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논평> 파업을 보는 비뚤어진 눈


가뭄에 지친 농민들의 한숨에 땅이 꺼지는가 싶더니, 이젠 ‘권력’으로부터 ‘집단 몰매’를 당한 노동자들의 분노는 하늘까지 다다를 정도다. 노동자들의 파업권 행사를 마치 나라를 팔아먹는 양 매도하는 데다, 이를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의 빌미로까지 삼고 있기 때문이다.

따져보자. 과연 대한항공조종사 노조의 파업은 그토록 매도당해야만 했던 ‘짓’인가? 정부와 언론은 절차상의 티끌을 문제삼아 파업을 ‘불법’으로 낙인찍고, “불법이니 때려잡아야 한다”는 단순무식한 논리를 앞세웠다. 또한 ‘불법’으로 매도하기 어려운 파업에 대해선 ‘시민불편’과 ‘경제적 손실’ 운운하며 여론의 비난을 선동했다.

그러나 먼저 확인되어야 할 점은 대한항공조종사 노조 파업이 회사측에 의해 계획적으로 유도됐다는 사실이다. 사측은 노조의 교섭요청을 10여 차례씩 무시하고, 노동위원회의 행정지도를 교묘히 활용하면서 노조에게 ‘최후의 선택’을 강제했다. 뻔히 아는 사실을 놓고도 정부와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채 노조를 ‘집단이기주의자’들로 몰아갔던 것이다. ‘시민불편’이니, ‘경제적 손실’이니 하는 주장도 파업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에 불과하다. 파업이 무엇인가? 생산수단과 권력을 쥔 자본을 상대로 노동자들이 행사할 수 있는 최후의 권리가 아니었던가? 노동자들은 놀고 싶어 일손을 멈추는 게 아니다. 자본가에게 실질적인 손실을 입힘으로써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파업하는 것이다. 이 당연한 명제가 왜 문제되어야 하는가? 항공기가 멈추면 승객의 불편이 따르고, 공장가동이 멈추면 제품생산이 차질을 빚는다. 이러한 불편과 손실 역시 민주사회를 향유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비용’이다. 불편을 빙자해 파업을 비난하는 것은 남의 권리에 눈감고 자신의 편리만을 주장하는 편협한 이기주의자일 따름이다. 한편에선 ‘때가 아니다’며 시기타령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언제고 노동자의 파업이 ‘적절했던’ 때가 있었던가? 이 또한 상투적인 핑계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헌법 33조가 단체행동권(파업권)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까닭을 곱씹어 봐야 한다.

이번 파업은 정부와 자본의 도발에 맞선 불가피한 저항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양산, 복수노조 유보를 비롯한 노동기본권의 후퇴…. 그런데도 정부는 ‘엄정 대처’와 ‘사법처리’만을 뇌까리고 있다. 정부는 노동자를 적대시하는 것 자체가 ‘나라를 망치고 경제의 덜미를 잡는 결정적 장애요인’임을 직시하고, 더 이상 여론을 호도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