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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농성장들을 돌며 든 생각

◐ 박하순의 인권이야기 ◑

전국민중연대 광화문 농성장엘 갔다. 정광훈 의장 등 몇 분이 '비정규직 철폐',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반대', '이라크 파병 반대' 등 몸 벽보를 두르고 앉아 있다. 천막도 못 치게 해서 길 위에 스티로폼만 깔고 농성을 한다.

30분인가 있자니 민중연대 조직위원장이 시청 앞에서 열리는 청계천 노점 철거 규탄 기자회견에 가잔다. 가는 도중 그는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투쟁이 매우 힘겹게 진행되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용석 씨가 분신한 후 버티기로 일관하다가 대오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공단은 계속해서 이전보다 좋지 않은 협상안을 던지고 있단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이 모양이니…." 그가 한숨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다.

겹겹이 경찰차로 둘러싸인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끝내니 몇 분의 노점상들이 시청 문을 발로 걷어차며 강제철거에 대한 분풀이를 한다. 전경이 몰려오자 슬슬 물러났다.

오후엔 명동성당을 들렀다. 이제껏 와보지 못해 못내 마음이 걸렸는데 밀린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이주노동자 농성장을 방문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지원단체 활동가들과 비교적 밝게 생활하고 있는 듯했다. 단속추방 탓에 갈 데 없는 이주노동자들에겐 농성텐트가 그나마 안온한 보금자리인지도 모르겠다. 전국에서 약 2000여명이 농성을 하고 있단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도중 서울역 농성텐트촌에 들렀다. 빈곤문제 해결과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해 싸우고 있는 장애인들이 보인다. 오늘은 청와대로 내일은 국회로 몰려다니며 싸운단다. 민주노총 텐트에는 난로를 가운데 두고 단병호위원장을 비롯해 몇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힘이 많이 빠져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다. 조합원의 자결과 분신이 이어져 투쟁을 했음에도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밤 9시쯤 집엘 가려고 남대문 근처에서 버스를 갈아타려는데 이번엔 삼성 해고노동자들과 맞닥뜨렸다. 5-6명의 해고노동자들이 봉고차를 농성장 삼아 농성을 하고 있었고, 1명씩 돌아가며 삼성본사 근처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40일 넘게 단식을 하기도 했다.

이들만이 아니다. 대구에서는 세원테크 투쟁이, 부안에서는 핵폐기장 반대투쟁이 몇 달째다. 한국의 거의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라크 파병 반대투쟁도 있다.

이들 투쟁에서 제기되는 요구는 모두 아주 초보적인 것들뿐이다. 최소한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라! 핵 위험에서 벗어나고 싶다! 무고한 이라크 민중들을 학살하는 데 동참하지 말고 우리 젊은이들을 희생시키지 말라!

그러나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주는 기업주대로 이런 정당한 권리주장에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배언론들은 이에 더해 악다구니를 쓰면서 힘있고 가진 자들의 이익 수호에 혈안이 되어 있다. 기성정치권에서 바랄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노무현 정권 아래서 우리 민중들의 삶과 민주주의가 이 정도 수준이니 앞으로의 일이 참으로 암담하다. 뭔가 생각을 달리 해보아야 한다.

(박하순 님은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