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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위하여

11월 24일,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참사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표결이 진행되는 동안 두 손 모아 기도하며 방청하던 유가족들은 결과가 확인되자 다들 얼싸안으며 박수를 쳤다. “이제 시작이야.”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주고받는 말에서 나는 2014년 11월을 떠올렸다. 그때에도 가족들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모두가 서럽게 울며 주먹을 쥐었다는 것. 전국을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은 고생과 비교하면 너무 초라한 법이었다. 그마저도 박근혜 정권의 방해와 공작으로 특조위가 해체되고 말았으니, 지난 3년여의 시간은 가시밭길이었다. 이번엔 조금 달랐다. 아니 달라야 한다. 사회적 참사 특별법이 성에 차지는 않아도 이제야말로 진상규명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또 하나의 특별법이 있다. ‘4.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피해지원법)이 그것이다. 

1년까지만 아파라?

지난 11월 10일 국회에서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희생학생 준형의 아버지인 유가족 장훈 님과 생존학생 애진의 아버지인 장동원 님이 먼저 증언에 나섰다. 두 사람 모두 힘주어 강조한 것은 치유와 회복을 위해 무엇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아파서 의사를 찾아가면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말만 듣지만 “우리는 우리가 왜 아픈지 알고 있습니다.”라며 장훈 님은 참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모든 정보를 감추려 들었던 정부에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도 아픔은 덜어져야 한다. 그런데 트라우마에 섬세하게 접근하지 못하는 여러 기관들이 유가족을 연구 대상처럼 취급하고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장동원 님은 생존학생들이 어떻게 이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 전해주었다. 욕실에 씻으러 들어가면서 욕실 문을 열어놓는 아이들,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을 자는 아이들, 스트레스로 각종 피부병과 소화장애에 시달리는 아이들… 그런데 피해지원법의 의료지원은 기한이 이미 끝났다. 법 제정 당시 시행령에서 1년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치료 등의 지원은 기한이 5년이지만 모두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에 따라 배상금을 지급받은 경우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1주기 즈음 정부가 배보상으로 참사를 종결시키려 들 때 받을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최근 생존학생 한 명이 자살을 시도했는데 배보상이 종결되었다는 이유로 심리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지원이 있더라도 입증을 요구받는 어려움이 있다. 유가족들은 참사를 겪은 후 특별한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건강하던 사람들이 잇몸이 다 무너지고 없던 고혈압 당뇨가 생기고 제대로 된 관절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러나 관절염이, 고혈압이, 치주염이 참사와 인과관계에 있음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혹시나 하면서 영수증만 꼬박꼬박 모아놓는다는 유가족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피해지원법이 지원배제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피해자는 누구인가

민간잠수사들도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했다. 해경이 치료비를 지원하겠다며 조사에 나선 적이 있다고 한다. 증언에 나선 민간잠수사 황병주 님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업에 복귀한 잠수사들은 일을 하다 몸이 나빠지면 세월호에 다녀온 후유증 아니냐며 산재처리를 거절당합니다. 현업에 복귀하지 못한 잠수사들은 세월호에 다녀왔으니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일 거라며 매번 고용을 거절당합니다. 그런데 해경은 우리의 부상이 세월호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냐 의심하며 그 인과관계를 증명하라고 합니다.”

참사와 피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문제도 어렵지만 더욱 큰 문제는, 민간잠수사들이 피해지원법에서 아예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피해지원법은 이들을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로 보지 않는다. 희생자와 생존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피해지원법이 정한 세월호참사의 ‘피해자’다. 황병주 님은 잊고 싶지만 잊지 못하는, 악몽과도 같은 고통을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과 죄책감, 시신 수습을 하는 동안 겪었던 추위와 배고픔과 무시, 세월호 안에서 보았던 처참한 모습들, 시신 수습으로 떼돈 벌지 않았냐는 사람들의 손가락질… 황병주 님은 대답을 꼭 듣고 싶다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가 아니라면 세월호 실종자 수습의 과정에서 갖게 된 우리의 고통은 과연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가요?”

세월호의 침몰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참사 해역으로 달려나갔던 진도 어민들도 피해지원법에서 배제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진도 어민들은 피해지원법에 따라 ‘손실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상은 충분하지도, 지속되지도 않았다. 동거차도 어촌계장인 소명영 님은 유가족들 앞에서 송구하다며 말을 아꼈지만 짧은 얘기에서도 어민들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전복이나 해삼이 바다 속에서 다 폐사하고, 2미터 이상 자라던 미역이 반토막이 나는데다가 만지면 부서지기도 할 정도로 부실하다고 한다. 조명탄의 납 성분이 3년은 간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는데 보상 협의를 할 때는 알지도 못했다고 한다. 2017년은 작황이 좋다 하여 기대했다가 인양 과정에서 기름이 유출되며 다시 피해를 보고 있는데 보상 소식이 없다고 한다. 이들이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가 아니라면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피해는 무엇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일명 ‘김관홍법’이라 불리는 피해지원법 개정안이 계류되는 핑계는 ‘재정적 부담’이다. 법이 제정될 때에도 반대하는 의원들은 같은 이유를 들었다. 19대 국회 농해수위 위원이었고, 20대 국회에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김종태 위원은 “내 세금으로 사고 난 사람한테 보상해줄 것이냐”가 쟁점이라고 했다. 한국사회는 재난참사를 ‘보상’ 문제로 접근하는 데 길들여있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다른 재난참사와 마찬가지로, “보상 더 받으려고 저런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재난참사는 인권의 문제다. 우연한 불행처럼 보이는 사건이, 필연을 만들어온 구조적 인권침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재난참사의 피해자에게는 피해의 보상을 넘어 권리의 회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피해자를 협상의 일방으로만 바라보니 피해자 범위 늘리는 걸 돈 더 드는 일로만 여긴다. 진상규명이나 지원 과정에 피해자 참여를 반대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민간잠수사들은 보상심의를 할 때 산업잠수전문의를 추천하려고 했는데 공정성 훼손이 우려된다며 거절당했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는 피해자가 사고 조사위원으로 결합했고, 9.11테러 의료지원과 배보상 과정에서는 피해자 3인과 구조자 2인이 과학기술자문위원회에 포함되도록 했다는데 너무 다르다. 피해자를 제한하고 배제하는 것은 아직 사회가 권리 회복에 관심이 없다는 징표다. 

피해자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기 이전에 권리를 가진 주체다. 피해자 정의를 확대하고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피해자를 권리의 주체로 대접하기 위한 출발선이다. 권리 침해가 반복되어 누군가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필수요소다. 재난참사는 단지 대형사고가 아니다. 사회공동체가 붕괴하는 사건이다. 대형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국가가 발 벗고 나서고 이웃들이 아낌없이 손을 내민다면 사회는 붕괴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직후 달려갔던 진도 어민과 민간잠수사조차 피해자로 인정하지 못하는 국가에서 누가 다시 기꺼이 연대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겠나. 

생명과 안전이 권리라면, 우리는 어떻게 권리를 지키고 누릴 수 있을지 피해자로부터 가장 잘 들을 수 있다. 피해지원법이 서둘러 개정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세월호참사에 국한된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모든 재난참사에서 피해자 권리 보장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적참사특별법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시작되어야 한다.

* '세월호참사 피해자 증언대회-세월호참사, 말하지 못한 피해자의 이야기'에서 나눈 증언과 자료, 영상 등은 416연대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416act.net/79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