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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정리해고 편집증에 빠진 사회

“정리해고 반대 파업 불법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과연 시민권이란 있는가?
7일 국회 앞에서는 토론회 참석을 위해 온 노동자들이 단지 여럿이 왔다는 이유만으로 제지당했다. 주권자인 노동자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들어가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광경을 보며 사람들은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리해고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이러한 씁쓸함을 더해준다. 캄코, 한국 오티스, 현대 알미늄 등 수없이 많은 사업장에서 해고회피 노력없는 일방적인 정리해고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정부가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은 모두 불법으로 몰고 가는 탓에,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항의 행동마저도 어렵다. 최근 만도기계에의 경찰력 투입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렇다면 법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정리해고의 희생자가 되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인가.

고용․실업대책과 재벌개혁 및 IMF 대응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7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정리해고 토론회는 위의 질문에 답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이날 참석한 이광택 국민대 법대교수, 손혁재 정치학 박사, 김선수 변호사 등은 정리해고를 둘러싼 쟁점에 대해 전문가적 견해를 밝혔다.

김선수 변호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5항을 들어 “정리해고는 당연히 단체교섭 및 노동쟁의의 대상”이라며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은 불법이라는 검찰의 규정은 법에 어긋난 것”임을 주장했다. 지난 달 26일 대검공안부는 “정리해고는 인사․경영상의 문제로 근로조건을 유지․개선하기 위한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니”라며 “정리해고에 반발하는 모든 파업은 불법”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앞서 주발제에 나선 이광택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동맹파업 그 자체를 처벌하거나 강요행위로 평가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다”며, “우리나라에서 파업지도부를 구속할 때마다 등장하는 업무방해죄라는 항목은 노동운동탄압을 위해 만들어진 일제시대의 유물”이라고 비판했다.또 “현대자동차나 만도기계의 경우 파업 자체의 위법성을 찾아보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다수의 언론이 이를 ‘불법파업’으로 몰아부치고 엄청난 경찰병력을 배치하거나 투입했다”며 이는 비례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어 토론에 나선 손혁재 참여연대협동사무처장은 “우리사회는 ‘구조조정’에 대한 미신이 팽배해 있다”며 “그러한 미신이 정리해고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을 갖게 했다”고 역설했다. 또 최근의 현대자동차와 만도기계 사태에 대해, “‘불법파업이라 몰아가면서 기업이 그냥 버티면 노동자들이 양보할 수 밖에 없다. 혹은 경찰력 투입하면 해결된다’는 등의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 것 같다”고 말하며, “정부는 경찰력을 투입함으로써 개입할 게 아니라, 고용안정․실업대책에 집중함으로써 진정한 공권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삼미특수강 노동자 등이 참석해 부당노동행위로 고통받는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금속산업연맹 소속 한 노동자는 “지금 현장은 정리해고 앞에 무법천지”라며, “지식인들,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이 행동으로 함께 나서서 이 무법천지를 깰 수 있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또 현재 서울역에서 110일 넘게 농성 중인 삼미특수강 노동자는 “1년 전 중앙노동위원회의 고용승계 결정에 이어, 대통령, 감사원, 노사정위원회 등이 포항제철에 복직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