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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자의 눈> 어린이 학대 원장 집행유예 판결을 보며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일

#1.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원이 연행에 저항하는 이주노동자들을 향해 가스총 발사. 실신한 이주노동자 두 명 연행. 연행 과정 중 구타 가능성 제기.

#2. 친구를 모함했다며 어린이집 원장이 원생의 입안을 빨래비누를 묻힌 수세미로 닦음. 밤에 잠 안 재우고 동물처럼 손 짚고 계단 오르게 함. 웃을 때까지 때리고 100분 동안 2000번 절까지 하게 함.


이것은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게 가해진 폭력의 일면이다. 언뜻 보면 별 연관성이 없는 듯한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회적 보호의 영역 밖에 있을 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는 합당한 처벌이 가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9일 인천지방법원은 초등학생 원생들에게 가혹행위를 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구속기소된 어린이집 원장 A씨에 대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A씨가 구속 기소된 지난 11월 27일만 해도 많은 언론에서 A씨의 가혹행위를 질타하고 정부의 아동학대 예방 대책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정부도 아동을 학대한 보육시설을 폐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얼마 전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에는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는 보육시설을 규제할 수 있는 어떠한 새로운 조치도 포함되지 않았다. 급기야는 "교육차원에서 체벌을 한 의도는 인정되나 체벌의 정도가 지나치는 등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는 재판부의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과연 재판부가 아동학대 문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아이들에 대한 명백한 '폭력'을 '교육적 체벌'로 둔갑시키고 '폭력의 정도'만을 문제삼음으로써 본질을 흐리고 있다. 언제까지 상대적 약자인 어린이들에게 가해지는 '체벌/폭력'을 어른들의 일방적인 시각으로 판단하고 재단할 것인가? 이번 판결을 통해서 재판부는 결국 전국의 보육시설과 학교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용인하고 오히려 부추길 소지까지 낳게 되었다. 지난해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체벌이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현실을 크게 우려하면서 "가정, 학교 및 모든 여타 기관에서 체벌을 명백히 금지하도록 관련 법률과 규칙을 개정하라"는 권고를 한국정부에 거듭 제출했으나, 한국 정부는 아직도 묵묵부답이고 이런 어이없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철저하게 피해자의 입장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약자에 대한 폭력에 무감각해진 우리 사회가 '망각'과 '용인'을 통해서 그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