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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이주노동자들의 '희망의 거처'


이주노동자들이 달빛 아래 한층 더 몸을 낮추고 있다. 불법체류자 자진출국 시한이 15일 마감되면서 이제 곧 단속추방의 칼바람이 또 한 차레 몰아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눈길을 피해 두 달이 넘게 토막잠을 자온 이주노동자들은 불안한 눈길로 연신 주위를 살피고, 어떤 이들은 또 한번 피난 짐을 꾸렸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병원신세를 져야 했던 한 아이는 필리핀인 부모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불안한 공기 속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어느덧 농성 63일째를 맞이한 명동성당과 성공회대성당 농성단을 비롯해 각지의 이주노동자들은 꺾일 줄 모르는 '인간사냥' 광풍에 맞서 서로의 손을 한번 더 맞잡았다.

저마다 안타까운 사연을 안고 그 이름도 빛나는 산업연수생으로, 관광비자로 이 땅에 들어와 노예와 다름없이 살아왔던 이주노동자들이 쉴 새없이 밀려드는 절망의 파도 위에서 의지할 곳 없이 흔들리고 있다. 그간 한국정부의 강제추방정책으로 인해 죽어간 이들이 알려진 것만 해도 9명. 정부의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죽어나갈지 모른다.

며칠 전 노동부는 제조업 분야의 부족한 인력이 8만여 명에 이른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들 제조업 분야에서 중요한 인력을 형성해 온 이주노동자들에게 강제추방의 칼자루를 휘두르고 있다. 인력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데 이주노동자들을 국경 밖으로 내모는 데는 분명 또 다른 꼼수가 있을 것이다. 노예가 아닌 인간임을 선언하고 노조를 조직해 온 이주노동자들을 표적 추방하고, 그들에게 가스총까지 들이대는 것을 보면 냄새가 나도 단단히 난다. 정부의 '고용허가'를 받아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없이 그저 노예처럼 일하다 허가받은 시간이 지나면 돈 떼이고 골병 들어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줄 순종적인 노동력! 그것이 정녕 정부가 원하는 것인가.

지난해 7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노무현 대통령은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도 함께 한 이 자리에서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했다. 이들의 희망이 단속추방의 공포 없는 이 땅에서 인간답게 노동할 권리를 보장받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나 한 소리였던가. '전면 합법화'만이 이들에게 최소한의 희망의 거처를 가져다줄 수 있음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