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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이름 없는 내 형제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98년 5월 15일.

20대 초반의 한 남자가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찾아왔다. 그는 군대에 가서 숨진 자신의 형 문제에 대해 2시간 동안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고 묻자 그는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다가 형에 대해 이야기하자 미용실 아주머니가 이곳을 찾아가 보라고 해서 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숨진 김훈 중위의 남동생이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찾아온 사연은 이랬다. 이 만남이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김훈 중위 사건에 관여하게된 동기였다.


다양한 사연에 한가지 결론

김 중위 사망 의혹이 제기되면서 천주교 인권위에는 약 70여건에 달하는 군 내 희생자 가족의 사연이 접수됐다. 매일 자신의 아들, 형제, 남편의 죽음에 대해서 의혹을 풀어달라는 호소가 목메인 흐느낌으로 전해져왔다.

사연도 다양했다. 현역을 비롯해 방위병에서 공익요원, 의경까지, 그리고 훈련병에서부터 대위까지, 무려 26년전인 73년 사건부터 지난 1월 발생한 사건까지 정말 다양한 죽음의 사연들이 접수됐다. 하지만 이렇듯 다양한 사건임에도 처리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는 자살 원인이다. 사망사건 대부분의 결론이 ‘내성적 성격에 의한 군복무 염증 자살’이었다. 즉 내성적인 성격이 자살의 이유였다. 유서가 없는 자살의 원인을 군 당국은 그렇게 ‘처리’하지만 법의학자들은 이유없는 자살은 없다고 한다.

둘째는 수사를 착수하기도 전에 내려지는 일방적 자살 결론이다. 김훈 중위 사건에서도 수사관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살’이라는 보도자료가 뿌려졌다. 그리고 수사관은 유족에게 묻는다. “여자와 헤어진 적이 있는가? 가정내 불화가 있는가? 성격에 문제가 있는가? 등등”.

만약 이때 부모가 이혼이라도 했다면, 집이 좀 가난하다면, 하다못해 결핵이나 허리 디스크만 있어도 사망원인은 바로 ‘비관 자살’이 된다. 이 과정에서 유족의 상식적인 의혹이나 의문은 고려의 대상이 못된다. 자살이 진실이라고 믿는 그들에게는.

셋째는 부대측의 유족 박대다. 거부할 수 없는 국민의 의무로 규정된 병역을 위해 옥처럼 키운 자식을 보낸 유족에게 군 당국의 박대는 자식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고통으로 남는다.

“집이 부산인데 아들 놈이 강원도 첩첩 산골에서 총으로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어요. 가보니 처참하더라구요. 하늘이 무너지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데 어떡하겠어요. 부대측이 무조건 자살이라고 하면서 빨리 화장하라고 하는데... 그래도 자살을 믿을 수 없어 죽은 현장 좀 보여달라고 하는데 ‘봐야 뭐하냐’며 보여주지 않고, 그럼 같이 근무한 소대원이라도 좀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 안된다고 하면서 어서 자식이나 데리고 가라는데... 그래, 어쩔 수 없이 화장터로 가려했지만 부대측에서 시신을 싣고 나올 차도 내주지 않더라구요. 어찌어찌해서 관광버스를 불러 그놈을 싣고 나오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온 적이 없었어요. 그래도 나는 관광버스를 불러 자식을 데리고 나왔지만 돈 없는 사람은 어떻게 데리고 올까 생각하니 이 나라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한 어머니의 절규를 들으며 내내 용케 참아왔던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김훈 중위사건은

많은 이들이 묻는다. 앞으로 김훈 중위 사건은 어떻게 되냐고.

언론 보도에 의하면 특별합동조사단은 김 중위에 대해 이미 ‘자살’로 결론짓고 오는 2월 중순경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특조단의 ‘자살’ 발표는 ‘발표’가 아닌 ‘정치적 선언’이다. 여론 몰이, 공정성을 상실한 비공개 수사, 자문위원 위촉이라는 복잡하고 화려한 절차를 거쳐 특조단은 어설픈 자살 결론을 선언하려는 것이다. ‘법의학자 공개토론회’라는 거창한 이름의 행사는 일반인의 참석이 불가능했고 사회자는 황당하게도 서울지검 현직 공안검사가 맡았다. 10가지 타살 의혹 중 8가지에 대한 법의학적 소견이 무시되고 ‘오직 자살’만을 주장하는 수적 우위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광신도 집회장같은 이름뿐인 ‘공개토론회’에서 유족은 참담한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김 중위 사망 사건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는 다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작정이다. 그리하여 힘있는 자들 다 빠져 나간다는 ‘아름다운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머리 빡빡 깎고 입대하여 참혹하게 숨져간 힘없고, 빽없고, 권력없는 이 땅의 이름없는 내 형제들 넋을 달래주기 위해 우리는 묵묵히 갈 길을 갈 것이다.


고상만(천주교 인권위원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