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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x젠더, 재생산을 말하다]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활동 과정과 의미

[편집인 주]

한국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은 인구정책의 기조에 따라서 국가로부터 관리되고 간섭받는 영역이었다. 임신을 중단할 것인가 지속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도 철저하게 국가가 허용하는 사유와 처벌하는 사유가 나누어져 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성관계와 양육 등의 문제에 대해서 장애를 가진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고민하며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이 활동해왔다. 앞으로 8차에 걸친 연재를 통해서 장애/여성의 재생산권리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연재는 비마이너와 공동게재된다.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은 1998년 활동을 시작한 이후 장애여성 인권문제에 집중했고, 몸의 차이를 비롯한 섹슈얼리티, 여성폭력, 독립, 문화예술 생산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최근에는 가족을 꾸리기도 하고, 임신·출산·양육의 재생산과정을 경험하는 중증장애여성회원들의 변화를 같이 나누고 함께 고민해왔다. 이를 통해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이 모성권 보장만으로 풀어질 수 없고, 다양한 측면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느꼈다.
경험이 쌓여가면서 ‘공감’은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재생산권에 대해 이제 이야기할 때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장애여성 관련 법적 검토와 세미나, 회원 인터뷰를 통해 2014년 <우생학,낙태,모성권,자기결정권-장애여성 재생산권 논의를 시작하며> 토론회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제작했다. 올해는 작년 논의를 바탕으로 장애운동과 여성운동의 재생산권에 대한 고민을 들어보고, 장애여성들의 삶 속 재생산권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간 여성운동은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국사회에선 70-80년대의 경우 인구조절을 위해 임신중절을 허용․유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나, 2010년 발표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발표>와 프로라이프의 생명권을 필두로 한 고발과정으로 인해 낙태단속 및 낙태를 한 여성에 대한 처벌 등이 강화되면서 여성의 재생산권은 크게 침해당했다. 이 과정에서 오랫동안 이야기해왔던 “임신중지 결정 여성을 처벌하지 말라”는 구호와 함께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허용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한편, 1999년에는 김홍신 의원의 보고서를 통해 장애인 생활시설의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강제불임시술이 공론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장애운동은 모자보건법에서 우생학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 허용조항이 장애인의 인권침해라고 문제제기를 해왔다.

재생산권에 관한 논의 흐름 속에서 ‘공감’은 재생산권을 임신·출산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임신·출산의 결정권, 피임, 성관계, 성교육, 양육 등 전과정으로 해석하고, 장애여성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공감’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건강과 대안,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연구자 백영경을 중심으로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기획단>을 구성하였고, 기획단을 주축으로 수도권과 지역에서 연속포럼을 4차례 진행했다. 1,4차 포럼은 여성운동계, 장애운동계의 간담회로 진행하면서 재생산권에 대한 정의와 장애여성 관점에서의 쟁점을 나누었다. 대구와 목포에서 열린 2,3차 포럼에서는 장애여성 집단토론 및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여성운동계와 장애운동계의 포럼

여성운동계와의 포럼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가 참석했다. 포럼을 통해 여성의 재생산권 확보를 위한 여성/시민단체들의 활동과 성폭력 사건 발생 시에 낙태죄로 인하여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2차 피해에 대해서 나누었다. 형법상의 낙태죄가 여성의 재생산권을 어떻게 침해하는지, 그리고 여성의 재생산권이 공론화되지 못하고 개인의 영역으로 함몰되는 현실을 들어볼 수 있었다.
또한, 재생산권을 임신·출산만으로 한정지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 해석할 필요성과 생명권vs선택권 구도의 틀을 깨고, 재생산권리로써 접근할 필요성에 대해 모두 공감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필수가 되어버린 산전검사 시스템에서 알 수 있듯이 건강/정상성을 추구하는 현상에 관하여 어떠한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누었다.



장애운동계 포럼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학회,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가 참석하였다. 장애여성의 경우, 출산 시 장애가 심해지거나 몸의 변화가 생길 수 있는데 정보제공자가 많지 않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또한, 장애여성의 어머니됨을 기존제도의 순응으로 국한하여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정받는 행위의 시도인 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여성 재생산권 논의가 여성이 어머니가 됨으로써 여성임을 인정받는 수단으로 활용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리고 낙태 비범죄화와 동시에 모자보건법상 우생학적 조항 폐지가 같이 이루어져야 함을 나누었다.

2차례의 연속포럼을 통하여 장애와 여성운동 진영의 차이와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다. 그동안 여성운동은 낙태를 금지하는 국가와 법에 맞서 여성의 결정권을 주장하였으나, 실제로 재생산과정에서 일어나는 건강/정상성 추구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임신중절을 금지하는 모자보건법에서 장애를 이유로 낙태를 허용하는 조항에 대해 비판적 검토를 지속적으로 진행하지 못했고, 여성의 몸(특히 자궁)이 자원화되는 측면은 다루었으나 최근 임신 및 출산과정에서 거의 정례화되고 있는 산전검사의 의미에 대해선 점검하지 못했다.
장애운동의 경우 모자보건법 14조 1항(*)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장애가 있는 경우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사회의 정상성 추구에 대해 비판하였으나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검토, 특히 사실상 재생산과정(피임, 임신, 출산, 양육 등)을 책임지는 장애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작업이 부족하였다. 위와 같은 논의과정을 통해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관점이 필요한지 되묻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장애여성의 경험을 통한 듣기

대구와 목포에서 2차례 이루어진 장애여성 연속포럼에 총 25명의 장애여성이 토론과 인터뷰에 참석하였다. 대구포럼에 참여한 11명의 장애여성 대부분은 뇌병변장애였고, 지체장애와 척수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목포는 13명의 장애여성 대부분이 뇌병변, 지체장애였으며, 청각장애여성도 1명 있었다. 인터뷰는 혼인여부 및 출산·양육경험에 따라 나누어 진행하였다. 비혼·출산·양육경험이 없는 그룹의 경우 피임, 성관계, 병원이용, 주변인 반응 등을 주제로 이야기하였고, 기혼·출산·양육경험이 있는 그룹의 경우 양육·출산경험을 추가로 진행하였다.



토론 및 인터뷰 과정을 통해 장애에 대한 고려가 없는 병원 및 의료․피임기구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지체장애여성의 경우 산부인과 진료의자에 앉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검진을 거부당하기도 하였다. 특히 피임기구에 있어 손에 장애가 있는 경우 스스로 콘돔 등의 착용이 어려워서 실제로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과정을 거치며 어머니됨으로 위치성을 획득하기도 하고, 양육권을 다시 뺏기기도 하는 장애여성의 위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장애여성은 어렸을 때부터 불임수술을 권유받기도 하고, 임신 후에는 주변의 반대로 인하여 임신과정을 숨기기도 하는 등 재생산권을 보장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어머니되기로 획득하였던 위치성을 지켜내기 위해 양육권을 빼앗으려는 시부모와 선을 긋기도 하고, 양육권에 대해 주장하는 주체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장애아 출산에 대해서는 장애가 유전될까 걱정을 하여 산전검사를 더 철저히 받기도 했었지만, 둘째 아이부터는 산전검사를 거부하기도 하고, 자신이 장애인의 삶을 이미 살아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자녀가 장애인일 경우 더 잘 준비를 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시작하는 종합토론


4차례의 연속포럼을 거치며 지난 10월 22일에는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종합토론>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과 한국장애학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과 대안, 한국성폭력상담소가 함께 했다. 종합토론에서는 임신중지에 대해 논의할 때 사용되는 생명권vs선택권 구도가 아닌 국가의 인구정책에 대한 분석으로, 그리고 국가가 여성과 태아 중 누구와 동일시하며 인구정책을 시행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생명권을 주장하지만 생명에 있어 위계를 두는 점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재생산권 담론의 관점을 전환할 필요성, 재생산권을 임신․출산의 사건이 아닌 전과정으로 확대하며, 인권의 측면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동안 재생산권 운동은 임신중지 결정 여성의 처벌 및 장애아 낙태허용발언 등 관련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올해 1년여 동안의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의 활동을 통해 재생산권 운동 역사를 성찰하며. 재생산권을 비장애/이성애여성의 한정된 영역이 아니라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장애여성공감은 논의과정에서 과제로 남겨진 인구정책, 과학기술, 정상성중심주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권리를 인권적 측면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앞으로의 활동에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바란다.


(*) 모자보건법 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② 제1항의 경우에 배우자의 사망·실종·행방불명,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동의를 받을 수 없으면 본인의 동의만으로 그 수술을 할 수 있다.
③ 제1항의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을 때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의를 갈음할 수 있다.
덧붙임

박서연 님은 장애여성공감 연구정책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