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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로?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로?

민수 (자원활동가)

제가 처음 사랑방에 온 건 2010년 12월이었던 것 같아요. 용산참사 2주기 강제퇴거감시단으로 활동을 처음 시작했었죠. 그걸 계기로 2011년도에 주거권 활동을 했고, 2012년도부터 지금까지 노동권 활동을 했네요. 그리고 이제 7월 달에 사랑방을 떠나게 되었어요. 버마(미얀마)로 떠나게 되었거든요. 사실 사랑방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을 떠나게 되었죠!

떠날 때가 되니 사랑방이 저에게 무엇이었던가 생각하게 됩니다. 또는 사랑방이 상징하는 것들이요. 인권, 사회운동, 사람, 소수자, 진보, 정의, 연대, 투쟁, 집회..

처음 사랑방에 왔을 당시, 저는 어떻게 사는 게 훌륭한 삶인지, 대학교를 졸업하면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저는 사회복지를 전공했는데 사실 별로 사회적이지 않은 사람이었죠. 사회문제나 정치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고,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ㅎㅎ 용산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그냥 무슨 일이 있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정도였어요.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배우는 사회복지라고 하는 것이 사회운동, 그리고 정치와 별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뭔지 잘 모르고, 도무지 익숙하지 않은 일이지만 ‘배우기 위해서’ ‘익숙해지기 위해서’ 사랑방에 찾아왔나봐요. 그렇게 생전 처음으로 집회도 가보고, LGBT라는 말이 뭔지도 알고, 강제퇴거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 동성애자, 장애인, 홈리스를 만나고.. 나하고는 다른 세상,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들이었죠.

그러다 사랑방을 떠납니다. 마치 사랑방에 이따금 찾아와 머물다 떠나는 손님처럼요. 한 바퀴 돌아서 제가 원래 있던 자리로, 제가 있을 자리로 돌아갑니다. 사랑방을 지키는 이들에게, 사랑방이 상징하는 가치들에 헌신하는 이들에게 존경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제가 사랑방에 와서 알게 된 것들을 알지 못했더라면, 사랑방에 와서 만나게 된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대로 저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요?

▲ 3회 청소노동자행진에서 명숙과 함께 찰칵~

길거리에 나와서 항의하는 당신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겠지요. 길거리에 나와 항의할 수조차 없는 당신을 나는 알지 못했겠지요. 그런데 나는 이미 그 가운데 누군가와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 가운데 누군가와는 사랑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제는 당신과 같은 누군가를 보면 당신이 겹쳐 보입니다. 마치 군대 간 아들을 가진 어머니가 그 나이 때의 군인들을 보면 아들이 겹쳐 보이듯이. 그렇게 당신이 겹쳐 보입니다. 나는 당신을 두고 떠나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나는 당신을 아는 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