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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함께 있기에 더욱 힘이 나는 희망버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무지개인권버스에 탔어요

“다슬도 대우조선 희망버스 같이 갈래요? 함께 가면 좋을 거 같은데?”

사랑방 동료가 한 말이었습니다. 왜인지 바로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토요일이기도하고 놀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알고보니 이날 미리 잡은 약속이 있었습니다.) ‘희망버스’이기에 바로 거절하기도 그렇고 가겠다고 말하기도 어려웠습니다.

2011년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당시 김진숙 노동자(당시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35m 높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을 때, 그곳으로 전국각지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몰려왔습니다. 그때 희망버스를 탔던 역사 선생님의 영웅담(?)이 기억납니다. 선생님이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그곳에 갔다 온 거구나. 최루액 때문에 벌겋게 일어난 팔뚝을 보여주시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버스를 타고 함께했는지. 그곳의 분위기와 집회를 설명해주던 선생님의 해맑고 초롱초롱한 표정이 기억납니다. 뉴스에서는 경찰과 물대포가 무시무시해보이기도 했는데.. 저렇게 웃으면서 뿌듯하게 말하는 것이 신기하게도 느껴졌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7월 23일에 거제도로 향하는 희망버스에 타게 했습니다. 이번에 안 가면 후회가 될 것 같은 마음에 가게 되었습니다. 급하게 대우조선 파업에 대한 소식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집회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이기에 뭐라도 알고 참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런 복잡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유최안 부지회장과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은 6월 2일부터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조선업 불황 이후 악화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6월 22일부터 유 부지회장은 옥포조선소 배를 만드는 작업장에서 건조 중인 원유운반선 바닥의 철제구조물에 들어가 점거농성을 벌이고, 노동자 6명이 15m 고공농성을 시작했습니다. 0.3평 철제에서 자신의 몸을 스스로 가두고 처우개선을 요구를 해야만 협상테이블이 꾸려지는 이 상황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20년 동안의 경력을 가진 용접 노동자 시급이 1만원이라는 것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처우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투쟁 인권운동 긴급대응팀의 <대우조선해양하청노동자파업긴급인권보고서>를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조선산업은 1970년대부터 구조조정을 하고 그로 인해 부족한 인력을 사내하청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조선기업 간 저가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원가 절감을 위해 사내하청을 계속 활용했고, 하청노동자의 비율은 원청노동자 비율을 훨씬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6년 조선업 위기 닥치면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 수도 줄었다지만 하청노동자 수도 훨씬 크게 변동했습니다. 남아있던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임금이 삭감되고 노동조건이 후퇴하였습니다. 현재 조선업이 불황기를 넘기고 호황기에 접어들고 있다지만 하청노동자의 처우는 변화가 없는 상황입니다. 사내하청 증가, 일당공, 아웃소싱업체를 통해서 계속 복잡한 고용구조가 되었고, 고용형태가 다르더라도 맡고 있는 공정과 업무는 동일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문제는 어렵고 위험한 업무일수록 하청의 비율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하청노동자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구조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유 부지회장의 “이대로 살순 없지 않습니까?” 피켓문구가 떠오릅니다. 계속해서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구조에 노동자를 몰아세우는 방식으로는 어떤 노동자도 살아갈 수 없다는 외침이었습니다. 이와중에 정부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에 강경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밝혔고, 일부 언론에서는 기업의 손해를 계산하거나, 불법파업으로 기업이 막대한 손해를 받는다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파업중인 노동자가 몸이 상하거나 다치지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다행히도 희망버스 출발 전날인 7월 22일에 파업 51일 만에 하청지회와 협력사협의회 측의 협상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유 부지회장이 병원으로 갔다는 소식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협상소식에도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각지에서 많은 인원이 거제도로 모였습니다. 오랫동안 고생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에게 고생했다고 너무 대단하다고 응원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학생으로, 노동자로 혹은 선생님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찾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희망버스에 타고 온 다양한 분들의 연대발언도 너무 좋았지만, 김진숙지도위원의 발언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이미 많이들 보았을 김진숙지도위원의 발언 일부를 공유합니다.

하청지회 동지 여러분. 고생많으셨습니다. 스스로 철창에 갇히는 동지를 혼자 둘수 없어 고공에 오르고 뭐라도 해야할거 같아 단식을 했던 우리 마음은 합의서 보다 무거운 진실입니다. 구급차에 실려가는 동지들을 도크게이트에서 지켜보며 흘린 눈물은 합의서보다 진한 동지애입니다. 그 동지애로 7년을 버티는 아사히 동지들이 있고 서진, 파리바게트, 쿠팡 동지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더 뭉치고 더 커집시다. 우리가 뭉치면 세상이 흔들린다는걸 보여줬습니다. 용접과 도장으로 탄광만큼 진폐환자가 많은 조선소. 오함마와 그라인더에 고막이 나가고 깔려죽고 타죽고 터져죽어도 무재해 기록란에 0이 찍히는 유령들이 아니라 우리도 말할줄 알고 우리도 자존심이 있다는걸 세상에 보여줬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차별받는 사람들 같지만 더 차별당하는 존재들을 잊지 맙시다. 장애인들, 이주노동자들, 성소수자들, 여성들. 저를 크레인에서 살아내려와 복직의 꿈을 이루게 했고 오늘도 전국에서 달려 오셨습니다. 함께해야 우린 더 강해집니다. 하청노동자 승리의 그날을 위해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2011년에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지도위원에게도, 2022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희망버스에도 희망버스로 함께한 사람과 현장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후원으로 마음을 전한 많은 사람이 옆에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저도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