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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학습지 자본 사주 받은 청부살인"

학습지교사 노동자성 부정한 대법 판결에 항의 확산

대법원이 학습지교사가 노동자가 아님은 물론 노동조합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놔 학습지교사 노동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대법원 1부(주심 고현철 대법관)는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아래 학습지노조) 대구용산분회 김남희 분회장과 성윤애 대의원이 (주)웅진씽크빅(옛 웅진닷컴)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손해배상 소송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학습지교사는) 회사로부터 위탁계약에 따른 최소한의 교육 등을 받을 의무가 있을 뿐 위탁업무의 수행 과정에서 업무의 내용이나 수행방법 및 업무수행시간 등에 관하여…회사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며 "사용, 종속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학습지노조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구성된 단체로서…(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회사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은 것은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 "학습지교사는 노동자 아니다…언제든 계약해지 가능"

재판부는 이어 "(학습지 노사관계에서) 위탁계약은 민법상 위임계약이어서 당사자 쌍방은 계약기간 만료전이라도 언제든지 위임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민법상의 위임계약은 그것이 유상계약이든 무상계약이든…(계약의) 각 당사자는 언제든지 이를 해지할 수 있고 그로 말미암아 상대방이 손해를 입는 일이 있어도 그것을 배상할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사측을 편들었다.

판결에 대해 원고측 대리인 이명춘 변호사(법무법인 청솔)는 "대법원은 학습지 교사가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계약서 내용을 중시해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학습지의 근무성격상 학습시간과 지역이 정해져 있는 등 계약내용에 사측의 근무지시가 사실상 들어 있는데도 (사측의) 구체적·직접적 지시가 없다고 봤다"며 "학습지 교사의 외형을 보면 근로자인지 사업자인지 불분명할 수 있으나 그 실질을 판단해보면 분명히 근로자인데도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례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학습지교사들은 △정해진 날자와 시간에 출근하도록 회사측 관리자로부터 강제 당하고 △일주일에서 한 달간의 의무적인 교육을 이수해야만 업무를 시작할 수 있으며 △업무개시 후 일정기간동안에도 직무와 관련된 교육을 받아야 하고 △수업을 할 때에는 회사에서 정해준 교재만을 사용해야 하며 △회원을 관리하는 구역도 회사에서 정해 준 지역에 한해서만 활동할 수 있는 등 사실상 사측의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 때로는 관리자들이 동행해 교사들이 제대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기도 한다.

이 변호사는 "법원은 (입법) 정책적으로 풀 문제라면서 자기 판례를 바꾸지 않지만 법원이 적극적으로 (해석해) 나가야 할 영역"이라며 "입법만 기다리는 보수적이고 아쉬운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자본과 권력의 시녀인 사법당국에 기대지 않겠다"

판결에 대해 민주노총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아래 서비스연맹)은 16일 대법원 동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과 학습지노조 일부 단위는 노동3권 중의 하나인 단체교섭권을 근거로 사용자(회사)측과 단체교섭을 진행하여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등 노동조합법상 권리를 상호 인정하면서 정상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현실"이라며 "더 이상 자본과 권력의 시녀인 사법당국에 기대지 않고, 우리의 실력으로 노동자성 쟁취를 위해 강력히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12일 서비스연맹은 성명서를 내 "최근에 학습지 기업들은 이미 설립된 합법적인 노동조합의 활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조합원들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수수료 인하와 계약해지를 남발하고, 한편으로는 노동조합 활동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 본격적인 노동탄압에 나서고 있"다며 "학습지교사들의 업무수행에 있어서 회사측이 실질적인 지휘, 감독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의 관계를 인정치 않는 것은 심각한 오판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13일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아래 학습지노조)도 성명을 통해 "학습지교사는 이미 오래전 정규직노동자였고 지금도 명백히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 명백한 노동자"라고 강조했다. 학습지노조는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학습지 자본이 저지르고 있는 현실왜곡과 위장자영인화의 의도를 정확하게 본다면 사법부는 당연히 13만 학습지교사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받도록 강제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판결을 '학습지 자본의 사주를 받은 대법원의 청부살인'으로 규정했다.

웅진씽크빅 학습지 노동자들은 지난 2002년 3월부터 5차에 걸쳐 사측에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그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했고 노조는 이를 교섭해태로 규정해 투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같은해 8월 사측은 7천명에 이르는 교사들의 노동조건과 임금에 직결되는 문제인 '어문/수리 과목분리'를 노조는 물론이고 교사 누구와도 사전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앞장서 투쟁하다 같은해 10월 계약해지 당한 김 분회장과 성 대의원은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던 것. 두 사람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직투쟁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