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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의료단체에 덫 씌운 '이적' 올가미

'진보의련' 이적단체 판결…무리한 국보법 적용 비판


법원이 진보적 보건의료단체를 이적단체로 규정, 현직 의대교수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번 판결은 진보적 보건의료단체에 대한 첫 이적규정인데다 노선 자체를 문제삼아 활동이 정지된 단체를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반복해 논란을 더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지법 형사21부(황찬현 부장판사)는 '진보와 연대를 위한 보건의료운동연합'(이하 진보의련)에서 활동했던 이상이(제주대 의대 교수) 씨와 권정기(전 일산 ㅈ보건소장) 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상의 이적단체 구성과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등의 혐의를 들어 각각 징역 10월에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과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의사, 약사 등을 회원으로 한 '진보의련'은 95년부터 반자본 진보노선에 입각해 공개적으로 보건의료운동을 벌여왔으나, 2001년 초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던 2001년 10월 사회주의 혁명을 선동하는 사상을 학습하는 한편, 이적 문건 1300여종을 제작한 혐의로 회원 8명이 긴급체포됐다. 그러나 이 중 4명에 대해서는 영장도 청구되지 않았고, 영장실질심사에서 나머지 4명에 대한 구속영장청구도 기각돼 불구속 수사를 받았다. 이후 이상이, 권정기 씨만이 2002년 1월에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구시대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이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진보의련은 우리 사회를 소수의 자본가가 절대 다수의 노동자를 지배·착취하는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로 규정하고, 반자본 진보노선을 이념으로 사회주의혁명을 통하여 현정권을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을 수립,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추구했다"고 밝혔다. 이어 "보건의료운동을 사회변혁운동의 한 영역으로 파악하고 있는바,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을 옹호하기 위한 보건의료운동단체가 아니라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이적단체"라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이상이 교수는 "진보의련은 의대 선후배 20여명이 만든 공개적 보건단체로 2001년 초부터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으며, 법원이 국가전복을 기도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를 통해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도 9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립대학교 교수 및 보건소장으로 성실히 근무해 온 이들이 국가변란을 꾀해왔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재판부의 상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사법부의 행위가 진보적 보건의료인들에 대한 정부의 빨갱이 '낙인찍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며, 노무현 정부는 이와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즉각 폐지하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