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농성장을 가다> ③ 올바른 과거청산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희끗희끗해진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있고,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칼이 눈에 띤다.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전국 피해자 추모행사와 합동위령제'가 있던 5일 채의진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준)' 고문은 상복을 입고 있었다. 채 고문은 '과거사가 제대로 밝혀질 때까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89년부터 이제껏 한번도 머리카락에 가위를 대지 않았다. '민간인 학살'이 바로 자기 자신과 가족의 문제이고, 그것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이기 때문이다.

49년 12월 24일, 경북 문경 석달동에서 살던 13살의 채 고문은 학살 당시 시신 밑에 깔려 간신히 살아난 '학살의 산증인'이다. 86명의 마을 주민이 학살당했고, 돌도 안 지난 아이들 5명과 65세 이상 노인 10명도 포함돼 있었다. 채 고문은 "당시 국군은 한 마을을 몰살하다시피 했지만 국방부는 공비들이 학살한 것으로 허위보고했다"고 밝혔다.

전남 구례에서 온 최삼규 씨도 '역사의 아픔'을 현재까지 안고 살아가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마을 사람들끼리도 서로 죄지은 사람처럼 살다 5년 전부터 겨우 '그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며 '여순사건'을 소개했다. 48년 제주도에서 '4·3 사건'이 발생하자 국방부는 여수와 순천에 있던 군인을 파견하려 했다. 하지만 이들은 "같은 주민들에게 총구를 들이댈 수는 없다"며 거부했다.

최근까지도 여순'반란'이라고 알려진 이 사건을 최 씨는 "여수와 순천에 있는 군인들뿐만 아니라 청년들까지 모조리 끌어다가 죽인 '여순민간인학살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끌려가 죽은 사람이 분천면 토금마을에서만 19명이었고 그 일이 있고 나서 3년 동안 마을에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었다"고 전했다. 현 정부는 '과거 정부'의 잘못을 규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진상 규명만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게 최 씨의 생각이다.

합동위령제에는 의문사한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 중 온갖 고문에 관한 사진도 있어 눈에 띄었다. 바로 정종열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상임대표의 사진이다. 정 상임대표는 82년 광주미문화원 방화사건 정순철 씨의 도피생활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범인은닉죄'에 걸려 '서빙고'에 끌려갔다. 정 대표는 보안수사대에서 "'몽둥이 고문', '물고문', '현대판 주리틀기' 등 3박4일 동안 잠 한 숨 못자며 온갖 고문을 다 당했다"고 밝히며"고문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고 지금도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사 관련법이 국회 논의를 거치면서 자꾸 변질되는데, 17대 국회에서는 과거사 관련법을 수정·누락 없이 통과시켜야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외에도 '삼청교육대', '일제시대 강제동원', '인혁당 사건', 'KAL 858기 사건', '군 의문사' 등 수많은 사건의 진실들은 암흑 속에 가려져 있다. 그동안 각각의 사안별로 청산운동이 진행돼오다 지난 8월 '포괄적 과거청산'을 주장하며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로 통합되었다. 현재 열린우리당은 포괄적 과거청산 관련 법안으로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