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2019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개토론회, <낙태죄폐지 2라운드> 참가 후기

요즘 우연히 <캘리번과 마녀>을 읽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중세시대 마녀에는 낙태한 여성도 포함된다. 교회법은 자신의 재생산 기능을 통제하려는 여성을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 여기고 낙태죄로 유죄를 받은 여성에게 10년 동안 참회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었다. 어디까지나 15-16세기 유럽 중세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2020년이라는 마치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미래를 반년 앞둔 지금 읽어도 그 내용은 지극히 현대적(?)이라 느껴졌다. 그러나 드디어 한국에도 낙태죄가 사라졌다. 이제 ‘마녀’가 되어도 처형되지 않는 새로운 시대를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피어오른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낙태죄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인지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6월 18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하 모낙폐)가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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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토론회 주요 발언을 정리한 내용이다.

발제자인 성과재생산포럼의 나영 활동가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헌법재판소가 확인해 준 바는 임신의 유지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의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하여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영역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에 해당하며 그에 따라 당연히 헌법적 기본권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 둘째, 낙태죄 처벌은 임신 중지율을 낮추거나 안전한 임신중지를 하는데 있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낙태죄 폐지 이후 이제는 더 이상 처벌을 통한 통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조건의 적극적인 개선을 통한 보장 체계와 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늘려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입법 공백 시기인 지금 당장이라도 시행할 수 있는 조치로 인공유산유도제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의 건강이다. 임신 중지가 후기로 갈수록 여성에게도 위해가 커진다는 측면에서 임신 중지 조기 접근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 공식적인 의료 체계를 통해서 인공유산유도제를 복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해당 약에 대해 여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정확하고 공식적인 정보를 얻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복용 후 우려되는 증상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언제든지 병원을 찾아가서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함은 인공유산유도제의 도입의 필수 전제 조건이라 할 것이다.

헌재 결정이후 공론장의 논의가 여전히 낙태가 가능한 주수가 언제인지, 언제 처벌할 수 있는지에 골몰하고 있다는 점은 토론의 강도를 높이게 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처벌할 것이냐’가 아니라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어떤 시기에, 무엇을 보장할 것이냐’가 논의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만약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주수인 22주 이후의 임신중지에 대해 특정한 규제를 둔다고 하더라도 낙태 사유를 입증하는 요건을 복잡하게 요구하지 않아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처벌은 안 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한편 임신중지를 결정할 때 배우자의 동의를 의무적으로 구해야 하는 현행 모자보건법이 낙태를 선택한 당사자의 주체성을 취약하게 하고 시급한 의사결정을 가로막는다는 문제점도 제기되었다. 나아가 현행 모자보건법이 사실상 우생학적 목적의 인구관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는 조항을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여성노동자와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토론자로 나선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피임에서부터 임신중지와 출산까지 여성이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사회라면 여성들은 일자리에서 협상력이 커지면서 노동과정과 이로 인해 결정되는 임금에 대한 결정력 또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토론자인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2015년 발표한 국가수준 성교육 표준안은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후퇴하였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인정하고 포괄적인 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내실 있는 교육이 가능하도록 시수를 확보하고 담당 교사의 전문성 역시 확보할 수 있도록 담당교사의 자격 취득 및 양질의 훈련 과정을 제도화하고 교육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 감독 등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빼놓지 않았다.

이날 토론회는 소수자의 재생산권에 대한 변화도 주요하게 이야기했다. 발제자는 한국인 남성의 부계 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이주 정책은 한국인 남성과의 혼인 상태에서 출산을 했는지 안 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귀화 조건이 달라지는 문제, 자녀의 부가 한국인 남성인지 이주민 남성인지에 따라 자녀의 국적 취득요건이 달라지는 문제 등은 이주 여성과 아동 모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봤다. 언어 문제나 지역적 상황 등에 의해 적합한 정보와 의료 환경을 찾을 수 없는 상황들이 이주 여성들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열악하게 만들고 있는 중요한 조건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희망을만드는법 류민희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확인해준 것은 임신중단이 기본권이라는 사실이지만 동시에 헌법 불합치라고 선언한 그 자체가 현실세계에서 임신중단이 곧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낙태죄 폐지 이후 법적 과제들이 적지 않음을 시사하며 여성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정책적 수단을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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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

 

중세 유럽에서 마법이라는 범죄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한 이들의 80% 이상이 여성이었다고 한다. 앞서 소개한 책 <캘리번과 마녀>는 마녀재판에 두드러지게 등장한 범죄들은 재생산과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국가는 출산 통제를 범죄화하여 여성의 신체, 특히 포궁을 관리하여 인구 감소와 노동력 생산의 도구로 삼으려고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2019년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중세시대 마녀사냥에 경악하는 것은 그저 당시의 법이 야만적이고 위법한 성격을 띄고 있어서라기보다 현재 자신이 속한 일상의 환경과 너무 닮아있어서 일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제 막 중세시대를 벗어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는 그런 시대를 살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충분히 자축하고 싶다. 동시에 온전히 내 몸으로 살 수 있는 현생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싸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마 이날 토론회에 모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개토론회 <낙태죄 폐지 2라운드> 자료집 링크

http://bitly.kr/wjDoz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