구를 하느냐 마느냐가 핵심적인 문제였을까 의문이 들어. 토론과 논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솔직히 지금 반전평화운동이 힘이 딸리는 상황이잖아? 이런 상황에서 흐릿한 방침을 가져오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이 맞나 안 맞나 논쟁하기 보다는 우리의 운동을 대중화하는데 더 힘을 쏟아야 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드네.

너구리: 토론은 운동을 열심히 하자고 하는 것인데, 지금 결과적으로 보면 당시에 토론과 논쟁을 왜 했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프간 피랍자들이 풀려난 뒤 운동이 너무 조용해.

에구구: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죽을 때는 그렇지 않다가 한국 사람들이 죽으니까 운동이 갑자기 막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한국 운동이 너무 민족주의에 빠져있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 운동이 점령을 반대한다는 전제 자체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고.

역시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해보니 서로의 생각이 좀 더 정리되고 생각해 볼 거리가 더 많아졌다. 논쟁의 당사자들은 그 후에 서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어떤 과정 중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동안 큰 집회와 기자회견 말고는 조용했던 반전 운동 내에서 논쟁을 만들었다는 것이 반갑기 그지없다. 우리의 운동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침략과 점령으로 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만큼, 아니 그 보다 더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덧붙임

◎ 수진 님은 ‘경계를 넘어’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