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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않은 편지] 해산의 고통이 저항으로 숨쉬고 있는 대추리를 찾아서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8월 27일 저녁 10시 경 대추리로 들어가기 위해 버스를 탔던 인권활동가 및 지킴이들은 끝내 마을로 들어가지 못했다. 일부는 경찰에 항의하기 위해 내리삼거리 검문소 앞에서 하루밤을 지냈다. 법적 근거도 논리적 타당성도 없는 경찰의 통행 제한은 시종일관 “주민들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였다. 늦은 밤, 들어오는 버스마저 차단해버렸기 때문에 일행은 정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경찰은 되돌아갈 대책을 내놓으라는 활동가들의 요청에 걸어서 가든 차를 타고 가든 맘대로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심지어 화장실이라도 보장하라는 요청에 “본인들이 알아서 하라”며 비인간적인 대응을 서슴지 않았다. 5월 4일 이후 철조망에 갇힌 대추리 도두리에는 현재 일상적인 통행제한이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다. 인권활동가들이 겪은 봉변은 사실 하나의 사례일 뿐. 병력으로 겹겹이 막혀 있는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방문객들은 친인척이라고 둘러대는 거짓말 한 번쯤 안해본 사람이 없다. 그러나 경찰도 갈수록 악랄해져 심지어는 본적까지 확인해 사람들의 발길을 막아서고 있고 심지어 지난 10일 부모를 방문한 자녀들마저 “주민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봉쇄로 인해 주민대책위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통행제한, 불심검문 등 주민 ‘고사’ 작전은 현재 진행 중

방문객의 통행제한도 문제지만 정부가 노리는 것은 이를 통한 주민들의 고립이다. 군사시설보호구역 지정 직후 정부는 마을 입구에 CCTV를 설치했고 깊은 웅덩이와 철조망으로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을 끊어버리고, 이중 삼중의 검문소를 설치했다. 세대주 명단과 대조해가며 들어오는 사람들을 샅샅이 검문하고 통행을 제한한다. 평택으로 매일 출퇴근 하고 등하교하는 주민들은 불편을 넘어 ‘국민도 아니다’는 모멸감을 일상적으로 겪어야 한다. 아무도 찾아올 수 없는 곳, 외부에서 방문하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통행이 제한된 곳에 산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주민들만 들어올 수 있다는 건 특권도 그 무엇도 아닌, 심각한 권리의 박탈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족, 친지들과 방문하면서 사는 게 아니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알게된 사람, 정치적 신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만나고, 즐기고, 토론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경찰은 경찰관직무집행법(이하 경직법)과 군사시설보호법(이하 보호법)을 들어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인권단체연석회의와 민변은 지난 10일 원정삼거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불법성을 낱낱이 고발했다. 경직법은 인명, 재산을 해할 명백성이 있어야 ‘불심검문’이 가능한데 지금은 통행마저 제한하고 있다는 것. 또한 보호법에 의해서도 ‘중요한 군사시설의 기능보전이 요구되는 구역’이어야 통제보호구역이 가능한대 논밭과 주민의 집이 군사시설은 아니라는 것. 그러나 대추리 도두리는 불법이 법치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경찰의 과도한 통행제한으로 인해 대추리 도두리는 마치 거대한 교도소나 수용소가 되어갈 지경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인권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수차례 진정과 면담을 통해 조사와 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차일피일 시간만 미루고 있어, 주민들의 인권침해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어떤 국가기관에서도 들을 수 없는 형편이다.

대추리 도두리에는 떠나고, 남겨진 것에 대한 아픔과 안타까움이 있다. 지킴이들이 빈집을 채우고 있지만 5월 4일 이후 마을은 조금씩 적막해지고 있다. 끝까지 이 땅을 지키겠다는 주민들은 떠난 사람들이 결코 제 발로 나간 것이 아니라고 한다. 국가폭력, 국방부의 협박과 회유를 ‘견디지 못해’ 도망치듯 떠난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도망가듯 떠난 사람들의 빈집을 청소해 본 사람들이면 알 것이다. 버려진 것은 가재도구뿐 아니다. 수십 년을 함께 한 이웃의 정과 그 추억들이 송두리째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빈집은 버리고 간 사람들, 그 흔적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 남겨진 사람들 모두에게 커다란 상처다. 국방부는 지금도 개별 가구에 전화를 걸어 ‘융자를 준다’ ‘땅 값이 오르지 않았냐’ 등 야비한 말로 주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보상금이나 경제적 지원 따위로 도저히 상쇄할 수 없는 주민들의 삶의 역사를 국가는 정책을 앞세워 파괴하고 있다. 국가의 야수성은 대추리 도두리에서 괴물처럼 도처에서 출현하고 있다.


주민들, 궁핍한 삶으로 내몰려

더불어 돈이 말라가는 것도 어려움 중 하나이다. 농촌 살림살이는 대출로 유지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사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 생계비마저도 농협의 대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올해 농사가 철조망 안에 갇힌 이후 대추리 도두리의 살림살이도 철조망 안에 갇혀 버린 듯 주민들의 삶은 궁핍함으로 내몰리고 있다. “올해 농사라도 지어먹도록 해야지 사람들을 이렇게 벼랑 끝으로 내몰아서야...” 주민들의 한 맺힌 절규에 정부는 10월말로 못 박힌 강제퇴거 시한만 되뇌일뿐이다.

정부의 대추리 도두리 고사 작전은 성공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들이 여전히 숨쉬고 있듯이 저항의 숨도 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평택 주민뿐 아니라 이 투쟁에 함께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은 ‘올해도 농사짓자’를 투쟁 목표로 삼아왔다. 이는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 이미 지난 겨울에 씨를 뿌린 보리는 올봄 거둬들여 주민대책위를 통해 판매되어 우리의 밥상을 풍성하게 했다. 대추초교 행정대집행이 엄습해 오던 지난 4월 주민들은 “농수로 파이프를 잘라놓으면 건답직파로 농사 짓는다”는 각오를 다지며 50만평의 논에 볍씨를 뿌렸다. 지금 황새울 들녘은 그때 뿌려놓은 볍씨가 알차게 영글고 있는 황금의 들녘이다. 그 들녘에 어울리지 않는 군 초소가 들어서 있고, 정부가 주장하는 군사시설의 실체가 바로 그것이다. 대추분교가 참담하게 무너지고 난 이후에도 주민과 지킴이들은 옥수수를 심고 해바라기 씨를 뿌리며 생명과 평화를 가꾸어 전쟁 기지 건설에 반대해 왔다. 이제 황금 들녘 가장자리로 올 김장에 쓸 배추와 무우가 푸른 싹을 힘차게 내밀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 6일 황새울영농단 창고를 깨끗이 치우고 다가올 추수를 준비하기 위해 바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촛불농사’는 오늘도 밝혀지고...

주민들이 평생을 일구어온 농사는 철조망에 갇힌 후에도 계속되고 있지만 결코 해마다 해왔던 그만큼의 수고로움으로 지어지지 않는다. 700회를 훌쩍 넘긴 ‘촛불행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들농사만큼이나 중요한 ‘촛불농사’는 2004년 9월 1일 국방부의 말도 안되는 ‘주민설명회’에 항의하다 김지태 이장이 연행되었고 그 자리에서 첫 번째 촛불이 시작되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대추초교에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참석자가 많을 때에도 마을이 고립되어 수십 명이 모여 앉을 때에도 주민들은 변함없이 오늘도 촛불을 들고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강제퇴거의 압박 속에서, 정부가 이름 붙여둔 ‘불법영농행위’를 이어가는 것은, 신념의 실천이 아니고선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저항이다. 농사짓는 것이 ‘저항’인 황새울 들녘에서 주민들은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고 있는 인권의 옹호자이며 저항의 주체이다.

사라지는 것도 있지만 새롭게 채워지는 것도 있는 곳이 대추리 도두리이다. 평화바람이 대추리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되었지만 지난 가을 평화촌건설 운동으로 지킴이들이 본격적으로 마을에 입주하기 시작했다. 각자 다른 조건과 배경이지만 이들의 공통된 목적은 ‘전쟁기지에 반대하고 마을을 지킨다’는 것. 그 방식이 주민과 고통도 즐거움도 함께 하면서 끝까지 이 땅을 지키는 것이다. 삶이 운동이고, 운동이 삶인 이들의 방식은 이제 주민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지난해 10월부터 마을에 살고 있는 사회진보연대 진재연 씨는 마을 주민들의 가장 큰 변화가 지킴이들을 외부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을 청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빈집을 채우듯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마을공동체가 지킴이들의 활동을 통해 기운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마을 회관 옆에 새롭게 문을 연 대추리역사관 ‘대추리 사람들’은 허물어져 가는 주민공동체에 공동의 기억을 되살리고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대추리와 도두리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통행제한, 불법영농 등 정부가 밀어붙이는 엄청난 국가폭력이 일상화된 이 곳에서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치루고 있다. 자기 땅을 지키겠다는 소박한 바램은 전쟁기지를 막는 신념의 실천으로 변모하고 있다. 박제화 된 인권, 문서에 갇힌 인권은 평범한 사람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비로소 모든 사람의 인권으로 그 생명을 얻게 된다. 대추리 도두리는 인권에 생명을 불어 넣기 위한 아름다운 해산의 고통이 저항의 이름으로 진행 중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