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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기후위기를 혼세마왕으로 놔두지 않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의 새로운 자원활동가 모임 ‘기후위기인권모임 노발대발’이 3월 말 첫 모임을 시작으로 4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활동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함께 모여서 공부를 하는 것이지만요. 사실 저는 올해 활동 계획을 세울 때 처음부터 이 모임에 함께하기로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요. 일단 공부부터 시작하는 이 ‘사랑(방)스러운’ 모임에 참여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작은 목표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혼세마왕, 기후위기

과거의 저는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2007년 태안 앞바다에 삼성1호와 허베이스피릿호라는 유조선이 충돌해 원유가 유출되었을 때 이를 수습하는 자원봉사를 찾아가는 열정도 있었지요. 당시에 진심으로 갯벌 오염을 걱정하는 마음이 컸거든요. 두말할 것도 없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절약을 생활습관으로 만들기 위한 꾸준한 시도도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마음은 혼란에 빠지더군요. 여전히 환경은 보호해야 하지만 나의 실천이 지구를 보호하는 데 보탬이 되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기는커녕 기후변화, 기후위기라는 말들이 더욱 일상을 파고든 것이지요.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적이던 기후위기가 불러올 재앙에 대한 파국론이 이제는 일상에서 친숙해진 덕분일까요. 플라스틱을 적게 사용하고,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제안과 실천들이 점점 더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래도 다 소용없고 지구는 파국으로 빠져들 텐데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오늘의 분리수거를 하는 것인가?’ 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죠. 기휘위기라는 말은 제 마음의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혼세마왕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기후위기 = 자연재해?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살 터전을 잃는 것도, 여름에 장마가 끝나지 않는 것도, 코로나19도 전부 기후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분명 맞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온갖 문제가 기후위기 때문이라고 하니까 도대체 무엇이 기후위기인지 감이 잡히지 않더라고요. 마치 세상에 발생하는 문제의 원인이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 때문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요. 오히려 신자유주의는 인간사회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지만 기후위기는 지구적 차원의 문제로 이야기되다 보니 더 막막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작년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를 통해서 접하게 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생각의 회로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세먼지는 물론 엄청난 탄소를 소비하며 전기를 생산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기해야한다는 주장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정규직 노동자는 LNG발전소로 고용승계 계획이 함께 나왔지만 비정규노동자는 아니었습니다. 무책임한 정부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정책을 지지했습니다. 오히려 이에 맞는 고용 대책을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전기라는 이 사회의 필수적인 에너지원을 생산하기 위해 노동해온 이들이 국가보다 먼저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정의로운 전환의 과정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지 답하라는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것이 마치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대비를 하는 것으로 해석하던 저에게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질문을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기후위기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저에게는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감각을 사회를 바꿔나간다는 감각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과거의 제가 자연을 보호한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지금은 상대적으로 무디게 움직이는 이유는 모두 내가 사는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석탄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것은 결국 기존의 체제에 맞서 대응해나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기분이었달까요. 기후위기라는 혼세마왕에게 압도당해 뭐라도 해야 한다(혹은 해도 소용없다)는 쫓기는 마음에 행동의 방향성을 잃기보다 한 호흡 가다듬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기후위기 인권모임 노발대발에 참여를 결정했습니다. 이 체제를 넘어서는 문제로서 기후위기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로서 기후위기를 바라보기 위한 공부를 해야겠다. 체제의 문제라는 말이 곧 이 사회의 문제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고민해나가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에 계획에도 없던 모임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렇게 벌써 세 번째 모임을 앞두고 있는데요. 여전히 오리무중 상태에서 책을 펼쳐 들면 체제고 나발이고 이러다 다 망하는 것 아닌가 싶은 마음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시 함께 이 기후‘위기’를 헤쳐 나가는 동지들이 있어서일까요. 흔들리다가도 마음을 붙잡고 다시 책장을 펼치게 되네요. 조금 버겁더라도 함께 모임을 꾸려나가는 동지들 믿고 가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