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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존엄을 진수하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싸움은 계속된다

사랑방에 들어와 처음으로 한 활동이 마무리에 접어들고 있다. 작년 7월 22일까지, 총 51일간 진행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기록하는 작업에 함께했다. 갓 사랑방 활동가가 되어 낯선 이들과 함께, 그것도 구술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만 이끌려 시작했다가 감당하지 못할까 걱정됐지만, 어쓰와 함께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구술 작업을 해본 적 있는 동료, 나아가서 다른 단체 활동가들과 호흡을 맞추는 팀워크에 익숙해지는 데에 같은 단체 활동가인 어쓰의 동행은 꽤나 큰 지지대였기에 고마운 마음을 살짝 전해본다.

집단 인터뷰를 통해 파업투쟁에 뛰어들었던 조합원들이 잠시 숨 고르며 생각과 감정을 잘 정리하는 것. 나아가서는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으로의 싸움 이상으로 '자기 자신'의 싸움으로 파업을 소화해 내는 것. 그렇게 세상에 나갈 이야기들이 추후 싸움에 나설 조선소의 하청노동자들,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에서 떳떳하고 행복하게 일하며 살아가고 싶은 이들이 희망을 다짐할 수 있게 하는 것. 넘어지는 순간을 ‘함께’ 두려워하고, 그렇게 쓰러져도 ‘함께’ 일어날 동료가 당신 곁에 있으며 그게 곧 당신이라는 것. 이런 마음이 잘 전달되길 바라며 구술작업이 시작됐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그 '이대로'의 삶과 사람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며 세상에 던져진 질문은 철창과 고공에 스스로를 내건 이들, 그리고 지상에서 사측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결성된 구사대에 맞선 이들, 바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목소리였다. 이들은 임금인상 30% 인상, 단체협약 체결, 다단계하청 근절, 재계약으로 고용보장을 외쳤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크게 ‘하청노동자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외쳤다. 갈수록 심해지는 탄압, 누구 하나 다치거나 죽을까봐 노심초사했던 긴박한 상황.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던 이유는 이미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날들을 보내며 켜켜이 쌓아왔던 절박함 때문임을 구술 작업을 통해 확인했던 것 같다.

‘노동자는 하나다! 노노 싸움을 거절한다’ ‘원하청 함께하자’ ‘함께 하면 현실이 된다’. 하청노동자들이 싸워야 하는 건 부당한 대우를 하는 회사/자본만이 아녔다. 차별과 불평등은 세상 곳곳, 구체적인 사람과 삶에 녹아들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동료마저 경쟁자로, 적으로 여기게 ‘각자도생’의 주문까지 걸며.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밥을 먹었던 정규직 노동자의 멸시, 자신과 같은 처지인 하청노동자 동료의 외면, 지기만 하는 싸움을 왜 하냐는 가족과 친구의 만류. 이 모든 것에 흔들리거나 굴복하지 않기 위해, 하청노동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과 싸웠다.

투쟁은 투쟁에 나선 이들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들을 끌어들였다. 투쟁의 중심에 선 사람과 아닌 사람이라는 단순한 구도를 벗어나야 비로소 투쟁에 엮인 사람들이 보였다. 철창 안에 스스로의 몸을 가두는 건 자신에서 끝나길 바랐던 사람과 그를 지키기 위해 여차 하면 바다에 뛰어내리려고 했던 사람. 파업을 차마 외면할 수 없던 사람과 파업을 외면할 수밖에 없던 사람. 파업이 길어지자 무거운 마음으로 일터로 돌아가야 했던 사람과 나라도 끝까지 남아있어야 한다며 버텨야 했던 사람. 파업이 끝나고 결국엔 조선소를 떠나게 된 사람과 파업을 지켜보다가 새로이 노동조합에 들어온 사람. 사람답게 살고싶다는 조선하청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대우조선의 울타리를 넘어 다른 조선소의 하청노동자들에게, 그리고 하청노동자들이 겪은 차별에 함께 분노하며 지지를 보낸 대한민국 곳곳의 연대자들에게도 닿았다. 결국 이 모든 사람/관계가 투쟁의 일부였다.

세상에 퍼져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은, 그 ‘이대로’라는 단어에 농축된 지난했던 싸움과 그 안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피어오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파업 투쟁이 어떠한 ‘조직적 성과’로만 설명되거나 기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투쟁의 의미는 조직에서 설정했던 공동의 목표, 가령 임금인상 쟁취과 같은 결과에 국한될 수 없었다. 더 넓고 다양한 곳에서 투쟁의 의미와 과제가 찾아질 수 있고 또 찾아져야 함을 곱씹게 됐다.


차별의 자리에서 사람으로의 권리를 외쳐왔던 목소리’들'

예상보다 작업 기간이 길어진 결과, 거의 1년가량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게 됐다. 인터뷰는 잠깐의 순간이었을지라도, 말 하나하나를 곱씹을 때마다 구체적인 얼굴을 만나고 또 만났다. 1년을 돌아보며, 내가 이 구술작업에 함께하고 싶었던 이유를 늦게나마 되짚어봤다.

개인적으로 조선소 노동자의 삶을 처음 접했던 건 2019년 즈음이다. 노동건강연대라는 곳에서 잠시 활동하며 매일 산업재해를 겪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접했고, 그 중 조선하청노동자의 산재사고를 집중적으로 다룰 기회가생기며 <나, 조선소 노동자>라는 책을 찾아보게 됐다. 2017년 5월 1일 노동절, 거제의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 하청노동자들이 대형 크레인의 붐 구조물에 깔리는 참사가 있었다. 6명의 죽음, 25명의 부상. 그리고 그 잔혹한 사고를 바로 옆에서 맞닿뜨린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은 살아남았음에도 매 순간 죽음을 곱씹으며 살아가게 됐다. 이 책은 그 무거운 슬픔과 고통을 나눠 준 아홉 노동자에 대한 구술 작업이었다. 자연스럽게 <현대조선 잔혹사>라는 책도 읽게 됐다. 앞서 말한 크레인 참사 이전부터 산재사고가 숨쉬듯 일어났던 조선소를 지켜봤던 한 기자의 책이었다. 그는 직접 현대중공업 조선소에 취업하여 겪었던 현장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찾아온 일터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어도 어쩔 수 없다는 세상. 특히나 '하청'이 하나의 신분이 되고, 그 신분이 최소한의 존엄조차 지켜내지 못 하게 하는 명분으로 작동하는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 나를 구술작업으로 이끈 건 이 차별과 불평등이 누군가의 생사를 결정하는 세상이 정말 괜찮은 거냐고, 아니 그렇지 않다고 무수히 알려온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싸움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구술기록집에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51일 간의 파업만이 아니라 그 전후로 이어져왔고 또 앞으로도 이어질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했다. 조선소로 흘러들어온 과거, 멀리서 지켜만 보던 노동조합에 들어서기까지. 그렇게 폭풍 같던 파업투쟁을 보내며 지금에 오기까지. 인터뷰는 그 시간들 위에서 나와 조직 앞에 남겨진 과제를 스스로, 그리고 함께 갈무리하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존엄을 진수하는 조선하청노동자들의 싸움을 기다리며

사람들에게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투쟁은 파업을 마무리한 시점에 하나의 마침표를 찍은 싸움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혹은 대우조선이 파업 조합원들을 상대로 '470억 원'이라는 터무니 없는 손해배상을 청구했음을, 그에 맞서 정당한 투쟁이 천문학적인 돈에 짓눌리지 못 하도록 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했단 소식 정도는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파업 후에도 쉴 틈 없이 일터와 일상에서 싸우고, 또 다른 싸움에 함께하면서 싸움을 이어갔다. 동료와 함께했던 투쟁에 벅찼다가도, 눈 앞에는 생계와 생존의 문제가 닥쳤다. 일터에서의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던 이들부터, 여전히 함께하지 못 하겠다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보며 무력감을 느낀 이들까지. 파업 후 꼬박 1년을 그렇게 투쟁의 의미와 과제를 스스로 소화하고 또 해결하기 위해 수없이 흔들리지 않았을까. 감히 쉽게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바깥에서 봤을 땐 투쟁과 투쟁 사이 ‘재정비'로 여겨지는 그 시기 역시 쉽지 않은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일상이 된 일터에서 매일매일을 싸우고, 서로에게 부대끼기도 하며 그렇게 자리를 스스로 개척하고 지켜온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게 진심 어린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일터에서 당당한 노동자로 살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사람 대접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부었던 2022년 여름의 파업투쟁. 그 역사 위에서 다가오는 2023년 8월, 부단히 몸과 마음을 움직이며 싸워온 이들이 다시 싸움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 어떤 노동자도 차별 받지 않을 권리, 그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할 존재의 '존엄'이 있다고 외치는 싸움. 평등과 존엄을 실은 배가 더 널리 진수될 수 있도록, 조선소 바깥에 있는 우리는 함께 싸우겠단 마음을 준비하며 기다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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