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파업'

미류

파업 하면 '전지협'이 자동연상된다. 1994년 서울지하철노조, 부산지하철노조, 전국기관차협의회 3개 노조로 구성된 전국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의 파업. 내가 겪었기 때문이 아니다. '파업'이라는 말을 알게 될 때 그 원형이자 신화로서 전해들은 사건이었다. 그 후 '파업'이라는 말은 늘 두 갈래의 심상을 일으켰던 것 같다. 현실의 구체적 사건과 상상된 역사로서의 사건. 파업이라는 상징 또는 은유가 혼자 고고하게 남아있지 않게 하는 게 숙제구나 싶다.

  

가장 탁월한 다큐 제목 중 하나는 2007년 상암 홈에버 매장 계산대를 점거한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 <외박>이 아닐까. '외출'이 아닌 '외박'으로서 파업을 함께 겪는 여성노동자들의 분노와 동료애, 의식고양과 성장, 갈등, 좌절과 타협을 스크린 너머로 지켜보며, 그 모든 것이 파업에 포함된 의미임을 알게 되었다.

   

민선

2003년 이라크 전쟁과 한국군 파병에 반대하며 휴업하고 거리로 나갔던 날이 떠오른다. 일상을 멈춘 그 시간 동안 더 많은 것을 배웠고, 함께 부당함을 외치고 바꾸려는 '우리'를 만났다.

  

어쓰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노동절에 알바노조가 주최한 집회에 간 적이 있다. 그날 들었던 "알바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말의 충격도 기억이 난다. 파업은 일터를 멈춤으로써 세상을 멈추는 일, 누가 어떻게 세상을 굴리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일. 파업을 통해서 파업이 뭔지를 배웠다. 

  

가원

전혀 자율적이지 않았던 야간자율학습을 과감하게 째고 교문 담을 넘은 다음날 돌아오는 건 언제나 벌점과 엎드려뻗쳐 뿐. 그저 지극히 인간적인 몸부림이었을 뿐인데, 정당한 파업에 벌을 주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

  

정록

학생들은 데모를 하고, 노동자들은 파업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레타 툰베리는 결석시위를 '기후파업'으로 만들었다. 414 기후정의파업을 준비하면서 나도 파업을 해봤다. 새삼 느끼지만, 이 사회에서 파업을 성사시키려면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해야 한다. 만약 위력적인 파업이었다면, 감당해야 할 리스크도 굉장히 클 것이다.

  

해미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되묻는 멈춤. 그리고, “함께 살기 위해 멈춰!” 그 일보다도 중요한 걸 되찾기 위한 멈춤. 파업은 그 무엇보다도 치열하고 부지런한 움직임 같다. 4월 14일, 세종정부청사에 모이기 위해 바삐 움직였을 이들이 떠오른다. 모두에게 수고 많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