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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녀는 뜸도 들이지 않고 바로 말했지요. “끌어내!” 그동안 경찰과 부딪치면서 제일 억울하거나 화났던 게 무엇인지 물었을 때, 그녀의 대답은 마치 질문보다 먼저 있었던 것처럼 터져 나왔어요. 그녀가 겪은 일을 떠올리면 충분히 짐작되는 일이지요. 저도 경찰에게 사지가 붙들려 짐짝처럼 치워진 적이 있어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허공에 뜬 순간 내 몸을 관통하는 모멸감, 본능적으로 발버둥치지만 절대적인 힘의 차이만 경험해야 하는 비참함, 당해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그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됐어요. 그런데 그녀가 덧붙인 말이 제 몸을 훅 치고 갔어요. “그기 국어사전에나 있는 말이지, 사람한테 쓰는 말 아니잖아요?”

인권활동을 하다보면 사람들이 들려나가고 끌려 나가고 구석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속상하고 화가 나지요. 그러면서도, 익숙해져버렸나 봐요. 쫓아내! 몰아내! 끌어내! 이런 말들이 사람에게 쓰여서는 안 될 말이라는 것을,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밀양으로 희망버스를 타고 가려고 합니다. 그 곳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지켜야 할 것에, 이유는 없습니다

저랑 나이 터울이 그리 많이 나지 않는 당신의 어머니를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제가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바드리 마을 입구에요. 바드리 마을은 고리원전에서 만들어질 전기가 밀양으로 처음 들어오는 길목이지요. 당신이 사는 동네가 아니지만 그녀는 농사일도 제쳐두고 날마다 그곳으로 나왔어요. 폭언과 모욕, 협박, 끌려나오고, 밀려나고, 갇히고, 찍히고……. 똑같은 악몽을 꾸는 것처럼 변함없는 시간, 하지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늘 새롭게 겪는 시간을 그녀는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바드리 마을의 송전탑이 밀양의 첫 송전탑이라는 이유만 이었다면,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을까요?

끌어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풍요롭게 삶을 나눌 수 있었던 세계와, 끌어내라는 명령과 완력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세계가 화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화물차가 한 대 지나갔다고 해서 그 다음 차를 막지 않아야 할 이유도, 이미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공사를 방해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어요. 그녀에게는 동료이기도 하고 어머니 같기도 할 할매들, 그녀들과 한 덩어리의 생명이 되어버린 땅은 싸워야 할 이유 이전에 그냥 날 것의 삶 자체입니다. 지켜야 할 것에 이유가 없고, 그래서 포기해야 할 이유도 없는 삶. 그러니 그녀들은 그녀들의 세계를 살아가겠지요, 마지막 송전탑 한 기가 세워질 때까지.

그런데 세상은 자꾸 밀양의 사람들에게 이유를 대라 합니다. 정작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건 굳이 밀양에 송전탑을 세워야 한다는 한전이나 정부일 텐데요. 그들은 힘이 있어 침묵과 왜곡으로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고, 정작 주민들은 송전탑에 반대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에 삶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습니다. 당하는 게 억울해, 소리 지르고, 항의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몸부림치고……. 가까운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건, 멀리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보고서를 읽는 것과는 다르겠죠.

언제나 시원시원하게 웃으며 말하는 당신의 어머니가 전에 없던 표정을 짓는 걸 보게 되거나, 갑자기 당신에게 불쑥 화를 내고는 스스로도 놀라 곧 미안하다 말하기도 하는 시간들을, 아마 당신도 겪고 있을 거예요. 지금 밀양에서 싸우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간들을 겪고 있으니까요. 인터뷰를 할 때면 어떤 질문에는 갑자기 문장이 툭툭 끊기고, 북받쳐 오르는 눈물에 단어와 단어 사이를 차마 건너가지 못했어요.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이면 눈을 번쩍 뜨고 하루 농사일을 거뜬히 해냈는데, 눈을 뜨면 덮쳐오는 원통함과 두려움에 눈뜨기가 싫어진다고…….

그 세계를, 계속 살아 내주기를

그래서 어머니와 친구처럼 지낸다는 당신은, 그녀를 말리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싸워야 할지, 어떻게 싸워야 할지, 싸우다 보면 풀릴 문제이기는 한 건지, 앞을 내다보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안개에 쌓인 듯 외로운 시간을 꾹꾹 밟아가며 살아내는 그녀를 보는 것이 너무 괴롭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그만두라는 말이 그녀의 한 세계를 포기하라는 말인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끙끙 앓는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당신은 누구보다 든든하게 그녀를 지지하고 격려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당신은 그녀가 살아내는 삶이 무엇이든 그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일 테니까요.

그래요. 자신이 없는 것은 저인지도 몰라요. 당신의 어머니가 안내하는 그 세계를 어떻게 함께 지킬 수 있을지 막막해서, 이미 그 세계를 살고 있는 그녀와 만나기가 머뭇거려져요. 그런데 어쩌죠. 그녀는 내가 바라는 세상이 무엇이었는지 자꾸 보여줍니다. 끌어내라는 말을 사람한테 쓰지 않는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서로 만들어주는 세상, 그 꿈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을 자꾸 알려줍니다. 그래서 당신의 어머니가 계속 싸워주기를, 당신이 그녀를 힘껏 응원해주기를, 염치없게도 바라게 되네요.

밀양으로 희망버스를 타고 함께 가자고 합니다. 2011년 희망의 버스를 혹시 기억하나요? 그 후로 희망버스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희망의 상징이 되었지요. 저도 그런 기적을 꿈꿉니다. 그런데 도대체 기적이란 게 달리 있을까요? 경찰들과 부딪치면서도 매일같이 산을 오르는, 절망에 짓눌리지 않는 시간을 살아내는 밀양의 할매들보다 더 대단한 기적이 과연 있을까요? 정리해고가 낳은 죽음을 껴안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착취와 멸시의 폭력에 마주하면서도 서로의 존엄을 지켜온 노동자들이, 밀양으로 희망버스를 타고 가자 제안한 것도 그 때문이겠죠? 그이들도 이미 일상을 기적처럼 살아내고 있으니까요. 희망버스는 기적을 만드는 버스가 아니라 기적이 만나는 버스입니다.

우리가 밀양이다. 그런데 사실 저는 우리가 왜 밀양인지, 우리는 어떻게 밀양이 될 수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마 당신 역시 당신의 어머니와는 다른 세계를 살듯이, 저는 거기로부터 한참 떨어진 세계를 사는 듯해요. 하지만 밀양의 사람들은 우리가 어딘가에서 닿아있음을 일깨워줄 것만 같아요. 그녀가 바드리를 살고 동화전을 살고 보라를 사는 것처럼, 밀양의 사람들이 여수, 도곡, 고답, 고정, 평밭, 위양, 용회, 괴곡마을을 함께 사는 것처럼.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한문을 우리의 장소로 만들어준 덕분에 밀양의 할매들이 서울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밀양의 할매들이 그 자리를 지켜주어서 서로의 기적이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자리가 생긴 것처럼, 우리가 서로 연루되어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는 자리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서로의 기적 같은 삶들이 연결된다면, 아, 희망버스는 기적을 만드는 버스가 될 수도 있겠군요.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일깨워주고서야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을 꿈꿀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먼저 싸움을 시작한 이들이 짊어져야 하는 폭력의 무게는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와는 또 다릅니다.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을 깨우쳐주는 사람들을 겨냥해 그이들의 존엄을 짓밟는 것이 이 시대니까요. 어느 하나가 더 무겁거나 가벼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게를 헤아리기 쉽거나 어렵거나의 차이지요. 당신의 어머니가 간절히 바라는 것도 그녀의 삶의 무게를 헤아릴 눈과 귀와 손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요?

우리의 삶이 연결된다는 것은 그런 것일 듯해요.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를 서로 헤아리다보면, 우리가 함께 짊어지고 있는 폭력이 무엇인지 보이고, 그래서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내는 기적 같은 삶들이 다른 세상을 만드는 싸움에 이미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않게 되는 것. 용산참사의 유가족들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그이들이 다시 강정마을의 주민들과, 그이들이 다시 밀양의 주민들과 잡은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은 서로의 삶의 무게를 너무나 잘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밀양이고, 밀양이 강정이고, 강정이 용산이고, 용산이 쌍차고, 그래서 우리가 결국 이 세상임을 선언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것에 이유를 해명해야 하는 야만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 서로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세계를 살기 위해 삶을 걸어야 하는 역설이 없는 세상. 서로의 기적이 만나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겠죠.

11월 30일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가면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당신에게 편지를 띄우게 된 건 당신의 이름 때문이에요. 그녀가 자랑하며 말하는 당신의 이름에 홀딱 반했거든요. 그 이름을 저 혼자만 알고 있는 게 너무 아쉽네요. 당신의 이름을 자랑한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며 이름을 흘려봅니다. “함께 사는 세상, 우리 손으로 만드는 기다!” 당신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기적 같은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겠죠?

덧붙임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