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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2014년, 과거를 잊지 않고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하는 새해를 맞이하며

2013년 12월 31일, TV화면에는 새해를 축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보신각, 임진각등 각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해를 맞는 설렘으로 가득 차 보였다. 사람들에게 새해가 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1월 1일이 되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이가 들어가기에? 보통 새해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출발하고 계획을 세우는 의미를 지닌다. 잊을 수 있는 건 잊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기보다 앞날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날, 그렇기에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는 과거를 보단 미래를 바라본다. 다이어리에 신년목표를 쓰고, 올해는 꼭 이것만은 해야지 결심한다. 2013년 다이어리에 기록된 자신의 이야기들은 2014년 다이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새해니까, 새해에 걸맞게 덜어낼 과거는 지워버리는 게 우리가 맞이하는 새해의 모습이다.

사회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2014년을 맞이하며 경제연구소에서는 경제성장률 예상을 쏟아내고 대통령과 정치권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새해 계획을 밝힌다. 올해 목표가 무엇인지, 우리사회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 지 밝히는 계획 속에 과거는 마치 없었던 일인마냥 지나간다. 2013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돌이키는 건 2013년으로 족하다. 2014년의 새로운 것,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길 사회는 요구한다. 마치 새 것, 새로운 목표만이 있는 것처럼 사회와 우리는 새해를 맞는다.


2013년은 과거가 아닌 현재, 그리고 미래이다

우리 삶과 사회의 모습은 새로운 것으로 가득 차 있을까? 사실 우리 모두는 이 질문에 그렇지 않다 대답한다. 하루의 날짜가 지났다고 해서 새로운 것이 올 것처럼 우리의 삶이 순진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잊어버리고 싶기에, 지워버리고 앞으로 향해 가고 싶기에 과거보단 미래를 본다. 그렇지만 과거가 없는 미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흐름 속에 그대로 살고 있다.

2013년 12월 우리사회는 커다란 저항의 흐름이 일어났다. 철도노조의 민영화저지 파업은 최장기 파업으로 이어졌고, 12월 28일 총파업에는 10여만 명의 사람들이 참여해 서울 도심에서 민영화 반대를 외쳤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펼쳐진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는 안녕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 중·고등학교, 골목길, 지하철역, 버스정류장에서 자신의 안녕하지 못함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관계와 연결을 만들었다.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서로 만나기 시작했고,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에 맞서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은 거리로 나왔다. 인간다운 대우와 존엄을 외치는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섰다. 박근혜 정권퇴진과 특검 촉구를 하며 한사람은 불길 속에 떠나갔던 2013년 12월 사회 곳곳에서 인간의 존엄을 외치는 불길은 일어났다.

이에 반하여 2013년 12월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독재에 대한 합리화와 식민 지배·전쟁·국가 폭력 피해자에 대한 왜곡을 담은 교과서를 출간하였고 1년 동안 진행된 대선 특검과 국정원 폐지 요구는 국회 내 국정원 개혁특위 설치로만 멈추었다. 검찰은 파업을 종료한 철도노조 간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정부는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약하는 직권면직 도입과, 공익사업장 필수업무 분야 확대를 추진했다. 언론에 대한 옥죄기도 지속되었다. 손석희 씨가 진행하는 JTBC 아홉시 뉴스는 김재연 의원과 박원순 시장이 출연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중징계 처분을 맞았고, 해를 넘겨 CBS 김현정의 뉴스쇼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신부를 인터뷰하였다는 이유로 징계처분의 위기를 맞았다.

한국 기득권 세력의 모습은 비단 한반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캄보디아 봉제공장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총파업에 돌입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캄보디아 공수부대와 경찰이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한국정부와 업체들이 개입하였으며,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현지 노동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추진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과거가 아닌 현재도 이어지는 싸움들, 기억이 아닌 연대의 장소들

지난 2012년 대한문에서 시작된 함께 살자 농성촌에 사람들은 비록 중구청의 침탈에 의해 농성장이 없어졌지만, 지금도 각지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5년을 맞이한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여전히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고,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평택 공장 앞에서 복직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송전탑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밀양에서는 매일같이 공권력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제주 강정의 싸움도 끝나지 않았다. 광화문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은 500일을 맞았으며, 노조파괴에 맞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유성기업의 싸움 또한 끝나지 않았다.

장시간 싸우고 있는 투쟁사업장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6년에 걸친 정규직화 투쟁을 마치고 2013년 5월 복직한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12월 30일 오전 사측이 몰래 사무실을 이사해 다시 투쟁을 시작했으며,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2500일을 넘는 시간동안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다. 재능교육을 비롯한 2013년 혹은 그 이전부터 진행되어온 수많은 사람들의 존엄에 대한 외침은 지워지지 않은 채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들의 새해를 맞아야 한다

새해, 지나간 과거 보단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고 계획하는 설레는 날은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지나간 과거라고 하기에는 존엄을 부정당하는 우리의 삶은 현재의 모습이고, 이에 저항하여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미래가 아닌 지금 이순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맞이하는 새해는 무엇일까?

바로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 부정당하는 존엄, 투쟁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의 현재를 잊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함께 싸우는 그것. 그렇게 서로 연결하고 연대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싸워나가야 하는 건 아닐까? 2013년의 그것들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 꼭 붙들어 안고, 2014년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하는 게 바로 우리들의 새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