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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미 톺아보기

성소수자들의 농성이 만들어낸 변화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미 톺아보기 ③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래 이게 맞을 듯.

나는 호모일까? 느끼한, 하느님이 바라지 않는 사람일까? 결국에는 누가 이것을 본다면 그를 죽일 것이다. 내 동생이야 순수하니까 괜찮지만 난 너무 더러워. 슬퍼. 이젠 저 글씨와 내가 증오스럽다. 그걸 쓴 내가 증오스러워.

내가 청소년기에 쓴 일기장의 한 부분이다. 겨우 몰래 숨어서 쓴 것 가지고, 그토록 자신을 증오했었다니. 혐오스러운 자신이 싫어서 그 누군가를 죽일 생각까지 했었다니. 시간은 흘러 흘러 자긍심은 이미 한번 흘러넘쳤고, 이젠 더 이상 게이란 게 자랑스러울 것도 없는 나의 일부분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때의 내가 가끔씩 말을 건다. 그건 아마 아직도 세상은 성소수자가 자신을 혐오하도록 만들고 그런 ‘나’들이 힘들어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힘들어하는 ‘나’들

2007년 어느 날 핸드폰으로 차별금지법 차별금지사유에서 성적지향이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있다가 빠졌다는. 눈물이 나고 분통이 터졌다. 정말 너무들 했다. 1인시위도 하고 퍼포먼스도 준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대응에 함께했다. 그리고 2011년 학생인권조례의 차별금지조항에서 또다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짜증이 밀려왔다. 지겨운 것들.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싶었다.

농성에 들어갈 준비를 하면서 가방에 청소년기에 썼던 일기장을 집어넣었다. 넣으면서 왠지 남사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넣었다.

모르겠다. 안쓰러우니까 울지 말고 화내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또 눈물부터 난다. 다들 그랬던 것 같다. 너무나 열심히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정보를 얻고, 로비를 하고, 계획을 짜고 하던 사무국 사람들. 의원들을 설득하러 간 자리에서도 울고, 짧은 잠이나마나 자고 일어나 서러워서 한바탕 울고, 잠깐 볼 일 때문에 지하철 타고 가면서 울고. 모르겠다. 괜한 오버일지도 모르겠지만 며칠 밤을 새워가며 일하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이 받아 왔던 그리고 받고 있는 차별과 혐오가 떠올랐다. 아님 내가 받는 차별과 혐오인지도. 그래서 더 눈물이 난 건지도 모른다.

농성장에 왔던 많은 사람들.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 집에 가려다 마음이 불안해 다시 돌아온 사람들. 트위터에 인터넷에 소식을 나르던 사람들. 가보지는 못하고 후원이나마 해야지 했던 사람들. 노래를 불러주었던 사람들. 집에서 먹을 걸 맛있게 만들어온 사람들. 그 시간들. 마음들. 그리고 또다시 괜한 오버인지 나는 그들이 받아왔던 그리고 받고 있는 차별과 혐오가 떠올랐다.

차별 앞에서 타협할 수 없었다

차별금지 항목에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미 차별이었고, 빼야한다는 그들의 논리가 혐오였다. 학생인권조례를 통과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몇몇 항목들은 협상거리가 되어야 했다. 혐오를 내뱉는 이들의 표가 무서워 곤란하다는 의원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게이, 레즈비언이라고 온갖 괴롭힘과 폭력을 당한다고 말했는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학생인권조례를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24개의 차별금지사유를 명시하고 있는 5조를 포괄조항으로 하자는 타협안이 나오기도 했다. 성적지향이든 성별정체성이든 일일이 다 나열하지 말고 그냥 “차별하지 말자” 정도로만 명시하자는 거다. 항목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지 않고 뭉뚱그려서 뭐하겠다는 건지. “차별받으면 안 된다”라는 이야기는 아무나 할 수 있다. 누구나 동의한다. 뭐가 차별인가를 이야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있나? “원래는 차별금지 항목에 나열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성적지향, 임신출산을 빼라고 해서 결국 포괄조항으로 바뀐 거야”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성소수자 학생을 차별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타협할 수가 없었다. 애당초 타협할만한 것이 없었다. 자신의 존재를 타협할 수 있을까?

어쨌든 우리는 이겼다. 단서조항들이 붙고 서울시 부교육감 권한대행의 재의 요구가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농성이 큰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확실하다.

농성이 만들어낸 변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명시되어 있으니까, 다른 지역에서 만들 때도 명분이 없으면 빼기 어려울 거다. 그리고 그 명분은 뭐로 포장하던 간에 명백히 혐오와 차별이다.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한 뺄 수 없다. 이젠 우리가 없는 것처럼 하면서 우아하게 차별할 수 없다. 유치하고 허접한 혐오의 언어를 드러내라. 그게 너희의 모습이다.

성별정체성은 대한민국 법으로는 처음 들어갔다고 한다. 성적지향이 누구를 좋아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성별정체성은 내가 누구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성별이분법(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하고)이 너무나 강력한 지금 사회에서는 아마 두발 규제가 풀려도 성별로 다른 머리 스타일을 강요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성별은 나도 모르게 서류상 적혀있는 성별일 뿐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자신이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성에 따라서 살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함을 명시한 것이다. 이는 트랜스젠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자애가 무슨 기지배같이. 여자애가 조신하지 못하게.”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차별과 폭력들은 이성애/동성애에 관계없이, 트랜스젠더/트랜스젠더 아닌 사람 관계없이 성별이분법에 기대고 있다. 남자답지 못한 ‘남성’, 여성스럽지 못한 ‘여성’은 더 쉽게 괴롭힘 당한다. 성별정체성의 포함은 그것을 문제 삼고 있고, 그러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앗싸~

멋졌다. 멋지다. 멋질 거다. 앞으로도 해야 할 것이 많다. 학생인권조례가 실제로 학생들에게 자신의 인권을 지킬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소년이, 성소수자 청소년이 학교에서, 학교 밖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음에는 우리가 의원들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의원들이 우리 눈치를 볼 수 있도록.

인권은 함께 만드는 것

농성장에서 느꼈지만 차별금지사유를 하나씩 뺀다는 것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빼는 것과 같았다. 나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빠지는 것에 분노해서 함께했지만 어떤 이들은 집회의 자유에 더 분노했고, 우리는 같이 학생인권조례 원안통과를 외쳤다. 농성장에 찾아온 비정규직 노동자, 병역거부자, 노숙인 인권운동을 하시는 분, 일일이 적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차별에는 함께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분들에게 감동했다. 인권은 무언가를 버리고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이라 느꼈다. 그렇기에 앞으로 할 것이 많지만 나는 신난다. 같이 할 사람들이 있어서. 새롭게 만날 당신이 기대돼서.
덧붙임

오리 님은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에 함께해서 무척이나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