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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참깨] 국회 본청 앞 두 개의 마음

박근혜 대통령은 ‘왜’ 유가족들을 외면했을까?

지난 10월 29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했다. 헌데 부쩍 추워진 10월 끝자락 날씨 속에서도 박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전 날 밤부터 국회에서 노숙까지 하며 밤을 지새워 박 대통령을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대통령 국회 방문 전날인 10월 28일 저녁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 까지 열었다. 언제나처럼 유가족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그리고 또한 사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 결 같았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수색작업. 그리고 특검추천에서 유가족의 참여. 단 세 가지였다. 유가족들은 따로 대통령의 시간을 할애해 면담을 요청했던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이 국회 본청에 입장하는 길에 잠깐이라도 대통령에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유가족이 원한 전부였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이 가족대책위가 밝힌 바에 따르면 청와대 쪽이 먼저 유가족들에게 연락해 대통령 오실 때만이라도 비켜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니면 화를 쏟아내어야 할지 갈피도 잡을 수 없는 적반하장의 상황.

이윽고 29일 아침이 되었고 9시 40분경 삼엄한 경비 속에서 박 대통령이 국회 본청으로 들어섰다. 경찰과 경호원들이 유가족과 박 대통령 사이의 경계를 유지했고 유가족은 박 대통령이 지나갈 때 “대통령님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했다. 이 때 박 대통령은 단 한 번의 시선조차 유가족을 향하지 않고 국회로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 중에서도 세월호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국회 일정을 마친 뒤 국회를 빠져나가는 과정에서도 똑같이 유가족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유가족의 절실함과 박 대통령의 냉정함. 국회 본청 앞 두 개의 마음이 엇갈렸다. 유가족과 박 대통령의 세 번째 만남이었고 청와대 면담이 있은 뒤 약 5개월이 흐른 뒤였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유가족의 절박한 심정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박 대통령의 태도가 이내 마음에 걸린다. 여기서 무엇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박 대통령 태도의 변화이다. 첫 번째 만남.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튿날인 4월 17일 유가족들이 머물고 있던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구조에 있어 정부가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철저한 조사와 원인인을 규명할 것”이며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엄벌하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만남. 유가족들의 길고 절실한 요청 뒤인 5월 16일 유가족들은 청와대에서 1시간가량 대통령과 면담을 할 수 있었다. 이 면담자리에서 유가족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지지를 박 대통령에게 제안했지만 박 대통령은 법의 제정은 국회의 소관이라 답했다. 또한 진상조사 위원회에 민간인 참여에 대해서도 검찰이 열심히 수사하고 수사과정을 유가족과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답했다. 유가족은 이 면담에 대해 아쉽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3일 뒤, 그리고 지방선거 15일 전인 5월 19일에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를 통해 박 대통령은 유가족과 국민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사과했고 대책으로 해양경찰청 해체와 국가 안전처를 신설하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어떤 의미인지 모를)눈물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만남. 여기서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박 대통령은 유가족들이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듯 철저하게 무시했다. 짧게 몇 초 만이라도 발길을 돌려서 다만 노력하겠다, 힘내시라 정도의 형식적인 대처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물론 박 대통령 마음 속 깊은 곳의 진심이야 알 길이 없지만 우리는 전후 맥락을 감안해 유가족을 외면한 이유를 추측할 수는 있다. 박 대통령은 유가족을 첫 번째 만났던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최대한 구조에 대한 지원을 할 것이며 책임자를 엄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과 두 번째 만남이었던 청와대 면담에서는 세월호 특별법과 진상조사위원회에 대해 유가족과 뜻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박 대통령은 그 나름대로 이미 유가족에게 확실하게 선을 그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책임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상황들을 보면 우리는 박 대통령의 태도에 대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선 정부는 해양경찰청 해체하고 국가 안전처 신설을 진행 중이다. 악의 축처럼 여겨졌던 청해진해운의 실제 소유주인 유병언은 이미 사망했다. 또한 적극적인 구조와 퇴선유도등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123정 정장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승객들을 버리고 자신들만 탈출해 생존해 공분을 샀던 세월호 선원들의 경우에는 이준석 선장의 경우에는 사형, 1, 2등 항해사와 기관장에게는 무기징역, 나머지 선원들은 최소 징역 15년에서 30년이 각각 구형되었다. 세월호 침몰에 대한 진상규명 이라며 검찰은 지난 10월 6일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세월호는 급격한 조타-복원력 상실로 인해 침몰한 것으로 규정했다. 즉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규명되었고 책임질 사람들이 엄벌에 처해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말했던 모든 약속들은 결국 오롯이 지켜졌다. 물론 일방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따라서 추측컨대 박 대통령에게 이미 세월호 참사는 이미 종결된 사건이다. 최소한 거의 다 이긴 게임이며 끝마친 숙제이다. 박 대통령의 진심은 알 수 없지만 국회 본관에서 유가족을 철저하게 외면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당위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부에 어떠한 것도 기대하는 것은 더 없이 무모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가능했다면 벌써 특별법이 제정되었어야 할 것이다. 세월호의 남은 진실에 대한 숙제들은 오롯이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은, 진실을 원하는 시민들의 것이 되었다. 10월 29일. 참사 발생 103일 만에 실종자의 시신이 인양되었다. 아직도 바다 속에 9명의 실종자가 남아있다.
덧붙임

강성국 님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