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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정부가 거부해도 노동자의 권리는 거부될 수 없다

노조법 개정운동이 만들어온 변화

11월 9일, ‘진짜사장 교섭법'과 ‘손배폭탄 금지법(노란봉투법)’으로 불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노동 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고자 했던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노동자의 정당한 단체행동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게 부당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 힘에 국회가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12월 1일, 윤석열 정부는 기어이 이 모든 걸 거스르며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실상 21대 국회에서 노조법 개정은 요원해졌다. 그러나 대한민국 노동자 10명 중 7명이 노조법 개정에 동의하는 지금, 기존 노조법이 현실과 동떨어진 낡은 법이라는 흐름마저 거스를 순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제 노조법 개정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책임 없이 권한만 행사하는 ‘진짜사장들’, 권리의 책임을 묻는 노동자

노동자의 권리라고 하면 흔히 근로기준법 등에 명시된 임금, 근로·휴게시간, 휴가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는 법으로 규정된 최저기준일 뿐, 권리의 전부가 될 순 없다. 사람은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상상하고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하고, 노동자 역시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받는 데 머물지 않고 ‘사람답게' 노동할 권리를 밝혀나간다. 물론 이는 회사와의 관계에서 ‘을’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 개인의 위치를 고려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노동자는 노동조합으로 뭉쳐(단결권) 노동 조건을 좌우해 온 회사와 협상을 통해(단체교섭권)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키운다. 그 과정에서 회사를 압박하는 쟁의행위에 나서기도 한다(단체행동권). 이렇듯 헌법에 담긴 노동3권은 일터에서 노동자의 권리 자체를 형성하는 기본권이다.

그런데 노조법은 바로 이러한 권리의 틀을 구체적으로 규제하며 되려 그 권리가 작동되기 어렵도록 기능해왔다. 이를테면 지난 20여 년간 하도급 등의 외주화가 일반화되면서 형식적인 근로계약관계를 뛰어넘는 ‘사용자’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노조법은 제한적인 사용자 규정으로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걸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왔다. 사용자들은 간접고용이나 특수고용 같은 복잡한 고용형태와 플랫폼 등의 기술을 통해 작업의 성격과 양, 노동 시간과 강도, 임금과 고용유지 등을 통제하면서도 형식상 근로계약을 맺는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을 부정해왔다. 그렇게 가짜사장에 불과한 하청업체와 계약한 간접고용 노동자, 무늬만 개인사업자임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진짜사장’을 찾아 싸워야 했다. 하지만 노동3권을 ‘가짜사장'에게만 행사하라는 노조법은 이러한 권리 행사를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는 근거가 됐다. 

작년 봄, 파리바게뜨 제빵노동자 임종린 씨가 SPC그룹 사옥 앞에서 53일 동안 단식농성을 했다. 이미 2017년에 점심 휴게시간, 임금체불, 임신·출산의 권리 등이 존중되지 않는 열악한 노동 조건이 알려지며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는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까지 있었지만, SPC그룹은 하청업체 대표들을 모은 ‘자회사'로 제빵노동자를 고용하며 또다시 책임을 외주화했다. 그 빵을 실어나르는 화물노동자들이 2021년 운송거부 파업에 나선 이유 또한 SPC물류계열사가 ‘진짜사장'임을 부정하며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이었다. 십 년 사이 화물차 한 대가 담당하는 매장이 두 배 이상 늘고 운행 거리와 운송량도 증가하며 과로에 내몰렸던 화물노동자들은 증차와 인력 충원을 요구했지만, SPC물류계열사는 화물노동자와 직접 계약을 맺은 위탁 운수업체가 책임자라며 뒤로 숨어버렸다. 그러면서도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자기 회사의 빵을 직접 만드는 노동자의 단식에도 얼굴 한번 안 비추던 SPC그룹, 그러는 와중 SPC계열 제빵공장의 산재사고 소식이 이어졌다. 이에 시민들이 ‘노동자의 눈물과 피가 묻은 빵’을 사지 않겠다며 불매에 나섰다. 반복되는 산재사고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SPC그룹의 무책임의 결과였다. 몇 개의 빵을 몇 시까지 만들어야 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함에도 노동자와 직접 교섭할 책임을 회피하는 ‘진짜사장' SPC그룹에 많은 시민들이 분노했다. 수많은 일터들에서 그리 다르지 않은 고용관계 아래 일하며, 권리를 요구하지 못하는 노동자-동료 시민의 분노이기도 했다. 노조법 2조 개정의 목소리는 그렇게 널리 퍼져나갔다.

 

노동자가 단결하고 행동할 권리를 탄압해 온 노조법 

자신은 사용자가 아니라며 대화조차 피하는 진짜사장에게 노동자들은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 즉 단체행동으로 맞선다. 일터에서 사용자와의 교섭과 협상은 결국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단결력에 달려있다. 노동자들은 “업무에 지장을 주고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라고 비난받는 바로 그 행동으로 ‘사람답게 일할 수 없는’ 무권리의 장소를 고발하며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얼마나 중요한 구성원인지를 드러냈다. 이에 사용자는 복잡한 고용관계를 단체행동에 대한 책임 회피의 구실로 대거나 ‘손해배상 청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단체행동을 위축시키려 했다. 

사실 현행 노조법은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조항으로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그 ‘쟁의행위’를 극히 제한적으로 규정한 다른 조항을 통해 노동자들의 단체행동 대부분을 불법으로 만들며 이에 손해배상을 청구해왔다. 10년 전 노란봉투법을 띄어올린 <노란봉투 캠페인>의 계기가 된 쌍용차 노동자들 투쟁이 대표적이다. 총인원의 36%에 달하는 대규모 정리해고 계획에 2,646명의 쌍용차 노동자의 고용 자체가 불안정해진 상황이었지만,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한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불일치’로 인한 게 아니라며 불법이 되었다. 

그 이후로도 노동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돈’으로 재갈을 물리는 폭력이 계속되었다. 작년 여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배를 만드는 하청노동자들이 임금 원상회복과 하청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며 51일간 조선소 도크를 점거하는 파업에 나섰다. 진짜사장 대우조선해양은 ‘불법’ 쟁의행위를 한 파업노동자 5명에 대한 47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로 답하며, 교섭에는 끝내 임하지 않았다. “함께 살자"는 쌍용차 노동자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 파업노동자들의 외침을 거액의 손해배상과 무자비한 공권력으로 짓누르려는 사측과 정부의 부조리한 행태에 시민들은 분노하며 노조법 개정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쟁의행위를 무력화하는 무분별한 손배폭탄에 제동을 걸자는 게 이번 노조법 3조 개정에 담긴 의미였다.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차별'에 맞선 20년의 싸움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가입률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곳곳에서 파업 등의 투쟁 소식이 이어진다. 이전보다 더 많은 얼굴들, 그것도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약자"라고 칭하는 이들이 노조법 개정을 외치며 하나둘씩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진짜사장에게 책임을 묻고 손해배상으로부터 노동기본권을 지키는 싸움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노동자와 아닌 노동자를 가르는 ‘차별'에 맞서는 싸움이기도 했다. 

하청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면 ‘중공업 밥은 못 먹는다'는 말이 자자했던 20년 전,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고(故) 박일수 씨는 강제휴직을 감수하면서도 동료들과 함께 사내하청노조를 세웠다. 그러자 현대중공업은 조합원이 속한 하청업체에 폐업과 사업부문 폐쇄를 지시했다. 강제퇴직, 징계 협박과 7억 4천만 원의 손배가압류가 이어졌고 이에 맞서 싸운 지 7년 만인 2010년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현대중공업이 원청으로서 하청노동자들의 노동관계에 있어 실질적인 지배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용자’이며, 하청노조 설립 이후 발생한 하청업체 폐업에 원청 현대중공업이 개입한 데 있어 사용자로서 부당노동행위의 책임이 있다.” 이후 노조법 개정안의 근거가 된 이 판결은 차별과 멸시, 박탈감, 착취에 맞선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정당했음을 뒤늦게 인정한 것이었다.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2004년 박일수 열사가 유서에 적은 이 말은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차별은 동료를 경쟁자이자 적으로 돌려 노동자들의 단결을 막고, 그 결과 더 손쉽게 노동자 개인을 착취하려던 자본의 오랜 전략이다. ‘다들 이렇게 일하는 줄 알았다’는 뒤늦은 깨달음은 ‘나도, 그리고 그 누구도 이렇게 일하도록 내버려둘 순 없다'는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노동자의 권리가 모든 노동자의 권리가 될 수 있도록 노조법을 개정하라는 외침이 국회를 움직였다. 이번 노조법 개정안이 ‘쓰는 데 20년이나 걸린, 최소한의 반성문’이라는 어느 국회의원의 고백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또 잃어야 했던 20년 동안 국회가 방기했던 책임이 무엇인지 뒤늦게나마 깨달았다는 성찰이었다.

 

결코 거부될 수 없는 노동자의 권리

정부는 기어이 노조법 개정을 막으며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였다. 정부는 노동조합이 일터의 상생과 협력을 무너뜨리고,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국사회를 망친다고 한다. 그러나 일터의 상생을 깨뜨리는 건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까지 책임을 회피하고선 천문학적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자를 짓누르면 그만이라는 기업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단결하여 권리를 ‘함께' 밝혀온 노동조합은 일터의 공존을 실현시킨 주체였다. 

수십년간 조선소와 건설현장을 지켜온 숙련공들이 일터를 떠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겐 강제노동의 굴레에 속박되거나 강제추방의 위협에 내쫓기는 두가지 선택지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단지 일자리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찾아 노동시장 변두리를 떠돌던 청년들은 구직 포기 상태에 내몰리고 있다. 중소영세업체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는 권리를 요구하지 못 하는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목소리를 빼앗겼다. 정부에 묻고 싶다. 이 모든 문제가 정말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에 벌어졌다 생각하는가? 

낡은 정치를 고수하는 정부가 거부한 건 단지 개정 노조법이 아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함께' 밝히고 지키며 싸워온, 노동자들의 권리. 정부는 이것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국사회는 노조법 개정 이후의 시간으로 넘어왔고, 바로 이곳에서 노동자들의 싸움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받으며 회사의 ‘선의'와 정부의 ‘지원'을 기다리는 무력한 존재에 머물길 거부한다. 권리를 부정하는 낡은 법과 정치가 무너질 때까지, 우리 모두 함께 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