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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레미콘노동자 날개 펼 그날까지

강추위 속 명동성당 노숙농성 계속


차갑게 얼어붙은 아스팔트 위로 흰 눈이 내린 7일,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그마한 비닐천막이 외로이 서 있었다. 19일째 노숙 농성을 진행 중인 레미콘 노동자들의 바람막이다. 평소 같으면 낮에도 서넛 씩 함께 있었는데, 이날은 장문기 전국건설운송노조 위원장뿐이다.

"검찰이고, 법원이고 왜 사용자들에게 끌려 다니죠? 우리도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인데…." 장 위원장은 입을 뗐다. 지난 달 22일 검찰이 레미콘 사용주들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린 데 이어, 29일엔 서울고법이 "레미콘 지입차주 등을 노동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일요일은 쉬게 해달라. 인간 대접 받고 싶다.' 이런 작은 소망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했는데, 사용자들은 노조 탈퇴를 강요하고, 4백 여명을 부당 해고하고,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노동자들을 폭행했어요. 근데 검찰이 무혐의 처리하다니…." 집회 참석 인원이 신고 내용보다 더 많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 해 어이없이 구속돼 49일 간 구치소에서 살다 나온 장 위원장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을 연신 내뱉는다.

"법원도 그래요. 노동조합 활동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다고 사용자측의 항고를 기각하면서도, 우리가 노조법상의 노동자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리는 저의가 도대체 뭐죠?" 장 위원장은 금년에 선거가 있으니까, 현 정부가 사용자들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거라고 밖엔 안 보인다고 스스로 답했다.

장 위원장은 지난 5일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위원장직을 사임하겠다는 말을 꺼냈지만, 대의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해 4월 파업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큰 성과가 없어서, 솔직히 조합원들한테 볼 면목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장 위원장은 노조를 만들었던 걸 후회한 적은 없다고 했다. 적자 상태가 아닌데도 사용자들이 운반단가를 일방적으로 깎아 버려, 가입하던 보험까지 해약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것, 일요일도 없이 일해야 했던 건 다 노조가 없기 때문이었다. 일부 분회에서나마 △노동조합 인정 △일요일 휴무 △운반단가 인상 등에 대한 노사 합의서가 만들어진 건, 지난 해 노조를 만들어 파업을 한 이후의 일이다. "레미콘 운전 일을 14년 간 했는데, 짧은 세월 아니잖아요. 노조 없이 억압받은 걸 생각하면, 과거로 돌아갈 생각 없어요." 노조신고필증도 받고, 노동부 장관까지도 인정한 노동조합인데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성 인정받고, 당당하게 작업장에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끈질기게 싸워나갈 겁니다. 그렇게 안 하면 레미콘 노동자들은 사용자들에게 짓밟혀 날개 한번 못 펴볼 거예요." 나이 쉰을 넘긴 장 위원장의 주름진 얼굴을 찬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