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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요약>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대한 고발장

국제법상, 공소시효 적용 안된다


최근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자수하면서 고문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10일 강금실 변호사 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대표 최영도)’ 소속 변호사 13명은 이근안을 함주명(83년 남파간첩사건)씨 사건과 관련해 고문 및 위증죄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고발인들은 “헌법과 국제인권법의 대원칙에 따라 고문범죄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는 공소시효 제한이 절대로 적용될 수 없음”을 주장했다. 다음은 고발장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고발인 : 강금실/김도형/김선수/김승교/김연수/박성호/박찬운/백승헌/장주영/조광희/안영도/윤기원/차병직
․피고발인 : 이근안
․피해자 : 함주명

1. 고문과 허위증언

피해자 함주명은 83년 2월 18일부터 45일간 불법감금돼 고문을 당했다. 개성이 고향인 함주명은 월남한 가족을 만나기 위해 대남공작원으로 자원해 남파되자마자 54년 자수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이근안 등은 그를 체포해 “간첩행위를 자백하라”는 강요를 하며 온갖 고문을 하고 살해협박까지 했다. 피해자는 법정에서 고문을 호소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83년 12월 29일 항소심에서 이근안은 검찰측 증인으로 나와 고문을 한 적이 없다는 허위증언까지 했다. 결국 피해자는 이근안의 허위증언을 바탕으로 16년이라는 기간동안 감옥에서 처참한 세월을 보냈다.


2. 반인도적 고문범죄의 공소시효는 배제되야한다.

이근안의 고문범죄와 위증죄는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7년,5년)가 이미 지난 상태다. 그러나 헌법 제6조 1항은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고문을 반인도적 범죄와 국제관습법상의 국제범죄로 규정해 시효와 관계없이 해당국가에 철저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사건과 같은 고문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마땅히 배제되어야 한다.

고문이 반인도적 범죄라는 것은 뉘른베르그 재판 이후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것으로 유고슬라비아 전범재판소 및 르완다 전범재판소의 근거규정에도 고문을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하여 처벌하고 있다. 그리고 1998년 로마에서 만들어진 국제상설형사재판소법에도 이를 규정하고 있다.

고문이 반인도적 범죄요 국제관습법상의 국제범죄라는 사실은 다른 일반범죄와 그 처벌에 있어 특별한 취급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국제법상 반인도적 범죄 혹은 국제관습법상의 범죄는 ‘보편적 관할’이 적용된다. 즉,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들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피노체트에 대한 처벌 움직임이 바로 그 사례다.

둘째, 일반 범죄와는 달리 국제관습법에 의한 처벌도 죄형법정주의의 위반이 아니라는 원칙이 적용된다. 유태인학살의 장본인인 아이히만을 이스라엘에서 처벌할 때 소급입법을 금지하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아이히만의 행위가 국제관습법에 위반되는 반인도적 범죄라는 점이 강조돼 처벌이 가능했다.

셋째, 반인도적 범죄에 원칙적으로 공소시효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1968년 ‘전범 및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시효부적용 조약’이 만들어짐으로써 더욱 보편화됐다.

우리나라가 ‘시효부적용조약’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국제사회의 한 일원이고 또한 헌법 제6조에서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의 효력을 인정한 이상,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시효부적용은 우리사회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고문범죄행위가 공소시효를 넘은 것이어서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은 헌법과 국제법규에 어긋나는 것이며, 수사기관이 수사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이 사건과 같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하여 수사하여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3. 형사소송법 제 422조의 재심사유와 재심청구의 문제

만일 형사소송법을 토대로 공소시효를 적용한다면 이근안의 고문범죄와 허위증언이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이근안은 재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422조는 이같은 경우를 예상해 특별한 재심사유를 정해 놓았다. 즉 “확정판결로써 범죄가 증명됨을 얻을 수 없는 때엔 그 사실을 증명하여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근안에 대해 진실규명만 해준다면 피해자는 재심을 받을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소시효의 적용여부를 떠나서 사실여부에 관한 수사는 암울한 시대의 가장 극비로 가려진 비극적 참상을 진실의 빛으로 비춰내 역사의 정도를 세우는 작업이며, 고문으로 인간의 존엄을 짓밟히고 오늘날까지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피해자에게 정의로운 심판대에 서서 누명을 벗을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로운 일이다.

1999. 11. 10 고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