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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비정규직'을 해부한다 ① 파견노동과 위장 도급노동

"항상 불안해요, 언제 계약해지 될지 모르니"


노동권의 사각지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가 늘고 있다. 공식 통계 상 지난해 말 현재 임시직․일용직 노동자는 52.9%로 전체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임시직이 고용기간이 1개월 이상 1년 미만의 노동자, 일용직은 1개월 미만의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는 훨씬 크다.

이렇게 비정규직 노동자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은 기업의 '노동 유연화 전략'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채용하면 상황에 따라 해고가 쉽고 비교적 낮은 임금으로 사람을 쓸 수 있는데다 각종 사회보험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노조 활동도 약화시킬 수 있다. 노동자들은 이런 비정규직노동자의 상황을 '살인적인 저임금․장시간노동․항상적인 고용불안'의 노예라 달리 표현한다.

비정규노동자는 현재 임시․일용․시간제․파견직․용역직․촉탁직․계약직․사내하청․용역계약․소사장제․위탁계약 등 다양한 명칭과 형태로 존재한다. 본지에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용종속관계의 형태를 중심으로 나눠 각각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조명하는 기사를 4회에 걸쳐 싣는다.

①회 근로계약관계와 사용종속관계가 분리된 고용 형태의 대표적 사례로 파견노동과 위장 도급노동을 다룬다. ②회 사용업체에 직접 고용되어 있긴 하지만 노동시간이나 근로계약기간의 차이로 차별적 취급을 받는 임시직․일용직․시간제 노동자들이 다뤄진다. ③회 법적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노동자들, 이를테면 보험설계사․학습지교사들 편이다. ④회에서는 비정규 노동의 급증에 대한 대응방향을 검토한다. [편집자주]


KBS에서 차량운전사로 8년 넘게 일해온 차준 씨. 그는 지난 5월 31일자로 운전대를 놓아야 했다.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은 '파견노동자'라는 신분이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99년 말 현재 파견노동자는 5만3천218명에 달한다. 게다가 허가 받지 않은 파견이나 노무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 늘어난다.

인력파견업체에 소속된 채 다른 곳에 나가 일하는 파견노동자들은 사용업체의 계약 해지 통보 한 장이면 '밥줄'이 날아가기 때문에 하루 하루가 살얼음판이다. 더구나 근로자파견법 시행 2주년이 다가오면서 2년 이상된 파견노동자의 '직접고용'을 회피하기 위한 무더기 계약해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관련기사 본지 6월 9일자>

2중의 고용 구조를 거치다보니 파견노동자들은 임금도 낮다. 대한렌트카에 소속돼 24시간 교대로 KBS 차량을 운전하는 한 파견노동자의 경우 계약 상에는 월 120만원을 받기로 되어 있지만 실제 손에 쥐는 돈은 93만6천원 뿐. 주60시간 가까운 장시간 노동을 하는데도, 법정 연장근로수당이니 야간근로수당 등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 언제나 계약해지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보니, 헌법상의 권리인 노동3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실제 방송사비정규운전직노동조합의 경우, 방송사 청원경찰의 폭력에 맞닥뜨려야 했다.

'노무도급' 형식을 빌린 '불법' 파견 노동도 문제가 된다. '도급'이란 다른 업체에 일을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맡기는 것으로, 그 일을 하는 노동자에 대해 작업상의 지휘 감독을 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파견노동과 구분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자들을 지휘 감독하지 않는 만큼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노무도급으로 위장한 불법파견이 곧잘 문제가 되고 있다.

부곡에 위치한 (주)이랜드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유상헌 씨는 '홍익'이라는 도급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다. 부곡물류창고에는 유 씨와 같은 도급업체 직원이 50명. 매일 아침 유 씨 등의 출석을 체크하는 것은 이랜드 관리자들이다. 이들이 작업지시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임금도 사실상 이랜드가 주는 것을 홍익이 중간에서 전달할 뿐이다. 최근 노동부의 조사결과도 이것이 '불법파견'임을 입증해주었다.

"의료보험․산재보험 어느 것도 적용 받지 못해요. 다치거나 아프면 암담하죠." 실제 그의 동료 중 한 명은 다리를 다쳤는데, 이랜드와 홍익 둘 다 나 몰라라해 결국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창고에서 하루종일 땀흘리며 박스를 나르고 받는 유 씨의 월급은 오직 65만원. 하지만 이랜드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50만6천 원에 비하면 처지가 나은 거라며 이야기한다.

낮은 임금보다 유 씨에게 더 걱정스러운 것은 고용불안. "항상 불안해요. 언제 갑자기 계약이 끝날지 모르니까요." 현재 유 씨는 동료들과 함께 이랜드에 직접 고용돼 고용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