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특집> '2003 겨울터널'을 지나는 사람들 ⑤ <끝> - 전국실직노숙자대책종교시민단체협

"복지대책은 걸음마 수준이고 편견의 벽은 강고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난방비 부담에다 일감마저 줄어들어 1년 중 가장 냉혹한 계절이다. 하지만 혹한의 거리 한켠에 몸을 뉘일 수밖에 없는 노숙자들에게 겨울은 생과 사의 기로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여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이렇듯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양극화된 사회의 비인간적인 폭력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노숙자들의 인권을 보듬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사람이 있다. 전국실직노숙자대책종교시민단체협의회(아래 전실노협)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정은일 목사가 바로 그 사람.

"예수도 기득권 세력에 맞서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서 싸웠지 않습니까? 가장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종교적 양심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는 IMF 위기 이후 노숙자들이 대거 늘어나자 이듬해인 98년 이 일에 뛰어들었다. 그가 다섯 명의 상근자와 함께 이끌고 있는 전실노협은 그해 5월 노숙자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대책 수립을 위해 설립돼 현재 쉼터나 자활지원센터 등 개별 단체가 해내기에 벅찬 실무자 교육이나 정책 수립 등의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보이지 않는 노숙자들도 많다

최근 정부 집계로는 전국에 4200명 정도의 노숙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정 사무국장은 잘라 말한다. 한곳에 주로 모여있는 노숙자들만 통계에 잡히고, 지방자치단체들이 부담이 늘까봐 노숙자 규모를 축소 보고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 "요즘에는 무료 급식 시간 등에 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어 굳이 모여 있지 않으려는 노숙자들이 많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규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요."

나아가 그는 노숙자의 의미를 정부가 너무 좁게 규정짓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엔은 '홈리스'(homeless)를 집이 없는 사람이나 임시보호시설 거주자 외에도 안정된 주거나 직업이 없는 사람,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주거에 사는 사람까지 포괄하여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있다. "찜질방, 쪽방촌, PC방 등에서 기거하는 일세를 내는 사람들도 언제든지 거리로 나앉을 수 있는 (잠재적) 노숙자로 봐야 합니다." 영등포, 용산 등 서울 쪽방촌의 쪽방 수만 최소 3500여개. 최근에는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 실업자나 카드빚에 몰려 거리로 나온 신용불량자들마저 노숙자 대열로 들어서고 있다.


'4대 권리' 확보가 가장 중요한 대책

그러나 정부의 노숙자 보호지원 대책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쉼터 등 응급구호체계는 어느 정도 갖추어졌지만, 목욕시설이나 '드롭 인 센터'(Drop-in Center)와 같은 이용시설의 확충, 사회보장체계와의 연계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입니다."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으며, 전문적인 사회복귀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못하는 쉼터의 문제도 여전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우리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안 들어온다고 해서 미입소자들을 자활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어서는 안되지요."

정 사무국장은 노숙자들을 특별집단으로 취급하기보다 전반적인 사회복지체계 내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노숙자로의 진입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거, 의료, 교육, 노동의 4대 권리 확보가 가장 중요합니다. 노숙자의 자활을 위해서도, 사람들이 노숙자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보장체계의 확충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구조적 빈곤이 점차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안정된 교육기회와 인적 지원망을 얻기 힘든 빈곤층 아이들을 위한 정기 무료 건강검진 등 지원체계의 구축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주소지가 없다는 이유로 이들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 생계급여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현실도 문제다. "먼저 긴급급여를 제공하면 쪽방이라도 마련해서 주소지 등록을 할 텐데, 주소지부터 마련해 오라는 식으로 정부의 방침이 거꾸로 되어 있어요."


범죄집단으로 보는 편견의 벽 두터워

정 사무국장은 지난 6년간 이 일을 해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노숙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과 싸우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노숙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위험한 인물로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은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더 두터워졌다는 것. '치안' 중심으로 노숙자문제에 접근해온 정부 정책에다 간혹 터지는 노숙자의 범죄사건을 다루는 언론이 노숙자 전체를 범죄집단처럼 몰아가는 것도 그런 편견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남한테 사기치고 남 후리는 나쁜 사람들은 절대 노숙자가 되지 않는다"고 그는 단호히 말했다. 오히려 노숙자는 '범죄의 주체'라기보다 '범죄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며, 설령 생활고에 못 이겨 범죄를 저지른다 해도 생계형 범죄는 범죄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회가 죄인이지 그 사람들이 뭔 잘못이 있겠습니까? 노숙자 중에는 무연고자나 고아 출신이 많습니다. 대물림된 빈곤과 가족해체, 교육기회 박탈 등으로 노숙자로 내몰린 사람들을 껴안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집단적 희생양 삼아 공격해서야 되겠습니까?"


노숙자들 스스로 권리 찾아 나서야

얼마 전 한 노숙자 지원단체가 당사자의 동의도 받지 않고 노숙자들의 개인정보를 빼곡이 담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인권침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는 노숙자를 존엄성을 가진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복지서비스의 대상으로, 관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 정 사무국장은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노숙자들의 요구와 바람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노숙자들을 대상화하지 말고 그들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또 그들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찾아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