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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차별잇수다

 차별에 맞서는 용기를 잇는 수다, <차별잇수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차별당한 경험을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가 겪은 일이 차별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이야기를 한 후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걱정됩니다. 별일 아니라고 넘기거나 오히려 나를 탓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더 움츠러들기 마련입니다.

<차별잇수다>는 평등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움츠러들었던 서로의 마음에 다가가 일상의 차별을 더 많이 소란스럽게 말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차별에 대항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지지의 마음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평등의 감각을 서로 배우며 차별에 맞서는 힘을 키울 수 있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구체적인 목소리를 모아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전국 방방곳곳의 이야기들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존재 그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 모두의 삶을 위해 평등을 향한 소란을 시작해 주세요.

<차별잇수다>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민주주의 활동가 그룹 ‘빠띠’가 함께합니다.

* 온라인 차별잇수다 참여 : https://sooda.govcraft.org/

* 오프라인 차별잇수다 신청 : bit.ly/차별잇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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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해

차별은 작은 것에서부터.

오이를 먹지 않는다. 또는 "못" 먹는다. 오이를 먹지 않는 사람으로서 지금껏 경험한 것들은, 여느 차별의 구조와 무척이나 비슷하다.

- 다른 사람의 상태나 고통에 대해 알지 못한다.

- 알려고 하지 않는다.

- 알아도 무시하거나, 축소시키거나, 비하하거나, 잘못되었다고 하거나.

- 결국 공격이나 강요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요즈음, <오이를싫어하는사람들의모임>의 결성 소식도, 냉면집 주문서의 "오이 X" 표시도 무척이나 반갑다.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차별의 구조를 바꿔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려나. 큭.

 

가보고 싶었던 음식점과 카페는 죄다 노키즈존이다. 부끄럽지도 않은지 노키즈존임을 홍보하는 곳들을 볼 때마다 아이랑 둘이서 하루종일 집에만 있기 너무 답답한데 나갈 여력도 없다는 친구들의 대화방을 떠올린다. 이 친구들을 만나려면 친구 집으로 가야하고, 아이가 잠든 사이에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그나마도 일 년에 한 번 만나면 다행일까. 앞으로도 노키즈존에 갈 일은 없겠지. 조만간 친구들 집 순회를 해야겠다!

 

세주

"내가 겪은 일이 차별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이야기를 한 후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걱정됩니다." 라는 말이 어쩜 이렇게 마음에 와 닿는지. 전통적(?)인 조직문화와 암묵적 차별은 바늘과 실 같은 것이다.

뭐 부끄럽지만 예전 같았으면 정색하고 바로 손들고 했을만한 것도 그냥 먼저 자리를 피했었다. "차별이예욧" "차별하지 마세욧" 이라고 조직에서 말하는 순간 온갖 상황이 그려지기에 겁난다. (아니~ 그건 차별이 아니고~ 지금 상황이 이렇고 그렇고,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데? 그게 될 것 같아?) 그러다가 00년차 정도 된 요즈음에는 한마디는 한다.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정도. 약간의 우회적 표현인 셈이다. 그냥 나를 향한 상황인지 아닌지 무관하게 나는 싫다는 것을 표현하는 정도? 그런데 이 말을 내뱉기 까지 너무 오래 걸린 것 같다. 사실 연차가 쌓였다고 말을 뱉을 수 있는 것도 한편으로는 고리타분한 발상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여전히 나는 침묵중인 것 같다. (그리고 사실 고백컨대 나의 차별 캐치 세포가 지속적으로 말라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조금 무서워진다.)

 

가원

매번 남성 노동자가 나의 필요에 의해 집을 방문할 때마다 불길한 상상을 떨칠 수 없다.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에게 누적된 공포가 피로감을 넘어 신경쇠약으로 이어질 지경이다. 지난번 보일러 교체 때도 그랬다. 정작 수리 기사들은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하며 분명히 존재했던 불안을 불식시켜주었지만, 어쩌다 바람결에 닫힌 현관문에 괜히 심장이 한번 쿵하더니 다시 현관을 열어야 한다는 투철한 마음과 날도 몹시도 무더운 날 애쓰는 저들에게 시원하고 달달한 음료수라도 대접해야 한다는 마음 중간에서 정신이 사나워졌다. 그 사이 기사 한 분이 내 침실에 달린 보일러 컨트롤러를 교체하러 들어갔다. 행여 카메라가 달린 건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무슨 죄인가 싶지만 난 또 무슨 죄인가. 문득 가정 방문할 때마다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는 여성 가스검침원들이 떠오른다. 무슨 이런 세상이 다 있나.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를 산다는 건 야만을 감수하고 산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정록

차별한 경험이 먼저 떠오른다. 선거운동을 몇 번 하게 됐다. 거리에서 선전물을 돌리다보면 사람을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일단 너무 나이가 많은 분들은 피한다. 글자도 잘 안보일거라는 생각과 함께. 청소년들은 선거 홍보물에 관심이 가장 많다. 그런데 유권자가 아니다보니 슬그머니 소극적으로 대한다. 꽤 자주 마주치는 이주노동자들은 어떤가. 그 겨울, 소위 효율적인 선거운동은 차별적인 선거제도와 정치적 권리 위에서 작동했다.

 

어쓰

스무 살이 되자마자 두 달짜리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외국계 회사에서 서류를 정리하는 일을 주로 담당했는데, 계약 기간이 끝나갈 무렵 연장을 권유받으며 들은 말. "처음에는 고졸이라 영어 서류를 읽을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일을 너무 잘 해서 다행이었다." 그 때는 일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는데도 왜 기분이 나쁠까 생각했는데, 이제는 안다. 설령 좋은 의도였더라도 그건 칭찬이 아니라는 걸.

 

민선

몇 달 전 예금을 들러 은행에 갔다. 직원분이 대뜸 하는 말, "결혼하셨어요?" 뭐여. 예금 드는 거랑 결혼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욱 하는 마음이 올라왔지만, 젠장. 그 마음보다 대답이 더 빠르게 튀어나와버렸다. "아니요." 아이씨. 기다리면서 고민했다. "결혼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요? 왜 물어보셨나요?" 말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말하고 난 뒤 예상되는, 어색하고 불편한 기류.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통장을 받고 돌아오던 길 걷는 내내 곱씹었다. 말할 걸. 말할 걸. 어색하고 불편하면 어때서. 그게 뭐라고 바보같이. 내게 '차별'은 일상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어택 같다. 그렇게 훅이 들어올 때 의연하고 빠르게 '착' 하고 쳐낼 수 있는 기술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훈련이 되면 좋겠다.

 

디요

조금 변태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군대에 들어가서 적응이 무척 힘들었다. 초반에는 그걸 또 숨긴다고 열심히 숨겼다. 관심병사가 되면 받게 될 차별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와서 너 왜 관심병사로 찍혔느냐고 물어봤다. 그간 선임과 간부들이 나에게 대놓고 나무라지는 않으면서, 그렇다고 잘해주는 것도 아닌 미묘한 차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숨기기 위해 노력해온 나로선 어이가 없었지만 묘한 해방감이 동시에 들었다. 이미 찍혔다는데 뭐. 그 이후로는 대놓고 관심병사의 역할에 충실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