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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집회시위 제대로 하기 위한 ‘공동행동 6가지’

‘집회시위 제대로 하기 위한 매뉴얼’을 펴내며

작년 4월에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공동투쟁단, 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 희망버스 사법탄압에 맞선 돌려차기,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희망을 만드는 법, 전국철거민연합 등의 단체와 개인들이 집회시위의 권리를 쟁취하고 확장하기 위해 ‘집회시위 제대로 모임’을 꾸렸다. 국가인권위나 유엔에 기본적인 인권으로서 집회시위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법정에서 헌법적 권리인 집회시위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이를 막아서는 경찰과 싸우는 것만으로는 집회시위의 권리를 온전히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이 사람들이 모여서 6개월 여간 머리를 맞대고 법률적 인권적 원칙과 투쟁 현장의 경험을 담아 ‘집회시위 제대로 하기 위한 매뉴얼’을 발간하게 되었다.

매뉴얼은 집회시위를 제대로 하기 위해 집회 신고단계부터 현장에서 경찰 대응, 집회 이후의 검경 수사, 인권침해보고서 작성까지 각각의 과정마다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집회시위를 탄압하는 데 쓰이고 있는 각종 법률, 행정, 사법 절차에 대한 대응, 집회 현장에서 필요한 경찰 대응에 대한 내용들이 빼곡히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이 아주 새롭거나 대단한 것들이라서 이대로만 하면 경찰로부터 자유로운 집회시위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행법의 부당한 적용에 맞서 의미 있는 판례들도 이미 여럿 있다. 주변에는 경찰과 잘 싸워서 집회 신고부터 진행까지 계획한 대로 잘 해내는 사람들도 많다. 문제는 이런 사례들이 널리 알려지고 조직돼 집회시위 전반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개별적인 대응에 머물러 왔다는 점이다.

이 매뉴얼은 단순 정보 전달을 넘어서 집회시위를 제대로 하기 위한 공동 행동의 촉진자 역할을 하고자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모여서 행동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당당히 주장하지 못할 때, 공권력은 ‘너희는 경찰의 허가와 감시 아래에서만 모일 수 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그래서 준법시위서약서라는 기상천외한 요구를 당당히 하고, 마치 집회 시위가 허가제라도 된 것인 양 금지통고를 남발한다. 어렵사리 개최된 집회가 범죄 현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차벽과 경찰력으로 둘러싸고 채증을 하면서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공권력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합법과 불법이라는 경계선을 긋고, 선을 넘는 이들을 탄압해왔다. 그런 공권력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많은 이들이 자의반 타의반 관리된 집회시위 문화에 익숙해져 갔다. 단지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집회시위 개별 현장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함께 마음을 모은 이들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 우리는 집회시위를 한다. 바로 그런 집회시위가 통제․관리되는 것은 우리 싸움의 내용과 형식이 통제되는 것이다.

집회시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공동행동이 절실하다. 다함께 모여서 큰 집회를 하자는 게 아니다. 집회시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정도는 요구하고 실천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함께 하자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경찰은 법적 한계를 넘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사법부는 현행법의 문제를 인식하고 합리적 적용을 고민하게 된다. 법 제도가 바뀌어 집회시위가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자유로운 집회시위를 위한 우리의 공동행동이 쌓이고 쌓여 법 제도를 비롯한 현장의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1. 집회시위 준법서약서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자.

현행법 자체가 집회시위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서약서라는 형태로까지 강제하려는 경찰의 행태에 적극 대응하자. 전국 어느 경찰서에서도 준법서약서를 내밀지 못하도록 준법서약서 요구 관행을 근절시키자.

2. 집회는 허가제가 아니다. 금지제한통고에 적극 대응한다.

헌법에서 집회에 대한 허가가 금지됨에도, 경찰의 판단으로 집회시위가 허가되고 있다.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 또는 집회 강행을 통해 경찰의 판단이 근거 없다는 것을 드러내자.

3. 집회시위를 방해하는 경찰의 신분을 밝혀내 그 책임을 끝까지 묻는다.

경찰은 집회장소 봉쇄, 난입, 방송, 차벽, 채증 등 다양한 물리력을 통해 집회의 원활한 진행을 방해하거나 집회 자체를 무산시키고 있다. 집시법에는 경찰의 집회방해죄를 엄중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현장에서 해당경찰의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경찰의 행동을 제어하고 이후에 필요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도록 하자.

4. 경찰과 검찰의 부당한 소환, 기소, 재판에 공동 대응한다.

채증자료를 가지고 집회 이후에 광범위한 소환과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집회시위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것은 우리들이지만, 빈약한 집회기록, 개별화된 재판 대응으로는 집회현실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재판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집회시위의 사회적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고, 구체적인 자료에 입각해 현행법의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소환, 재판 공동 대응을 하자.

5. 공권력 탄압에 대한 법적대응과 사회적 고발을 위해 인권침해보고서를 작성해 공동의 자료축적과 향후 대응기반을 쌓아가자.

앞선 4가지 공동행동이 개별적인 행동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인권침해보고서라는 형태로 경찰의 행태 그리고 우리의 대응을 체계적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이러한 기록이 쌓이고 쌓여, 법제도적인 개선을 위한 정책대안이나 어떤 게 집중 공동행동 의제가 되어야 하는 지 실태파악도 가능하다. 또한 법적인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집회시위의 권리가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것인지, 집회 주체들의 언어로 전달하는 경험도 매우 중요하다.

6. 집회시위를 옥죄는 제반 법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싸움에 함께 한다.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대응과 더불어 공권력이 행동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근본적으로 바꿔내야 한다. 집시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하면 거리에 모이는 사람들을 잘 통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법이다. 또한 공권력은 집회시위를 통제하고 탄압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다른 법률을 끌어온다. 형법상의 일반교통방해죄, 공무집행방해죄, 업무방해죄, 모욕죄, 명예훼손죄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법제도와 그 적용이 얼마나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지를 드러내자. 이에 대한 집단적인 대응을 통해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고 구체적인 법제도 개선을 목표로 공동행동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